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31일 난생 처음 겪는 통증과의 굵고 짧은 만남 뒤,
6개월여를 나는 커다란 고통없이 지내게 된다.
이즈음 소화기계통의 작은 어려움들을 이야기해보자면, 고구마같은 퍽퍽한 질감의 음식을 다소 급하게 먹으면 명치 끝에서 얹히는 느낌이 들었고, 돌체라떼 같은 우유와 당이 들어간 음료를 마신 뒤 녹색변을 보는 빈도가 잦았다. 변의 색은 육안으로 보았을 때 초록색이라고 할 정도로 특이했다. (만약 당신이 초록변을 본다면 명징하게 그것이 어떤 내장기관의 고장으로 그런 것인지 알 수 있다, 조금만 검색해본다면_심지어 변의 모양도 분석해 주는 자료들도 웹상에는 넘쳐난다_세상에는 '변'에 관심많은 사람들도 많은 것이다.)
이런 것들은 원래 없었던 현상으로, 단순하게 나는 '이제 노화된 소화기관들이 평소의 루틴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고구마와 같은 음식들은 천천히, 물과 함께 나눠 먹고, 하루에 세잔도 가능했던 라떼 음료들을 하루 한잔으로 줄이는 나름의 무지한 노력을 했다. 주변 지인들에게 이제는 소화도 안된다고, 소화 기관도 늙었다보다고 우스개소리를 했다.
12월 중순, 같이 공부하는 지인에게 좋은 소식이 있었고, 이를 축하하기 위해 중국 음식점에서 축하연이 있었다. 아침과 점심을 소량으로 급하게 먹고 온 터라 허기가 졌었는데, 오후 6시 저녁 식사로 차려진 음식상은 식욕을 돋웠다. 양장피와 탕수육, 칼칼한 매운 짬봉, 청경채가 들어간 새우 요리 등등.. 건배를 하며 반주로 곁들인 소주와 맥주.
오렌지 빛 조명 아래 축하와 앞으로의 기운을 빌어주며 건네는 다정한 말들. 연말을 향해 다가가는 이 시점에서 더없이 어울리는 따뜻한 감정들이 오가던 자리.
평소 먹는 양의 절반쯤 채웠다고 느꼈을때 쯤. 상복부 명치가 꽉 막히는 통증이 찾아 왔다. 이 다정한 자리에 더없이 어울리지 않는 방문객이었다. 고통 수치 중증도는 중등이상. 축하자리라 나는 급하게 같은 건물 1층 편의점으로 가서 베아제와 까스 활명수를 구입 입에 털어 넣었다.
소용없었다.
화장실을 몇 번 들락거려 명치를 꽉 쪼이는 아픔이 있긴 하지만 괄약근의 움직임만으로 이 난국을 타계할 수는 없을까 싶어 용을 몇번 써 본 뒤, 이 손님은 지금 이곳에서 나올 생각은 1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가방을 챙겨 살짝 자리를 빠져 나왔다.
그 날의 온도와 바람과 차가운 공기... 무슨 옷을 입고, 어떤 가방을 메고, 무슨 신발을 신고 있었는지 모두 기억난다. 도심에서 살짝 안으로 들어온 터라 택시는 잘 잡히지 않았다.
어디로 갈 것인가.
그때의 내 심정을 떠올려보자면, 손 안에 몸을 덥힐 수 있는 단 몇개의 성냥개비만 남은 성냥팔이 소녀? 시험성적 잘 안나와 밖에서 방황하다 이제는 집에 들어갈 시간이 되어버린 중학생 때의 어느 저녁 날?....
발을 동동 굴러 본 뒤, 차가운 겨울 바람 따귀를 맞아가며 택시를 잡기 위해 도로가로 나섰다.
기사님은 백발이었다. 검정 항공 점퍼를 입으셨고, 차는 조금 낡은 소나타였다.
"가까운 응급실로 가주세요."
"응급실이요? 백병원에 응급실이 있지만 거리가 좀 멀어서.. 연세의료원으로 갈까요?"
"네.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