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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ho Jan 28. 2024

동경일주

넷째 날 이야기_

아침이 밝았고, 우리는 오늘 와세다 대학 내에 있는 하루키 도서관을 가기로 했다. 긴자 니혼바시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한번 갈아탄 뒤 와세대대학교역에서 내리면 되는데, 소요 시간은 3,40분여.

오전 열한 시쯤 나왔기 때문에 지하철 내는 비교적 한산했다.

이 날이 어제에 이어 우리가 온 날 중 가장 추웠던 날이었던 듯 하다.

몇 년 전 겨울에 동경에 왔을 때, 동경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따뜻하다 생각은 못했었는데.



와세다대학역에 내려 구글 지도를 켜서 대학교 남문으로 향했다. 남문으로 들어서니 아기자기 해 보이는 조감도가 펼쳐졌다. 작은 둔덕을 올라 중간에 카페테리아도 잠깐 구경했다.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학생들로 가득 차 있었다. 교내 세븐일레븐 편의점이 있는데 점심을 해결하려는 학생들로 인산인해.

카페테리아를 나와 특이한 구조물을 지붕에 인(?)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저곳이군!     


무엇이든 하는데 진심인 나라. 멀리서도 그 아우라가 느껴지는 나라. 다가가기 전에도 이미 진행되고 있는 일의 기미가 스멀스멀 풍기는 나라.

안내 팻말이 서 있고, 하얀 천으로 내부가 일부 가려져 있다.


그럴 리가 없어. 아무리 내가 휴업의 요정일자라도...


떨리는 손으로 구글 번역기 사진 어플을 켜고 유리창에 붙어있는 안내문을 스캔해 본다.     


하루키 도서관은 와세다대학 입학시험과 내부 리모델링을 위해 1월 22일부터 2월 말일까지 휴관합니다.

재오픈은 3월 1일입니다.      


뭐라구욧!

내 점심, 내 안자이 미즈마루의 그림, 조형감이 돋보이는 건물 내부, 통창을 통해 파고들 한 줄기 빛이여...     


휴업의 요정력(?)은 아주 막강하여, 구글 어플에는 어제는 정말 정기 휴관일이어 정기 휴관일이라고 하였고, 이후 공사일정은 아직 반영이 안 되어 있던 것. 우리가 동경 도착한 첫날부터 쉬는 날이었으니. 면밀한 검색력이 아니면 이 휴업일은 피해 갈 수 없었던 것인데, 어젯밤에도 내내 그릇 검색하랴, 무지에서 추가로 뭐 살까 고민하랴 고민만 했던 나는 연일 이어지는 함정을 빠져나갈 수 없었던 것.      


나는 손글씨로 여행  첫날부터 세 번째 날까지 여행기를 써왔는데 사실 이 포스팅을 PC로 쓰는 이유도 나 같은 휴업 요정의 전철을 밟는 사람이 있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 네이버 상단에 올라가게 해주세효~)     



와세다 대학교 하루키 도서관  2월 한 달간 휴무입니닷~~~     



아이의 배꼽시계는 울리고 있었다. 나는 대충 젊은이들의 열기를 느끼며 카페테리아 편의점에서 가벼운 음식으로 점심을 때우고 싶었지만, 먹을 것에 진심인 아들램은 그럴 요량은 1도 없어 보였다. 왔던 길을 되돌아 나가 지하철역으로 가는 길에서 식당을 골랐다. 피자와 파스타를 파는 식당은 맛집인지 인기가 많아 줄이 길었다.     

줄은 서있지만 적당히 웨이팅 하기 나쁘지 않은 곳. 남편이 추천한 식당. 이번에도 그의 추천을 믿어 보기로 한다. 사진상으로는 잔잔한 카레들과 얼굴만 한 난이 쟁반에 서비스되는 카레집. 카레 많이 먹어 별로일 아들도 그곳은 괜찮은지 OK 사인이 떨어졌다.

