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너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인 8살 때부터 전업 주부인 엄마의 기상 시간이 정해진다고 봤을 때 아이가 한 명이라면 엄마는 대략 12년 동안 6시에서 7시에 기상해야 한다. 연중 엄마의 기상 시간은 두 번의 방학식을 가지게 되는데, 그래봤자 7시에서 한 시간 뒤인 8시나 잘해봐야 9시이다.
엄마의 기상 시간은 아이가 두 명일 경우 그리고 세 명일 경우, 나이 차에 따라 플러스 n년이 추가된다. 겨울 방학과 여름 방학은 일상의 긴장에서 엄마의 리듬을 이완시켜주는 소중한 시간임이 틀림없다. 나는 시간을 지키는 것에 강박을 가지고 있는 편으로, 항상 정해진 시간을 위해 스스로 마음을 들볶는 스타일이다.
어떤 작가는 시간의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그 시간을 정확하게 지킴으로써 가능해질 수 있다고 했다. 아이러니한 말일 수 있지만 어쨌든 꼭 해야만 하는 일이라면 정확한 시간을 지킴으로써 그런 들볶임으로부터 자아를 보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칸트처럼 혼잣 몸이라면 그것이 가능할지 몰라도 아이를 키우는 입장으로써 이러 저러 변수에 여의치 않을 때가 많다.
나는 어제 오랜만에 새벽 6시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방학을 맞이해 풀어진 마음에 요새는 초 저녁 잠을 살풋 들고 일어나게 되면, 수면 시간에 맞추어 쉬이 잠을 이루지 못한다. 어제 외출로 인해 초저녁에 살풋 잠이 들었고, 수면시간을 알리는 핸드폰 알림음에 잠을 청했다가, 들었던 잠이 자정 무렵 완전히 깨고 말았다. 보통 오디오북을 들으며 잠에 빠지기 마련인데 어제 내가 들었던 책은 ‘스토너’였다.
스토너. 신형철 평론가 및 여러 문인들이 극찬했던 책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1900년대 중반 즈음에 씌어진 책이기도 하고 평범한 삶을 산 주인공 캐릭터가 크게 와닿지 않아 들춰보지 않고 있다가 갑자기 듣게 된 책.
예열이 되는 시간은 좀 걸렸던 책으로 슬론 교수가 스토너에게 ‘자네는 교육자가 될 사람’이라는 말을 했을 때 이 책이 재미있을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그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한 스토너에게 ‘당신은 (문학과) 사랑에 빠졌다’는 구절에서 완전히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책의 두께가 설명해주듯 어느 평범한 사람의 일상을 아주 세세하고 면밀하게 작가는 이야기해 주고 있다. 이것은 너무도 놀라운 것이어서, 우리가 가볍게 읽을 수 있는 단편이나, 얕은 밀도의 장편에서는 결코 체험할 수 없는 인간 본성에 대한 내밀한 묘사, 인간 관계 그리고 벌어지고 돌아가는 인간사 그와 관련된 무형의 형상들을 세심하고 날카로우며 정확한 문장으로 묘파해 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책을 들으며 스토너의 숨소리를 듣고 있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들 때가 많았다. (오디오북의 특성과 이런 류의 문체가 만나 얻을 수 있는 시너지 효과아닐까?)
열 두시 무렵 내가 잠에서 얼핏 깨어 듣게 된 부분은 스토너의 아내 이디스가 스토너를 어떻게 무시하고 괴롭히며 이 모든 상황을 그가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를 묘사한 부분이어 잠이 홀딱 달아나고 말았다. 억압된 채 자라서 고지식해져버린 인간이 타인을 어떻게 옥죌 수 있는지 그 부분에 대한 묘사가 신랄하고 날카로워, 나는 나의 일부분의 모습도 돌아보게 되었다. (아니 사실 그것을 받아들이는 스토너가 더 놀라워서.)
불화하는 밤.
나는 밤과, 잠과 불화하고 대신 삶에 조화되었다.
이렇게 또 한 사람의 평범하지만 비범한 일생에 대해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내가 스토너였다면 하지 않았을, 선택하지 않았을,
항변하고 울부짖고 극단적으로 행동했을 모든 상황 가운데
인내하고 관용하고 받아들이는 나와 다른 이면을 지닌 한 인간의 숭고하고 놀라운 일생을,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