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첫 줄서기와 긴자 반지
너의 첫 줄서기와 긴자 반지
가려고 했던 하루키 도서관이 휴업이라 날씨의 요정가족이지만 -구성원 중 휴업의 요정(나)력이 아주 강하다고 생각하며 우리는 출발하기도 전에 다시 주저앉을 수 밖에 없었다. 나와 남편은 도큐핸즈 시계숍에서 아빠의 세이코 시계와 1616아리타 접시 유광 스퀘어 플랫 라인을 찬 접시로 구입하기로 했다. 유니클로 1층 카페에서 잠시 쉬며 남편은 하쿠인칸에 간 아이를 마중나갔는데, 돌아온 두 남자의 손에 들린 건 팡 메종이라고 그린 레터링이 된 종이 봉지.
하쿠인칸에 간 아이는 숍이 오픈 전이라는 것을 알고 시오빵 애호가인 아빠가 평소 가고 싶어했던 베이커리숍 팡 메종을 몰래 찾아 다녀온 것. 30분 줄을 서서 시오빵 다섯 개를 사왔다. 지난 번 여행에도 가지 못했던 샵이었는데. 아이가 엄마 아빠 몰래 어딘가 가서 가족이 먹을 것을 사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남편은 무척 흐뭇해했다. 아이를 위해 처음 섰던 터닝 메카드 줄서기의 나날들이 떠올랐다(눈물 닦고)
언제 이렇게 커서.
소금빵은 겉바속촉. 크기도 크고 가격도 너무 저렴했다.
종류도 다양했다는데(명란 소금빵, 트러플 소금빵 등등)오리지널만 다섯 개 사온 담백한 녀석.
딘앤델루카의 슈플레 그릇은 원래 두 개가 있었는데 식세기 세척에도 강하고 의외로 쓰임이 많고 귀여워 바퀴 달린 카트와 함께 몇 개를 더 겟 했다.
무겁게 이고 지고 남편의 손을 잡고 호텔로 돌아오는 길.
보통 쇼핑몰들이 몰려있는 곳에서 5백여미터 정도를 더 걸어야 했다.
시간은 밤 8시를 넘어 9시를 향하고 있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더라.
쇼핑에 관한 이야기였던가.
몇 천원부터 몇 만원에 이르는 무수하고 귀엽고 내 기준 실용적인 것들에 대한 감탄과 질책(?)과 회유와 합리화 등등의 말이 오고 갔던 것 같은데.
중앙 차도 옆 인도를 걷고 있는데 남편의 발 밑으로 무언가 ‘반짝’거렸다.
엇 저것! 하고 내가 소리치는데, 남편이 냅다 앞발로 차 버린다.
똥또르르 똥똥.
맑고 청아한(?) 소리를 내며 그것이 앞으로 굴러갔다.
남편이 다가가 그것을 집어 든다. 앞으로 걸어가며 무엇인지 살폈다.
반지였다.
손끝이 파인 골무처럼 단단하고 굵은 실버링. 어디서 본 듯한 디자인인 것도 같았지만, 그런 류의 반지들은 많으니까.
남편은 볼트나 너트인 줄 알았다고 했다. 보기엔 볼드하고 커보이기도 해서 남자 반지 디자인인듯했는데. 의외로 남편의 작은 손가락에도 들어가지 않았고 내 손가락에 쏙 맞았다.
술마시고 누가 흘렸나 봐.
반지는 실버여도 함량이 낮은지 가벼웠고, 링 주변에 까임이 있었으며, 오래된 듯 보였다.
볼트도 아니고 너트도 아닌 반지였네.
긴자에서 반지를 줍다니.
아무 생각없이 호주머니에 넣고 우리는 웃고 떠들며 호텔로 돌아왔다. 이날 아주 늦게 잠에 빠졌던 것 같다.
다음 날 아침, 남편이 나를 부른다.
반지 안쪽으로 브랜드 문구가 새겨 있다는 것이었다.
뭔데?
티파니 앤 코.
검색해보니 티파니 앤 코 실버링이란다. 그런 류의 카피품인줄 알았는데. 내 눈엔 너무 작아 안보였는데, 남편은 그 글씨가 보였나보다.
긴자반지_ 우리는 이 반지를 긴자 반지라고 부르기로 했다.
긴자에서 반짝이는 것 두 가지를 얻었다.
난생 처음 가족을 위해 자발적으로 줄 서기를 한 아이의 마음,
정말 반짝 하고 빛났던 물성가진 반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