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4킬로 달라고 했는데 정육점 그이는 4.5킬로그램을 줬다.
나는 앞다리살 달라고 했는데 정육점 그이는 비싼 삼겹살 세일한다고 삼겹살 어떠냐고 했다.
거절을 잘 못하는 나는 삼겹살 4.5킬로그램을 무겁게 이고 대파와 미나리를 사가지고 집에 왔다.
4리터 냄비 하나와 2리터 냄비 하나가 그나마 제일 큰 사이즈라 고기는 3킬로그램을 채 못 넣었다. 1년이 된 묵은 김치 한 포기와 작년 11월에 담은 김장김치 한 포기를 네 갈래로 나눠 두 시간 들여 김치찜을 했다.
고춧가루, 다진 마늘, 새우젓, 매실액, 설탕을 넣었다. 들기름은 다 떨어져 넣지 못했다.
푹푹 삶아 저녁으로 나도 조금 먹고 아이도 먹었다. 절반은 고모네 주려고 식혀 딤채 통에 담아 놓고, 반의 반은 친정에 가져다주었다. 친정 다녀와 앉아보니 시간은 10시 25분.
내일은 어머님 기일을 맞아 서울 고모네에 간다. 우리는 밖에서 식사를 하고 고모네로 향해서 추도예배를 드릴 것이다.
작년 1월 어머님 기일에 며느리였던 나는 병원에 있었다. 담낭 절제술이 잘못되어 나는 크리스마스에도 신정 즈음에도 구정 즈음에도 병원에 있었다. 아가씨는 집에서 생전 어머님이 차려 주시던 음식을 몇 가지 해놓고, 돌아가신 어머님을 추모했다. 뭘 만드시던 큰손이셨던 어머님과 달리 고모는 손이 작아 한 두 끼 먹으니 끝일 양이었다고 했다. 고모는 울었고, 아이들이 고모를 안아 주었다고 했다.
정작 추모해야 할 날은 내일인데 오늘 이일 저 일로 너무 달렸더니 몸 상태가 영 별로다. 어깨가 쑤시고 머리가 지끈거린다. 이제 푹 쉬어야지. 작년에는 병원에 있고 내 몸 아파 어영부영 지나갔는데 올해 기일 맞아 더 덤덤할 줄 알았는데 어머님 기일이라니 슬프다. 다시는 그 모습을 못 본다고 생각하니 슬프다.
어머님이 돌아가신 지 벌써 2년이라니. 1년 되기까지 올해였던가 작년이었던가 늘 헛갈렸었다.
내가 아는 할머니 중 가장 순수하고, 가장 소녀 같고, 가장 꿋꿋하셨던 분.
남편을 보면 어머니가 하나도 안 보이고 어머니를 봐도 남편이 하나도 안 보이는데 그래도 ‘모자지간’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투병 와중에, 임종 즈음에 두 사람을 보며 알게 되었다.
고모가 울면 나는 어떡해야 하지? 나도 눈물이 날 것 같기는 한데, 아주버니랑 조카들이랑 남편이랑 다 있는 데서 눈물 흘리는 것이 영 어색할 것 같다.
무엇이든 마음이 가는 데로 해야 후회가 안 남는 법이기는 하다. 이렇게 시뮬레이션을 하고 가면 나도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겠지.
벌써 예배를 마치고 깊은 이야기를 나눈 뒤 어둑한 고속도로를 타고 돌아올 길이 그려진다. 아득하고 깊은 겨울밤. 어머님을 하늘로 보내드렸던 그 겨울밤. 남편은 말이 없을 것이다. 아이는 졸고, 나는 남편과 아이를 한 번씩 들여다보겠지.
떠난 사람을 위해 남은 사람이 가지게 되는 루틴. 일 년 중 이 하루는 어머님을 생각하며 내 마음의 자리까지 비워두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