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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젹 Jul 23. 2023

커피와 나의 이야기_1

중독의 기원을 찾아서

언젠가 써 놓은 커피에 대한 글을 다시 읽었다. 나의 글들은 디지털 세상과 현실 세계 곳곳에 산재되어 있어, 가끔은 이렇게 빨래를 마친 바지 주머니 속 5천원짜리를 발견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시작하고 맺지 못한 시리즈(가 될지 안될지는 끝까지 모르지만)가 있지만, 산만한 나는 또 언젠가 이 이후의 이야기를 할 것이다. 사실 이 글 뒤에 올 이야기가 더 재미있을 것 같아 글을 시작했는데 맺지 못했다. 

참고. 이 글은 글쓴이가 바리스타가 되거나 카페를 차리는 것으로 끝나지는 않는다. 



2007년, 부산


커피는 ‘마시면 안 되는’ 것이었다. 꽤 오랫동안 그랬다. 90년대의 커피는 주로 따뜻한 물에 설탕, 프림, 커피 가루를 따로 넣어 우려낸 것이었고, 핸드드립은커녕 에스프레소 베이스의 카페도 흔치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가끔, 아마도 중학교 때부터 부모님에게 한 잔씩 받아 마셨던 커피는 달았고 향긋한 어른의 맛이었다. 부모님은 커피를 달라고 할 때마다 “머리 나빠진다” 하시며 겁을 줬는데, 일정 부분 사실인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커피와 가까워진 한 순간을 명확히 기억한다. 2007년,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나는 혼자 서면을 가서, 아마도 금요일에 기숙사에서 나온 후 집에 가기 싫은 마음으로 방황하고 있었다. 그땐, 지금도 그렇지만 혼자 목적 없이 가까운 길을 돌아가는 것을 참 좋아했다. 

서면 역 인근을 돌아다니던 나는 서면 롯데백화점 옆에 있는 커피빈The Coffee Bean & Tea Leaf에 가서 따뜻한 카푸치노를 시켰다. 혼자 내 돈으로 시킨 첫 커피였다. 왜 카푸치노였는지는 모르겠다. 설마 ‘거품 키스’를 떠올렸나 했지만 찾아보니 그 드라마와는 시기가 맞지 않는다. 이름이 좋았던 것 같기도 하고. 날씨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주변의 약한 한기와 커피의 온기가 잘 어울렸고 그 시간을 꽤나 여유롭게 즐겼던 것 같다. 책을 읽었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그때의 기억이 완전히 왜곡되어 내가 나를 3인칭으로 본다. 아마도 그 주변을 지나다니며 (그곳은 아버지의 차를 타고 교회에 갈 때마다 지나가는 길이었다) 거기 앉아 있었던 나를 수년간 머릿속으로 재현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덧붙이자면 당시 부산에서 ‘까페’는 여자들끼리 수다를 떨러 가는 곳으로, 몇 년 안에 사라진 시선이긴 하지만 남자 혼자, 혹은 남자끼리 ‘까페’를 가는 것이 소위 ‘게이 같은’ 일로 여겨졌다. 조금 다른 시대, 조금 다른 동네였다.      


이후에 나는 종종 카페를 갔고, 시나몬 올라간 카푸치노는 고등학교 시절의 향이 되었다. 고3 정도 되었을까, 커피와의 아찔한 만남도 있었다. 해운대를 혼자 갔다가 돌아오는 길, 문이 활짝 열린 카페 안에서 1000원짜리 커피를 발견했고, 주문했다. 커피가 생수 먹는 종이컵에 담겨 나왔고, 어렸던 나는 ‘싼 건 이유가 있구나’라는, 반쪽의 깨달음을 얻었다. 나머지 절반의 레슨은 컵 내용물에 있었다. 미친 듯이 쓴, 부드러움이라고는 없는 커피. 에스프레소를 처음 마신 순간이었다. 남은 커피를 버렸는지 어쨌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하지만 이후에 종종 생각이 나는 맛이긴 했다.


2010년, 부산


고등학교 시절 공부를 잘 했던 나는 3년간 쌓아온 오만함 덕에 재수의 길을 걷게 되었다. 재수학원은 집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는데, 매일 아침 재수학원 앞 편의점에서 스타벅스 에스프레소 앤 크림 캔커피를 한 잔씩 사는 것이 아침 루틴 중 하나였다. 다른 하나의 습관은, 수년간 잊고 지냈었다가 재수학원 선생님을 방문했을 때 다시 기억해 냈는데, 무려 성경을 읽는 것이었다(지금은 신 없는 내 세상이 좋다). 달큰하고 끈적한 연유 맛과 진한 커피 향은 매일 그렇게 재수생의 아침을 깨웠다. 


앞서 말했듯, 나는 짧은 거리를 돌아가는 것을 좋아한다. 집과 학원 사이의 거리는 도보 5분이었지만 학원에서의 시간이 끝나면 나는 Y라는 친구를 버스정류장에 데려다주고, 불이 다 꺼진 ‘법조 타운’(부산 지방법원, 검찰청 앞의 오피스 구역)을 혼자 노래 연습을 하며 걸었다. 그러다 ‘휘고Figo’라는 카페를 발견했다. 그 당시로는 드물게 핸드드립 커피를 파는 곳이었다. 커피 콩에도 종류가 있고 멋진 지명을 이름으로 쓴다는 것을 그때 알게 되었다. 케냐AA, 에티오피아 원두의 차이를 맛보며, 마네와 모네를 구분할 때처럼 초심자의 기쁨을 만끽했다. 자습이 끝난 10시경부터 카페가 문을 닫을 때까지 앉아 커피를 마시다 집에 가면 내 어른으로서의 삶의 시작이 1년 미뤄졌음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지금은 카페에서 핸드폰도 하고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작업도 하지만, 그때는 순수하게 커피 한잔의 다채로운 맛과 나 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바닷가 도시의 제도권 청소년은 그렇게 커피를 만났다. 


<예고편> 

서울의 대학생이 된 나, 정착하지 못하고 서울 곳곳을 떠돌던 기억과 늘 중간 기항지가 되어준 카페. 그리고 피 대신 카페인이 돌게 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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