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엄마를 돌보다_2

발가락 양말

by eunho

20대 때 회사 동기가 무지 외반증 수술을 한다고 했을 때 그녀의 과감한 결정에 놀라움을 표했던 적이 있다.

발가락이 휘었다고 한들, 20세 때부터 구두를 신었다고 가정해본다고 하더라도 10년이 채 안되는 시기일텐데 발가락이 휘었다면 얼마나 휘었다고 수술할결심을 할 수 있었을까?

무지 외반증 수술이라고 하면, 당시 내 짧은 생각으로는 발가락의 뼈를 잘라내어 수평을 맞추어 주는, 거의 고문에 가까운 수술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퇴직 이후 연락을 주고 받으며 알게 된 사실이어 고향으로 내려가 수술을 받은 그녀의 수술 전후 상황은 알 수없었지만 어쨌든 나보다 더 어렸던 그녀의 결정은 지금 생각해봐도 과감했다. (그러고보니 2주일전 만났었는데 발가락 안부를 묻지 않은 것이 아쉽다.)


엄마의 발가락을 자세히 들여다 보게 된 건 철 든 이후의 일이다. 아마도 평발일(엄마를 닮은 내가 평발이므로) 엄마의 엄지발가락은 갈고리처럼 양발이 모두 휘어 있었다. 떨어져 지낸 20여년 사이 그 폭과 간격은 이제는 동그라미를 그려 넣어도 될 정도가 되었다.


엄마는 세개의 원형이 담긴 실루엣을 가지고 있다.

엄마는 아프기 때문에 약을 복용하고 있어, 약의 부작용중 하나인 식욕증진으로 인한 완만한 포물선의 배가 바로 하나의 큰 원형이고, 양 발의 엄지발가락과 검지 발가락 사이, 작은 두개의 실체없는 원형이 두번째 세번째의 것이다. 수험생에겐 긍정의 표지일 동그라미가 엄마에게는 어쨌든 좋지 않다. 동그마한 배 아래 얇은 다리로는 그 하중을 감내하기 어려워 무릎에 통증이 가중되고, 두개의 작은 원형은 이에 더해 걸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수술을 하자,

수술을 받자.

24시간 붙어서 수발을 다 들더라도 기꺼이 하겠다는 자식들이 있어도

몇 년 전 어깨의 회전근개 정형외과 수술을 받고 10 여일 넘게 힘들었던 기억이 있는 당신의 대답은 늘 'X'다.


'X'다.


'양말 사야해?"라는 나의 물음에 남편의 대답은 늘 'X'다.

남편은 발가락과 뒤축에 구멍이 뚫릴 때까지 신는, 양말의 기능적인 면만을 추구하는 양말관(?)을 가진 실용인이다. 이에 비해 나는 양말 애호인으로, 특이한 컬러,재질의 양말은 물론 실험적인 양말들에도 관심이 많다. 아이가 저녁 야자시간까지 더해 학교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지자 나는 아이를 위해 무인양품에서 두 켤레를 한팩으로 하여 파는 타비형의 발가락 양말을 사왔다. 아이는 한번 신어보더니(하루를 신고 나간것도 아니고) 던져 놓았다. 아이는 나를 닮아 평발이고 발등이 두터워 '양말강요'는 하지 않는 편이다.. 내가 신기에 그 양말은 너무 길고 크다. 나는 양말을 둘둘 말아 남편의 옷장 서랍에 넣어 놓았다.


아니나 다를까, 이를 발견한 남편의 양말 잔소리가 시작되었고 늘상 듣는 말이지만 또 반복하기에 화가 난 나는 뭐라고 외마디 소리를 지른 뒤(아마 '그만 작작 좀 해?!"류의) 입을 꾹 다물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세탁실에서 세탁기에 옷을 집어 넣고 있는데 문 뒤로 남편의 발이 보였다. 주인을 찾지 못해 방황하던 회색 발가락 양말의 엄지발가락 부분이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하는 말에 맞춰 혼자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잔소리는 하면서 꾸역꾸역 신고있는 건 뭐람'


'빵' 하고 터졌는데, 무슨 말로 화가났는지 그 전의 말들을 다 잊어버릴 정도로 웃음이 나왔다.


엄마가 이사를 오고나서 나는 여러가지 것들을 친정집으로 물어 나르곤 했는데, 그 중 하나가 양말이었다. 양발이 심한 무지 외반증으로 휜 엄마의 발은 왠만한 양말은 맞지 않았고, 신더라도 조이는 통증을 느껴 엄마는 금방 벗어버리고는 했다. 나는 넉넉한 수면양말과 그리고 남편에게 줬던 발가락 양말을 다시 챙겨 엄마에게 건넸다.


목이 조금 길어 신는게 불편 했지만 양말은 다행히 잘 맞았다. 남색 발가락 양말 사이 브라운 카페트의 작은 갈색 동그라미도 잘 보였다. 발가락들을 조이지 않아 통증이 없다고 했다.


남편의 타비양말은 웃겼지만, 엄마의 타비양말은 그 기형적인 모양으로 웃펐다.


어쨌든.

그렇게 발가락 양말은 두 명의 주인을 거쳐 드디어 진짜 주인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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