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튤립과 남겨진 것들

by eunho

주택 생활 4년차, 봄에는 우아한 가드너였다가 여름에는 자외선을 차단하기 위해 중무장을 하고 한여름 뙤약볕에서도 2주에 한번씩 잔디를 깎아야 하는 노무자에서, 겨울이 되면 비로소 방학을 맞는 삶을 되풀이하고 있다.


'ㄱ'자로 둘러쳐진 작은 정원을 가꾸기 위해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남편의 서랍 속, 남편이 튕긴 계산기로는 아마 손익 분기점을 넘기지 못한 정원 생활자의 대차 대조표가 있을 것이고, 거기에는 빨간 x표로 낙제점이 매겨져 있을 것이다. 해마다 되풀이하는 실수가 있다면 바로 '튤립발아'와 열대 식물인 홍콩야자나 뱅갈고무나무 가지마루 팬더의 우수수한 '낙엽'일텐데, 나는 올해 처음으로 내가 저지른 실수가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다. 알고 있더라도 이상하게 바로 실천되지 않는게 가드닝인 것이다. 아니면 내게는 그런 가드닝 센스가 다른 사람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게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튤립 구근들의 무덤인채로 겨울을 났던 여러 개의 토분들. 이파리 하나없이 긴 겨울을 나야 했던 가지마루 팬더나 홍콩야자들..


어머님이 투병하기 시작하셨을 때, 아이도 아프기 시작했는데, 아픈 두 사람이 집안에 있는 것만으로도 쉽지 않은 시간들이었다. 그냥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먹구름이 걷힌 이 시기의 시간과 일상이 감사할 뿐이다. 어찌됐든 투병에는 '적극성'이 필요하다.


아픈 어머님께 적극성을 보이고 다가간 사람은 남편이었다. 근무시간이 유연했던 남편은 어머님의 병원 진료, 각종 검사, 시술, 시술하기 위한 입원 보호자 등으로 기사 노릇부터 시작해 어머님의 격려자이자 간병인이었다. 나는 남편이 하는 메인 일들의 보조를 담당했다. 그리고 아이 케어에 더욱 집중했다.


이것이 당연한 일일까.

나는 내 위치에서 내가 더하고 더해야 할 일들을 하지 않고 있다는 의심으로 가끔은 불편해지고는 했다. 사실, 어머님 자신도 자신의 중풍 든 시아버님을 전적으로 수발하였고 40여년을 거동이 불편한 시어머님을 모시고 살지 않았는가.

그래서였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자라서 남편은 더욱 자신이 앞장서서 어머님을 간병했다. 자신은 어릴적 엄마에게 지워진 삶의 무게와 고통을 보는 것이 힘들었다고 했다. 내가 아무리 정성껏 간병하겠다고 해도 그러지 말라고 했는데, 아마 나의 무의식 속에 있을, 나 자신도 컨트롤하지 못한 무언가까지(-혹자는 문학적인 표현으로 '괴물'이라고도 했었다-) 남편은 계산하고 있었던 것 같다.


아쉬운 점은, 그래서 아픈 어머님께 더 다가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끙끙 앓는 소리를 내는 당신의 머리를 쓸어 넘겨드리지 못했고, 오물 묻은 옷가지들을 굳이 낑낑대며 끌고 가 세탁하는 그 손을 하지말라 잡아드리지 못했다. 건강했던 어머님은 크게 한번 편찮으셨던 적도 없었다. 가끔 속이 불편하거나 감기에 걸리면 죽을 쑤어 드리거나 감기약을 넣어 드리고, 입맛에 맞을 법한 음식들을 사다 드리는 것이 전부였다. 이렇게 깊은 한번의 병마로 낙마하실 줄은...

투병 가운데 어머님께 가까이 갈 경계를 넘는 연습들을, 그것이 시행착오의 연속이라고 할지라도 하지 못한 것이다.


'튤립 발아'의 실패 원인은 수분과 온도 조절에 실패해서였다. 첫 해는 배수가 잘 되지 않는 땅에 구근을 심어 발아에 실패했고 두번째 해엔 너무 추운 날씨, 화분에 튤립을 심은 뒤 물을 흠뻑 준 것이 화근이었다. 오후 5시, 해가 저물어갈때 준 물은 그대로 화분을 꽁꽁얼려버렸고 튤립은 물기가 마르지 않은 화분안에서 곰팡이를 피우며 죽어갔다. 열대식물의 낙엽 현상은, 같은 거실내에서라도 금방 금방 자리를 바꾼 탓이었다. 추울까봐 그늘에 있던 아이를 거실 창 바로 근접한 곳으로 선뜩 선뜩 옮긴 것이 원인이었다. 이틀 뒤 자리를 바꾼 화분들은 우수수 잎을 떨어트렸다.


3년을 실패하고, 이제야 알게 된 것들.

어떤 것은 영영 모르게 되는 것들도 있을 테지만, 어떤 것들은 되풀이됨으로써 깨닫게 되는 것이다.

내가 이 글을 시작하게 된 계기같은 것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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