그 통증의 이름은....
2022년 완연한 봄, 이제는 여름이 다가오는 구나를 느낄 수 있는 시점인 5월 31일, 이제껏 살면서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상복부 통증을 느꼈다.
사실 뼈가 부러져 본 적도 없고, 맹장 수술 같은 1회 완치성 수술을 해 본 적 없어 일평생 가장 아팠던 때라고 한다면 출산의 고통 정도? 그 짧고도 강력한 통증이 일생을 통털어 가장 아파봤던 때라고 할 수 있다. 출산 당일 저녁, 몸의 통증은 정신의 트라우마로 남아 잠을 자는데 생생한 '지옥'꿈을 꿨었다. 그렇지만 출산이란 것은, 그 고통과 능히 맞바꿀만한 새로운 만남의 기쁨이 있는 것이기에, 단순히 통증의 임계치로 활용하기엔 적절한 지표가 아닐 것이다.
아무튼 5월 31일 밤 9시 무렵 갑자기 명치 끝이 조이고 따끔 거리며 숨을 못쉬는 통증이 시작됐다. 명치가 너무 조여와 소파에 앉아 상복부를 감싸쥐고 이 생경한 통증에 무슨 이름을 붙일 수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이러니하게도 4월 말에 이미 건강검진을 받았던 터라 내가 짐작할 수 있는 병명은 없었다. 검진 결과는 자잘한 결절이나 혹들이 있는 편이긴 했지만 정상경계였으니까. 남편은 근무중이었고, 엄마가 아프다는 말에 아이가 옆에 함께 했다.
평일 늦은 밤, 진통제로도 답이 없을 것 같은 이 통증. 그런데 이상하게도 통증은 간헐적이었다. 십분 간격으로 명치를 사정없이 조였다가 몇 분 잠잠한 뒤, 다시 반복되는 거였다.
'장난하나?'
내 몸이 내게 거는 이 '장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내 사전에는 없었다. 사정없이 아파 아이에게 진부하지만 중요한_ 유언을 남겼다. 그리고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남편에게 '살려달라'고 했던 것도 기억 난다.
지금 생각해보면 유난이다 싶기도 한데, 통증의 모양에 대해 느끼는 개인의 민감도와 반응도는 차이가 있는 것이니까. 약간 그 통증은 끔찍한 데가 있었다. 곧 숨이 넘어갈 것 같은 끔찍함이. 명치를 바짝 조이는 것이기에 호흡에 문제가 있었고, 호흡이 문제가 있다면 죽는 것은 시간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은 30여분 만에 도착했고, 인근 대학병원 응급실에 갔으나, 창궐한 코로나로 인해 진입 장벽이 너무 높았다. 통증은 속절없이 계속되고 있는데 입장까지의 대기시간이 너무 길었던 것이다. 우리는 다시 차를 타고 인근 중형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열은 없었기에 비교적 베드에 바로 누울 수 있었다.
통증, 이 님은... 점점 가라앉기 시작했다. 아직 진통제의 3분의 1도 들어가지 앉았는데....
짧고 굵었던 이 통증... 내게 강렬한 경고를 주고 간 이 통증님을 잊지 말았어야 하는 건데.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때 이 통증에 대해 더 깊이 파고들었어야 했다. 그 통증을 왜 난 평생 처음 겪어 보았는지. 이유가 무엇인지. 그 통증의 모양이 이러했는데 그 명칭은 무엇일지....
오진이지만 그 중형병원 의사의 진단명은 '급성 위점막 병변'이라고 했다. 그날 처음 먹었던 레토르 떡볶이를 지목하며 캡사이신이 소화기관에 들어가게 되면 폭발적으로 매움지수가 올라간다고...
내가 잘못된 힌트를 준 것도 화근이었다. 정확하게 명치라고 했어야 했는데 내가 가리키는 것은 식도부근이었으니..
일주일치 약을 처방받아 열심히 먹고 나는 그렇게 통증과 작별하게 되는 줄 알았다. 그로부터 6개월 뒤, 우리가 다시 며칠의 간격을 두고 아주 찐하게 랑데부하게 될지도 모른 채.
다니엘 페낙의 '몸의 일기'라는 책이 있다. 하드커버에 제목도 간결해 두 번 트라이했는데, 두 번 다 완독에 실패했다. 들여다 보면 너무 시시콜콜해서 재미가 없었다. 다니엘 페낙 자신도 출간은 원치 않았다는데. 대중에게 널리 읽히게 쓸 생각이었으면 전략도 달랐겠지.
암튼 이 '통증일기'는 나를 위해 쓴다. 시시콜콜하게 써야지 하면서 쓰면서도 설렁 설렁 느낌이 들어 쓰다 말고 다시 보충하고 그러면서 쓴다. 내 육신의 시계는 이제 반환점을 돌아 서고 있다. 안아플 날들 보다 아플 날들이 점차 더 많아질 시점이다. 유튜브를 보니 많은 난치병의 사람들이 영상으로 자신만의 통증일지를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본다. 나는 난치병도 불치병도 아닐테지만 5월에 처음 만난 이 통증과 한달 넘는 시점까지 함께 하고 있으니.. 어떤 점이 미비했는지, 그때 감각은 어땠는지, 그때 내가 아파하며 놓치고 보지 못했던 것들은 무엇인지 기록해 보기로 한다.
응급실 방문은 난생처음이었다. 나는 그날 무인양품 분홍체크 잠옷을 상하의로 입고 있었다. 타인 의식하기로는 제일인 성격의 내가,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집을 나섰던 것을 생각해 보면 그날의 상황이 급박하긴 했구나 하는 실소가가끔 난다.
그 뒤 나는 응급실을 3번 더 가게 된다. 병원... 싫으면서도 익숙해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