십오 분쯤 기다려 입장. 나는 NO.2 메뉴를, 남편은 오리지널 메뉴를. 닭고기를 좋아하는 아이는 닭고기가 올라간 카레 덮밥을 주문한다. 종업원들, 요리사 모두 인도인처럼 보인다. 영어와 일어를 섞은 의사소통도 가능~     


“난을 더 주문할까?” (‘혹시 모자라서 더 주문하려면 시간 걸리잖아’)

“아니 먼저 먹어보고.”     


손바닥만 한 난인 줄 알았는데 성인 남자 어른 얼굴보다 더 큰 길쭉한 난이 접시에 올라있다. 내온 카레들도 모두 먹음직스럽고 실제로도 맛있다.

한국에서도 이런 카레집은 근래엔 못 가본 거 같은데.

다행스럽게도 수확이 있었다. (나중에 검색해 보니 타리야 라고 체인 카레집이었다. 내 기준에는 훌륭했는데 현지인들 평점은 그렇게 높지는 않았던 듯) 모든 쟁반의 음식들을 싹싹 비우고 씩씩하게 휴업의 요정가족들은 지하철로 향한다.      


설마 이것을 애드 하는 사람이 있을까? 궁금하다..

남편은 추위에 민감해 자기 모자를 썼다, 씌웠다 우리의 단추를 채웠다, 묶었다. 우리의 손을 조물조물했다, 호호 불었다, 야단이다. 동경은 바람이 매섭다.

지하철을 타고 돌아오니 다시  쇼핑몰 일정이다. 시간은 이미 3시를 넘어가고 있었으니. 딱히 일정을 다시 짜기도 애매하다. 남들은 수 십만 원짜리 혹은 수만 원짜리 몇 개 사면 끝이라는데 나는 몇 천몇 만 원짜리 수십 개를 사고 앉아 있으니 시간과 인력의 낭비가 심하다. 아이는 하쿠인칸이라고 포켓몬 관련 굿즈와 게임을 할 수 있는 곳으로 향하고, 남편은 동경 여행 최초 쇼핑에 나섰다. H&M에서 세일하는 2900엔짜리 바지를 살 것인가, 유니클로에서 3900엔짜리 바지를 살 것인가가 그의 고민.      


내가 보면 그 바지가 그 바지고, 그 바지는 지금 사는 곳 옷장 안에 들어 있는 그 바지의 어덜 칼라에 지나지 않은 것이 아닙니꽈.      


묻고 싶지만 지그시 말을 삼킨다. 애로사항이라면 그 비슷비슷한 바지의 핏을 꼭 봐달라고 한다는 것. 아내들이 오늘 립스틱 색 어떻냐고 남편들에게 물어보면 그 립스틱이 어제 바른 그 립스틱과 다른 것이냐고 속으로만 생각하며 눈만 껌벅 껌뻑하게 되는 그런 피팅 시간이랄까.

2900엔 바지도 사고 3900엔 바지도 샀으면 좋겠지만, 세상 물욕 초월한 초월남 사전에 구매 시 비스무리한 것 두 개란 없는 것이다.      

남편은 바지를 살펴보고 아이가 온다고 했던 호텔로 잠시 향했고, 나는 무지에서 구매대행을 시작했다.

-무인양품 카페에서 먹은 시나몬롤과 양 많은 아메리카노- 빵이 조금 비싸지만 촉촉하고 맛있었다!


동생이 부탁한 잠옷 네 벌을 사고, 키친 시소, 에센셜 오일 등등을 사고 로프트에서 템베아 장갑대신 비니를 샀다. 그리고 드디어 정착하기로 결정한 1616 아리타 접시를 샀다. 나의 그릇 여행은 착륙한 적이 거의 없었는데, 현란한 무늬의 그릇들도 사보고, 심플한 그릇, 저렴한 라인 이렇게 저렇게 섞어 쓰다가 이제 1616 아리타 접시(TY)로 정착하기로 했다. 아리타접시는 일본이 원산지라 30퍼센트 정도 저렴한 것 같다. 일단 반찬 접시만 8장쯤 샀다. 접시가 얇고 무게도 가벼워 짐 부담을 덜었다. 이가 나가고 하는 것에 부담이 있었는데 킨츠키를 조금 배워 그 고민도 해결됐다.  


