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이라도 무슨 일을 해야 할 것 같은 심정의 환자 보호자의 마음과는 달리, 시간과 대형 병원은 우리와는 다섯 정거장의 차이가 나는 버스의 속도로 느긋하게 뒤쳐져 걸어왔다. 대형 병원에는 우리 같은 마음의 사람들이 전국에서 몰려들기에 그때그때 작은 차이에 따라 진료순서가 결정되는 듯했다.
다른 메이저 병원을 예약했다가 취소하기도 하고, 전원을 가기도 하고, 이런 미세한 변수들이 쌓이고 쌓여 환자의 위중과는 상관없이 진료가 잡힌다.
소위 서울의 메이저 병원이라고 불리는 병원들은 예약 시스템들이 조금씩 다르고, 어플로 예약이 되기도 하고, 어떤 의료진들은 또 그것이 불가하기도 하여 처음 예약을 하는 사람들은 예약을 중구난방 잡게 된다.
남편은 1차 병원 의사의 소견서를 들고 택시를 타고 직접 대형병원에 찾아가 진료예약을 했다. 운 좋게 취소 자리가 있었는지 그 큰 병원에 신망 있는 의사 선생님의 진료가 5일 뒤로 잡혔다. 보통 ‘간암’이라고 하면 소화기 내과로 예약을 해야 할지, 흉부외과로 해야 할지 혈액 종양내과로 해야 할지 두서가 없게 된다.
나는 네이버에서 가장 회원 수가 많은 간암 환우들의 카페에 가입하여 정보를 얻기 시작했다.
간 같은 경우, 신경세포가 없기 때문에 초기에 종양이 자라더라도 자각증상이 없다. 어머님은 그 해 들어 매월 1kg에서 2kg의 체중이 감소했는데, 입맛이 없다고 하셨기도 하고 실제 드시는 양도 줄어들어 단순히 그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 외의 증상은 없었다.
그 해 2월에 피검사를 했을 때 의사가 간수치가 높다고 따로 드시는 영양제는 있는지, 한번 어머님을 모시고 방문할 것을 권했다. 영양제를 드실 경우 일시적으로 간수치가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집에 와 어머님께 어떤 증상은 있는지, 혈압 당뇨약 외에 드시는 영양제가 있는지 물으니 오메가 3을 드시다 마침 다 드셨다고 하고 다른 증상은 없다고 하여 다음에는 병원에 가자고 말씀드리고 대리처방을 받았던 약을 드시게 했다.
그렇게 코로나로 인하여 대리 처방받아 드시기를 7개월째, 오랜만에 어머님을 만난 아가씨가 남편에게 어머님을 모시고 병원에 가 볼 것을 권하였고, 아가씨가 말한 그 다음날 나는 진료를 잡고 귀찮아하시는 어머님께 이제는 병원에 꼭 가보셔야 한다고 말씀을 드리고 남편은 어머님과 진료를 보러 갔다.
나는 내가 어쩜 놓쳤던 그 2월이 어머님의 발병 기라고 생각한다. 애써도, 애쓰지 않아도 그때가 그때라고 자책한다.
남편은 그렇지 않다. 남편은 아가씨가 병원을 모시고 가라고 한 그날이 자신의 자각 기라고 생각한다. 실제 의사는 어머님의 종양이 언제 자라기 시작했고, 이만큼 커졌는지 알 수 없다고 했다.
어머님은 다른 장기에 전이가 없는 간암 3-4기 판정을 받았다. 종양은 꽤 큰 15센티로 고령이고 체력도 약해서 이식 및 절제술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어머님의 간암 판정 이후, 우리 삶에 드리웠던 우울의 그림자에 대해 생각해 본다. 이제는 희미하게 잔상이 남은 그것은, 모든 것이 끝난 후에나 그런 것이 있었음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당시에는 낮고 찬찬하고 은밀하게 공간과 시간을 잠식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