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의 검진을 본 다음 날은 아이의 생일이었다. 피검사에서 간암에 걸렸음을 알 수 있는 ATP의 수치가 높게 나왔고, 당일에 본 초음파에서 발견된 종양의 덩어리는 꽤 컸다. 간암은 초음파상으로 암임을 확인할 수 있는 질병이기도 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그날 근처에 사는 여동생이 왔는데, 여동생은 복부를 가르는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난소에 혹이 생기는, 쉽다면 쉽고 어렵다면 어려운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동생의 경우엔 혹이 여러 개라 입원 기간이 길어질 거라고 했다.
처음 1차 병원인 동네 내과에 갔을 때, 나이 지긋한 의사 선생은 남편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했다. 어머님이 연세도 있으시고 하니 잘 생각해보라고. 대형병원을 가게 되면 색전술이다 뭐다 해서 이런저런 시술을 받게 될 텐데 그렇게 하지 마시고 남은 여생을 조금은 편하게 보내시다 가실 수 있게. 그렇게.
남편이 그런 이야기를 내게 전했을 때, 태어나 처음 겪어 보는 암이라는 질병이 막연하게 실감되었다. 죽음이 더 이상 장식장 속 케이크가 아니라는 것이. 나는 친한 지우들에게 이 소식을 카페에서 전했다. 아이들끼리도 친하고 엄마들끼리도 친한 그런 사이여서.
어머님과 함께 사는 것에 대해서, 나는 언제나 ‘착한 며느리’라는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주위에 그런 사람이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부부 모두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남편과 아이가 아닌, 다른 사람과 함께 사는 것에 대해서는 개인적인 차이가 있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싶다.
결혼이란 것은 그런 것 같다. 두 개의 세계가 한 공간에서 만나는 것. 두 세계가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미션에 온전하게 응전하는 행위. 그런 공간에 그 약속에 합의하지 않은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은 어떤 상황이 되겠는가... 어쨌든 그 사람이 시어머니가 아니라, 친정어머니, 혹은 친동생이라고 할지라도 나름의 애환, 어려움은 있을 것이다.
다만 나는 어머님이 내게 주셨던 것들에 대해 말하고 싶다. 당신은 혹독한 시집살이를 40여 년이나 했음에도 그 사이클을 되풀이하지 않았던 내 어머님이 주신 것에 대해.
그날 저녁 아이의 생일 케이크를 한 자리에 두고 어머님과 동생, 나와 남편, 아이가 마주 앉았다. 어머님이 간암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나와 남편과 어머님, 동생의 수술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동생과 나와 남편.
비밀을 하나도 모르는 사람만이 이 케이크의 초를 끌 수 있다는 듯이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는 천진하게 웃으며 훅하고 자신의 생일 초를 불어 껐다.
"Happy birthday to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