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없음의 쓸모있음(1)

by eunho

11월 27일, 내가 살고 있는 곳에 유례없는 폭설이 내렸다.

주차된 차는 차 한대 분량의 하얀 눈을 차에 이었고, 종아리를 넘어서는 깊이의 눈 무덤에 십 수 년 전 산 헌터장화를 꺼내 신으며 이 곳이 북유럽인듯한 정취를 느꼈다.


폭설이 내린 다음 날 오전에도 눈발은 이어졌다. 주택가 동넷길은 미끄러워 차를 이용할 수 없었다. 버스를 타고 아이가 미끄러질까 함께 학교를 오갔다.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 주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한 길가에 수 십 년은 되었을 소나무가 쌓인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꺾여 있었다.

둥치가 제법 두터웠는데, 운이 없었다. 눈의 무게를 잘 이기기 좋은 형태로 햇빛 바라기가 되지 않은 터였다. 나무도 몰랐을 것이다. 제 생에도 이렇게 많은 눈은 처음이었을테니.


습설은 구정물을 남기며 서서히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어릴 적 정비되지 않은 길가를 오가며 등교를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운동화에 질퍽질퍽한 물기가 묻어나다 발가락부터 조금씩 젖어들며 차가워졌던 몸의 기억.

올 봄, 제법 돈을 들여 정비한 집의 작은 마당도 초토화되었다. 맡겨서 정비한 정원이어, 펑펑 쌓인 눈을 보면서도 무지한 마당 주인은 창 밖을 바라보며 발만 동동 거렸다.


한국의 기후 조건에는 맞지 않는 자작나무가 동네에도 몇 그루씩 있다.

일단 건넛집 자작나무는 심겨진 이후 한 번도 자리바꿈을 한 적이 없는데, 우리 집 자작나무는 심길 때부터 너무 빼곡하게 심겨 몇 번의 옮겨심기 후 8그루가 죽었고, 가장 실한 한 그루만 2층 안방 창을 가려주며 살아 있었다. (나무의 잦은 자리 바꿈은 나무를 죽게 하는 원인 중 하나이다.)


작년, 다른 자작나무가 죽어갈 때, 나는 죽은 나무는 낙엽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겨울에 나무는 지닌 영양소를 지키기 위해 잎을 떨구는데, 더 이상 양분을 저장할 필요가 없는 생명은 굳이 잎을 떨굴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한 번도 자리바꿈 하지 않은 건넛집의 자작들은 앙상한 가지를 꼿꼿이 세우며 하늘로 우뚝 서 있고, 습설에 반은 기울었던 우리집 자작은 3분의 2쯤 고개를 올리다 올리지 못한 채 노란 머리를 바닥을 향해 드리운 채 바람에 떨고 있다.


어둔 밤에, 새벽에, 중간 중간 나와 너의 가지를 털어 주었어야 했는데 미안하구나..


안방 창을 활짝 열면 가지가 잡혔을텐데, 함박 눈 내리는 것 보며 입만 벌리고 있었다.

나는 실현되지도 않은, 나의 나무 터는 모양새를 반복해 상상하다 속이 아릿해진다.


자작이 눈을 이다 못해 반으로 휘어 땅바닥에 처박혀 있었을 때, 나무의 몸을 일으켜 보려했지만 불가능했다. 최소 10년은 넘은 나이일텐데.


나무는 허리를 세우지도, 잎을 떨구지도 못한 채 박제되어 있다. 쨍쨍하게 살아 있는 동류의 나무 옆에서 죽어가는 나무를 바라보고 있는 것은 고통이다. 그래서 나는 안방 창의 커튼도 치지 못한다.

너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봄이 데려 올 정령에 기대보아야 할까.

아직 뿌리 밑동 가에는 연두가 있다고.


죽어가는 나무를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과 길을 걷는 것은 고문이다.

나는 슬프고 그이는 무심한 얼굴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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