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아니라도, 어디라도.

by eunho

아이의 고모인 큰 형님이 뉴질랜드로 이민을 간 지 25년이 되었다. 당시 한국에서의 뉴질랜드 이민은 초창기나 다름없어 지금보다는 쉬웠다고 한다. 직접 이민을 간 당사자들이야 낯선 어려움들로 힘들었겠지만.

큰 조카는 한국에서 태어나 3살에 이민을 갔다. 고모는 그 곳에서 딸 둘을 더 낳았다. 동생인 남편에게 아이들의 한국식 이름을 부탁했는데, 남편은 ‘새로운 땅’과 ‘새로운 비밀’이라는 이름을 넣어 두 조카에게 지어 주었다. 새로운 땅에서 새롭게 시작된 삶과 비밀스러운 새 생명인 조카들. 떠올릴 때마다 이쁘고 좋은 이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인연이 있어 남편은 손쉽게 뉴질랜드를 떠올린 듯 했다. 우선은 혈육인 누나가 있으니까. 두 번째 이유는 초등인 아이가 있기에 영어권 국가를 고려한 것이고, 영어권 국가 중 비교적 물가 면에서 저렴하고 자연환경이 훌륭한 나라를 생각한 것이다.


생각해보면 지금 사는 곳도 남편과 인연이 있는 곳이다. 남편의 어린 시절 동네 친구는 교육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에서 한참 떨어진, 당시 새로 생긴 미션 스쿨에 선생님으로 지원했다. 남편은 십 수년 전 친구를 만나러 그 학교에 방문했다고 한다. 그때는 논두렁 밭두렁이었던 곳에 지금은 아파트가 빼곡히 들어서 있다. 남편은 서울에서 회사를 다니다가 이직했고, 이직하면서 이사를 했다. 이사하면서 친구의 초등학교 부설 유치원에 아이를 보내게 되었고, 아이는 유치원 졸업 후 남편 친구가 선생님으로 있는 초등학교에 자연스레 입학했다. 작년 아이의 담임 선생님은 바로 그 친구였다. 생각해 보면 놀랍다. 동네 친구로 만나 어른이 되어서도 만남을 유지하다 어느덧 어릴 적 친구가 자기 아이의 담임 선생님이 되어 있다니.


우리가 몇 년 살러 갈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듣자, 아이의 고모는 무척 반가워했다. 친척이라고는 단 한 곳도 없는 타지여서 이민간 지 25년이 흘렀지만 누나 내외에게 뉴질랜드는 여전한 타향이었다. 아이의 고모는 무척 적극적으로 아이의 학교와 우리가 머무를 곳들의 정보를 제공해 줬다. 아무래도 아이는 영어가 아직 미숙하기 때문에 한 학년 낮춰 학기를 시작할 수도 있다고 했다. 뉴질랜드에서도 한국인이 가장 많다는 오클랜드가 아니라 그곳에서 멀리 떨어진 타우랑가가 고모가 살고 있는 곳이었다. 학교에서는 한 학년에 한 반, 한 명 정도의 외국인 아이만 입학할 수 있기 때문에 언어도 빨리 늘 것이라고 했고, 여러 스포츠와 자연 환경을 누릴 수 있다고. 3년 뒤 우리가 돌아가자고 하면 아마 아이가 가고 싶지 않다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고모는 자신했다.

남편은 우선은 3년을 생각한다고 했다. 3년을 살아보고 아이가 원한다면 뉴질랜드에 머무를 수도 있고 한국으로 돌아갈 수도 있으며, 아니면 아이가 이제 얼마만큼 컸으니 고모네서 학교를 다니게 하고 우리는 두 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로도 갈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내가 처음에는 원인을 몰랐던 질환으로, 후에는 원인을 알고도 쉬이 고칠 수 없는 변수와 상황과 질환으로 아프고 보니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어릴 때는 내가 사는 곳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했다. 어른이 되어 서울에 올라오고 싶었고, 서울에 살면서 이곳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는 서울이 아닐 수도, 수원이 아닐 수도, 용인이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한국이 아닐 수도, 뉴질랜드가 아닐 수도, 일본이 아닐 수도, 프랑스가 아닐 수도 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내고 나이가 들다 보니, 사는 곳이 중심이 아닌, 우리가 사는 곳이 곧 중심이라는 것을 알겠다. 차츰 그렇게 되었던 것 같고, 이제는 확실히 그렇게 되었다. 어릴 때 나의 삶은 원심력만의 지배를 받는 줄 알았다. 젊음의 속성이 그런 것이라 여겼다. ‘나’에서 벗어나 ‘너’에서 ‘우리’로. 끝없이 그렇게 이어지는 것이 삶인 줄 알았다. 우리를 이루어 보아서일까. 우리는 더욱 단단해져가는 구심력으로 하나가 되었다. 구심력과 원심력으로 우리는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인 우리는 그 곳이 어디든 행복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든다. 이것이 지난 네 계절 동안 우리의 삶에 일어났던 일들이 나에게 가르쳐 준 것이다.


한국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곳이 어디든 우리는 우리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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