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엄마를 돌보다_1

멸치볶음

by eunho

"아무것도 못 준께 맴이 안타깝다, 야."


현관을 나서는 내게 엄마가 말을 한다.

나는 잠깐 지금이 음식과 물자가 넘쳐나는 21세기가 아니라, 전쟁이 일어나서 세상이 폐허가 되고 사람들이 굶어 죽는 그런 세상이라 상상해 본다. 그렇다면 엄마는, 집 안에 몰래 감춰 두고 자신도 먹어야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것들마저 건넸으리라.

하지만 지금은 전쟁의 시기도 아니고, 너무도 저렴하고 맛있는게 널린 세상인데 친정 집에 갈때마다 무엇인가 더 주고 싶어하는 엄마의 그런 마음은 도대체 어디서 샘솟는 것일까.


그저께는 친정집을 나서며 엄마에게서 멸치볶음을 한가득 받았다.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잔멸치로만 멸치를 볶고, 물엿을 가득 넣고, 굳지 않게 마요네즈를 첨가해 풍미를 더하고는 했다.

엄마가 내게 건넨 멸치볶음의 멸치는 아버지가 이사온 집을 탐방하며 근처 수산시장에서 이고지고 오신 한상자에 3만원하는 중멸치였다. 중멸치는 잔멸치보다는 사이즈가 커서 눈도 보이고 날렵한 멸치의 생김이 그대로 살아있다. 그렇다고 반을 갈라 멸칫똥을 제거하기에는 작은 사이즈. 엄마는 설탕을 넣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데, 저들끼리 딱딱하게 달라 붙기 때문이고 그것을 막기위해 마요네즈를 넣는다는 것은 엄마의 요리비법으로는 더 상상할 수도 없다.(친정집에는 마요네즈도 없다.)


"우리 집은 고추장을 넣었지만 너 집엔 아이 있으니 왜간장을 넣었어."


이 말만 들어도 설탕이 주요 양념인 우리 집 멸치볶음보다 엄마의 멸치 볶음은 간장이 '주'임을 알 수 있다.

왜간장은 양조간장을 일컫는 옛날 어른식의 단어(나도 이미 중년이지만 나보다 더 어른이시므로 옛날 어른식이라고 붙여 본다.)

과연 엄마의 말대로, 엄마의 멸치볶음은 냉장고에 넣어 놓아도 딱딱하게 달라붙지 않고, 과히 달지도 않다. 그 모양이 그대로 살아있다. 엄마의 멸치 볶음에는 감칠 맛이 있다. 아이는 첫 날은 다 먹더니 둘쨋 날은 거의 남겼다. 나는 왜 남겼냐고 묻지 않았다.


우리 집 냉장고에 갓 만든 엄마의 반찬과 엄마의 식재료가 더하여진다.


차로 4시간 거리에 살았지만 이제는 15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에 모신지 20여일만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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