저녁을 먹기 위해 헤쳐 모인 우리. 네무로 하나마루 스시 먹으러 백화점까지 걸어갔지만, 이미 대기표번호마저 끝나버린 인기 식당. 우리는 츠키지 시장 근처 스시잔마이로 향했다.


회는 신선했지만 밥이 내 스타일이 아니었던 듯_


편의점에 들러 내일 아침거리도 잊지 않고 샀다. 호텔에 먹을 걸 쌓아두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꼭 먹을 수 있는 것만 사고 있다.

그저께 돈키호테에서 한국에서 먹을 초콜릿과 과자류들을 샀고, 좋아하는 불도그 돈가스 소스가 없었는데 편의점에서 판매 중이라 친정 것 우리 것 두 개를 구입했다.

호텔로 돌아왔다. 평발이라 많이 걸으면 발바닥이 너무 아픈데 만 보에서 만 오천보 사이도 무리인가 보다. 뜨거운 물 받아 욕조에서 반신욕을 좀 했다.(KOKO 호텔 화장실 냄새남_ 아마 거의 건식 사용에 건식 청소라 미세한 분말들이 바닥에 남아있는 듯. 무슨 분말?? 또르르_ 물을 쫙쫙 뿌려 락스도 좀 섞고 해서 빡 빡 닦아내고 싶으다)      

밤 10시 반부터 짐 싸기 모드에 돌입했다. 한국에서 출국 시 인당 15킬로그램 맞춰 캐리어 세 개와 백팩 세 개를 끌고 지고 왔는데 한국으로 입국하기 위해 인당 추가 5킬로씩 늘였고, 기내 들어갈 때도 인당 거의 10KG씩 기내 반입 짐을 나눠 들었으니 비포 앤 에프터로 치자면 근 25KG에서 30KG의 짐이 늘어난 것.

10시 반에 시작한 짐 싸기 테트리스가 1시가 다 되어 끝이 났다(그 정도면 선방 아니냐고? NO~ 세 개 캐리어 중 한 개의 캐리어). 다행스럽게도 남편은 짐 싸기에 진심이고 소질도 있어 플랜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정말 자잘한 것들을 많이 샀구나. 무지에서 야채 발효시켜 먹는 누카즈케까지 1킬로그램씩 두 개 사고, 소금에 꽂아 놓고 쓰는 귀여운 펭귄 스푼(왜 때문이지?). 서울 가는 길 대중교통 이용할 때마다 먹을 멀미약, 냉장고에 붙여 놓고 스는 테이프와 펜, 수저받침, 스테인리스 냄비 뚜껑 손잡이., 패브릭 꼬꼬 손잡이. ufo 손바닥만 한 미니 컵라면 등등...

작고 귀여운 것들. 저렴하고 실용적일 것들. 두고두고 보면서 먹으면서 여행지를 떠올리게 하는 것들.

나의 전리품짐정리가 마무리되어 수화물 그램수가 대충 추산이 되는 걸 보고 남편은 한시름 놓는 듯했다. 한결 가벼운 표정으로 남자팀 방으로 향한다. 그의 뒤태가 참으로 듬직해 보인다.

나는 그릇 준비에 미진한 점은 없나 싶어 유튜브를 검색해 본다. 알고리즘은 시간 차가 다른 나의 페르소나들의 브이로그로 나를 안내한다.

동경 깟바쿠시초 매장은 거의 도매가격 수준의 그릇들의 집합체 같은 곳인듯한데, 거기에 간 어떤 유투버는 거의 무지성으로 그릇들을 담고 있다. 내 기준으로 저 그릇들의 하나당 무게는 상당하다. 누가 보면 거주민인 줄 알겠는데 아닙니다. 부산새럼.... 유모차를 끌며 옆에 따라오는 남편은 허허실실..

세상은 역시 넓고 나보다 용자는 얼마든지 많구나....      


한시름은 놓았지만 やっぱり... 내일, 무사히 집에 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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