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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ho Mar 02. 2024

화수분 피시본

자구를 올리는 것이 너의 소임이라면.


고향집 정리를 하러 가기 위해 짐을 꾸리고 있자니 목욕탕 한 곳에서 습도 조절을 받고 있는 피시본이 눈에 들어온다.


이 피시본은 무려 5년 전에 당근에서 구매했던 것.

피시본이라는 생선 뼈 모양의 귀여운 식물이 가지고 싶어 마음에 담아두던 차에, 당시 한창 활성화되던 당근 마켓에서 14,000원을 주고 문고리 거래로 데려 왔었다.

얼굴을 못 본 피시본의 주인은 챗으로, 이 피시본이 너무 잘 자라 자구(식물의 새끼)로 화분 몇 개는 너끈히 만들었었다고 이야기했던 게 떠오른다. 통통하고 진한 녹색의 잎 모양이 이뻐 토분에 담긴 그 식물을 받아와 침대 머리맡 창가에 두고 기르기 시작했다. 전 주인의 말대로 피시본은 자구를 열심히 키워냈다.

주택이라 식물들이 많기에, 이름을 붙여 주지 않아 이름은 없지만, 이 아이는 지금 우리 집에 있는 모든 피시본들의 엄마이다.


다 다른 피시본형제자매(?)들

자구 피시본들은 죽죽 자라 20센티에 달하는 자구도 있고, 형제끼리 하나로 묶어 한 화분에서 지내는 자구들도 있다.  사진에 없는 두 개의 자구는 화분에 담아 지인들에게 선물도 했다.


하지만 얘네들은 자기 몸에서 무언가를 뽑아 올리지는 않는다.

아직 그럴 정도로 많이 자라지는 않아서일까.

이미 엄마 키를 넘어섰는데도 올곧게 한 방향으로만 자라고 있다. 엄마 피시본은 그만해도 될 것 같은데 쉬지도 않고 자구를 올린다. 한 번의 물 마름과 한 번의 과습으로 잎 한편이 쭈글쭈글한데도. 그런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자구를 올리는 통에 엄마 피시본의 가지 사이사이에는 자구를 뽑아낸 흔적이 가득하다.

이 작고 연약해 보이는 피시본 안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늙고 못생기고 쭈글쭈글한 피시본을 보고 있자면 어쩔 수 없이 엄마가 떠오른다.

고향을 생각하면 가난하고 늙은, 내 부모님의 모습이 겹쳐지는 것이 참 어쩔 수 없다.      

그간은 귀향을 할 때면 마음 한 편이 무거웠었다. 부모님을 그곳에 두고 올라오는 그 순간이 벌써부터 그려지기 때문이었다. 부모님이 올라오신 지금, 고향은 이제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나의 눈물이 범벅된 유년의 뜰이 아닌.


열아홉 살까지 거기에서 자랐으니 어린 시절의 공간은 그곳이 다라고 할 수 있겠다. 상처와 아픔을 잴 수 있는 자가 있다면 어릴 적에는 그것이 10센티 밖에 되지 않아 상처가 7센티만 되어도 한계치에 다다른 듯 힘이 들었다.

지금은 100센티는 아니더라도 70센티 정도 되는 자를 가지고 있으니 10센티의 상처에도 그렇게 아프지 않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그 자는 길어질 것이라고, 그러니 지금이 전부인 양 그렇게 힘들어하지 말라고 누군가 알려주었더라면, 지금 후회하는 그 시간들을 그토록 아파하거나 방황하지 않고 보낼 수 있지 않았을까.     

엄마 피시본의 영양 상태와는 상관없는 것인지 자구들은 튼튼하고 귀엽고 밝게 자랐다.

안쓰러운 피시본아. 이제 그만 일을 다 하려무나.

고향 집에 다녀와서는 길게 뻗어있는 자구들을 가지치기해주고 과습으로 죽은 잎을 잘라내고 가지 사이를 깨끗하게 닦아내고 영양가 있는 흙들을 올려 주어야겠다.


자구를 계속 생산하는 것이 너의 소임이라면 이것이 나의 소임이겠지.

네가 자연스러운 엔딩을 맞이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우리 모두의 자연스러운 엔딩을 맞이할 수 있기 위해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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