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의 자세
김유담 작가의 소설 ‘이완의 자세’를 다시 읽었다. 대학원생인 ‘나’가 화자인 이 소설은, 한부모 가정으로 목욕탕의 세신 일을 하는 엄마를 보고 자란 나의 성장을 그린 이야기다. 처음 읽었을 땐 별 감흥을 찾을 수 없었는데, 두 번째 읽으면서 빛나는 문장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었다.
이야기 속 조연인 두 청춘 ‘만수’나, 주연인 ‘나’나 모두 엄마의 기대를 한껏 받고 목표를 향해 나아가지만 결국 이루고자 하는 곳에 닿지 못한다. 두 인물 모두 20대 중후반인 지점에서 이야기가 끝나기 때문에 끝을 알 수는 없지만.
아는 지인이 자기 아들은 자신의 기분을 더 이상 살피지 않는다고 한다. 소심하고 예민한 편이던 아들은 사춘기에 들어가고 나서부터 엄마인 자신의 기분을 살피며 움직이지 않는다고. 이제 엄마인 자신이 정말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어제 그 아이의 친구인 우리 아이는, 약을 왜 잘 챙겨 먹지 않느냐고 하는 나의 버럭에 눈물을 터뜨렸다. 내가 화를 내면 아직은 어쩔 줄 몰라 한다. 엄마의 기분을 더는 살피지 않는 아이와, 엄마의 기분을 살피며 엄한 말 한마디에도 눈물을 터뜨리는 아이.
내가 바라는 아이의 모습은 이럴 때도 눙치며 잘하겠다고 하는 아이(?)일까? 사실 세 모습 모두 마뜩잖고 그저 자기 일은 스스로 알아서 하는 아이이길 바라는지도.
아이의 계속되는 실수에 결국에는 화를 내고 마는 내 모습은 우리 엄마를 닮아 있다. 아니다, 내 어릴 적의 엄마는 훨씬 심했다. 한 번의 잘못에도 짜증과 화를 참지 못하셨다. 사실 나의 분노 게이지는 내 엄마의 분노가 기준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엄마보다 훨씬 덜한데.
이 정도는 내 어릴 적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데.
엄마의 분노에 늘 울음을 터뜨리는 담당은 큰언니였다.
나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더는 참지 않았다. 늘 엄마에게 맞서 엄마와 싸우고는 했다. 참는 편에 속했던 언니는 지금 그래서 속이 썩어 문드러져 있다.
늘 참지 않았던 나는 그래서 속이 썩어 문드러지고 있었다. 당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도 자신의 미숙함으로 자식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분노와 짜증뿐이었다는 것을 몰랐던 엄마는, 언젠가부터 시름시름 아팠다.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보고 자책했기 때문이었고, 자책은 또 내 속을 썩어 문드러지게 했다. 심리 상담 선생님은 그것은 15세의 내 잘못이 아니라고 했다. 15세의 내 모습 그대로의 그때의 나는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10회의 상담을 받고 나서 나는 자유로움에 이를 수 있었다.
소설 ‘이완의 자세’에서 화자인 유리는, 제목과는 달리 남과 소통할 때 온몸이 뻣뻣해지고는 한다. 다른 사람의 터치가 있을수록 몸은 굳어간다. 어릴 적 세신 일을 하며 자신의 아이를 상대로 기술을 연습해야 했던 엄마의 학대 아닌 학대가, 유리의 몸을 굳게 만드는 트라우마의 시발점이 되었다. 그래서 증기 가득한 목욕탕 안에서도 유리는 스스로 이완할 수 없었다.
이 소설을 처음 읽고 느끼며 아쉬웠던 점은, 유리가 그것을 확인하는 데 쓰인 만수라는 인물의 전형성과 결말. 인물의 전형성을 탈피하기 위해 보였던 인물의 두드러짐이 내겐 불협화음으로 느껴졌고, 결국은 이완의 자세를 하지 못한 채 힐링 소설처럼 마무리된 결론 부분이었다.
하지만 유리도 언젠간 이완의 자세에 이를 수 있게 되겠지.
자신만의 결론에 다다르고 현재에 충실하며 미래를 꿈꿀 수 있게 되겠지.
작가는 그 결말에 대한 답을 각 독자의 몫으로 남겨 놓았던 듯하다.
아이를 양육하며 내 분노의 트리거를 당기지 않는 방법을 알고는 있다. 넛지라는 것을 적절히 사용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데 노력이 필요하다면, 넛지도 그런 노력 중 하나일 것이다.
이완의 자세로, 좀 더 부드러운 개입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