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즈음 읽었던 책은 최지월 작가의 '상실의 시간들'이라는 책이었다. '윌라' 어플에 우연히 뜬 추천 팝업창을 보고 나도 모르게 손길이 갔다. 친모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홀로 남겨지게 된 병든 아버지의 부양을 둘러싸고 세 자매가 겪는 갈등과 현실적인 문제들을 직시한 소설이었다. 둘째인 화자의 내레이션으로 서술되는 이 작품은 너무 사실적이다. 화자 자신의 실체험이 바탕이 되어 쓰인 소설이라 그래서인지 더욱 그랬고 실제 작가는 이후 더는 작품을 발표하지 않은 듯했다. 이 소설에는 사랑도 없고, 희망도 없다. 급사한 어머니에 대한 회환과 자식으로서의 의무에 대한 부담이 가득하다. 42.195km의 마라톤을 달리는 주자가 있고, 결승점이 자꾸 뒤로 물러나는 듯한 환영에 시달리는 내레이션이 지속될 뿐이다.
어머님의 색전술 시술은 결과만 놓고 보았을 땐 잘 되었다. 남편은 1차 병원에서 받은 소견서를 들고 바로 삼성병원 암병원 간센터로 달려가 진료를 잘 보신다는 선생님의 예약을 근 시일 내로 잡았다. 첫 진료에서는 치료에 난색을 표하던 의사 선생님도, 정밀 검사 후 전이가 없는 것을 알고 치료법을 제안해 주었다.
방사선 동위원소를 이용하여 종괴를 줄이는 방사선 색전술 치료법이 그것.
치료비는 고가이지만 시술 후 부작용이 적다고 했다. 진단부터 치료 완료까지 한 달이 걸렸고, 치료는 무척 잘되었다. 이후엔 종괴의 줄어드는 양상을 본 후 절제를 할지 항암을 할지 치료법이 설 터였다.
하지만 케어가 어려웠다. 보호자 상주만 가능한 어머님 컨디션상 남편과 아가씨가 번갈아가며 입원 시술에 참여했지만 병원에 오래 있을 수는 없어 시술받을 2박 3일 정도만 병원에 있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셨다.
간이 아프면 구역감이 심하다는데 어머님은 잘 드시지 못했다. 어떤 음식을 가져다 드려도 물리 시기 일쑤였고, 물에서조차 비린내가 난다고 하셨다. 어르고 달래는 것은 남편의 몫이었다. 남편은 손사래를 치는 어머님께 죽 한 사발을 떠 먹여 드리고는 했다.
그날이 언제였더라. 난생처음 119를 부르던 날이었다. 퇴원 후 2주가 흐른 시점이었다. 아침 점심 많이는 못 드셨는데, 그날 저녁 삼겹살을 조금 구워 찌개와 같이 가져다 드렸다. 조금 후에 그릇을 가지러 가 보니 그릇을 싹 비우셨기에 이제 조금 회복하시려 보다 했다. 밤 열 시쯤 자기 전 어머님 방에 들른 남편이 나를 소리쳐 불렀다. 119를 부르라고 했다. 저혈당 쇼크였다.
코로나 때문에 방역복을 겹겹이 걸친 119 대원들이 집으로 들어섰다. 어머님의 혈당을 쟀는데 혈당이 너무 낮았다. 긴급히 수액을 맞은 어머님은 정신을 차리셨고, 인근 대학병원 응급실로 옮겨졌다. 코로나로 의료 시스템은 너무너무 더뎠다. 응급실 한번 들어가려고 해도 밖에서 서너 시간을 대기해야 했다. 버리려 뒀던 두터운 극세사 이불이 마침 차 트렁크에 있어 남편은 그것을 빼와 어머님께 둘러 드렸다. 그 사진이 아직 있다. 실외 대기실 빨간 전등 아래 휠체어에 앉은 채 이불을 겹겹이 두른 어머님의 모습이 담긴. 어머님의 표정은 담담해 보인다.
응급실에서 몇 가지 검사를 시행했는데 식사를 못하시는데도 센 당뇨약을 계속 드셔서 저혈당 쇼크가 온 것 같다고 했다. 이외 수치들은 정상이었다. 날을 꼬박 새운 남편은 어머님을 모시고 집으로 돌아왔고 아가씨에게 연락을 했다. 그리고 이 날 이후 어머님은 다시는, 당신의 손때가 가득한 당신의 방으로 돌아오시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