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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ho Jan 30. 2024

동경일주

여행후감

동경 여행이 끝났다. 

공항으로 돌아와 뮤직박스 대신, 센서로 열리는 휴지통 대신, 얇디얇은 휴지 대신, 여백의 미 가득한, 두터운 두루마리 휴지를 보며 여기가 한국이구나 생각한다.      


추가비용까지 지불하며 +25kg 그램을 더하여 들고 왔지만 거실 바닥에 막상 늘어놓고 보니 내것은 별반 없고 나누고 보니 몫의 주인들 것도 별 개 없다.      

어떤 여행은 가기 전 설렘을 선물해 주고, 막상 가서는 별거 없을 때가 있다. 내 집에 돌아왔다는 안식감을 주기도 한다. 여행 전 설렘만 해도 지루한 일상엔 큰 선물이기에 이것만도 내 기준 좋은 여행.


이번 여행은 다른 여행들과 달랐다.      

일단 남편과 한 번도 안 싸웠다는 것. 

루틴 한 일상에서 벗어날 때 예민해지고 돌발상황에 취약한 성격인데 무슨 일인지 이번에는 까탈스러움이(?) 발동하지 않았다. 내 생각에는 방을 따로 써서 그런 것 같은데(남자팀, 나 혼자 여자팀) 남편은 굳이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 모양. 


두 번째는 날이 좋았다. 여행은 마지막 여행과 비교할 수밖에 없을 텐 데, 여름의 동경은 정말 더웠다. 햇빛으로 두드려 맞는 기분이라 몇 분 못 버티고 택시를 잡아타서 교통비도 상당했다. 이번 동경의 날씨는 한국의 냉 추위에 단련된 우리 가족이 종일 나돌아 다닐만한 수준이었다 (바람은 매섭)


세 번째는 아이가 훌쩍 자랐음을 느꼈다는 것.

아이는 혼자 지하철도 타고, 걸어서 목적지를 홀로 오가기도 하며, 새로운 도전에 위축되지 않고 곧잘 해냈다. 시오빵 다섯 개를 우리 몰래 사와 아빠 품에 안기기도 하고, 엄마의 쇼핑 타임에도 지루해하지 않고 나름의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네 번째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가지게 된 것.

긴자에서 반지를 줍기도 하고, 가려는 갤러리가 오픈 전이어 장소까지 갔다가 되돌아오기도 하고, 하루키 도서관이 우리 도착한 날부터 휴관이어 문 앞 구경만 하고 근처 맛난 카레집에서 맛있는 카레만 먹고 오기도 하고. 내가 산 산리오 소금 병 세 개를 백팩에 넣고 왔다가 일본 공항 수색대에 걸려 의심을 받기도 하고... 


무라카미 하루키 도서관 휴관
산리오 헬로키티 시오


이 모든 에피소드가 놀랍게도 유쾌한 감정으로 남아있다는 것은 그만큼 내 여행력이 강해졌다는 것일까?     

우리는 올여름의 행복도 미리 예약했다. 여름의 동경을 피해 이번엔 홋카이도로. 

여행을 떠올리며 한 달 전의 설렘을 여러 달 걸쳐 나눠 느낄 생각이다.      


거실 바닥에 선물들을 늘어놓고 잠자리에 든 다음 날. 

무인양품에서 한정으로 나온 샴페인 초콜릿이 잔뜩 녹아 봉투 안에서 떡 반죽이 되어 있었다. 너무 아까워 식빵에 발라 먹었다. 알콜릭 한 풍미가 식빵에 가득~     


액상초콜릿 아닙니다;;



이것도 두고두고 잊히지 않는 여행 후일담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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