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과 성찰> 시리즈 9
바람이 스치는 가을 오후, 나는 천천히 산책길을 걸었다.
햇살에 부서진 낙엽들이 길 위를 헤매며 반짝였다.
그 짧은 빛이 내 마음의 가장 깊은 곳을 건드렸다.
문득, 오래전 고향의 가을이 불현듯 찾아왔다.
이민의 세월 속에서 수많은 계절을 건너왔지만,
그 시절의 풍경은 여전히 내 안에 살아 있다.
그곳에는 순수했던 시간,
그리고 아직 다 전하지 못한 따뜻한 마음의 온기가 머물고 있다.
“그리움은 시간이 흘러간 자리에 피어나는 꽃이구나.”
그 생각이 바람처럼 내 안을 스쳐 지나갔다.
이민의 길은 언제나 이별과 시작의 길목이었다.
무언가를 놓고, 또 무언가를 품으며 살아왔다.
시간은 많은 것을 앗아가는 듯했지만,
그 속에서도 사랑과 추억은 모래처럼 손끝에 남았다.
젊은 날의 나는 늘 사라지는 것을 두려워했다.
무언가를 붙잡지 않으면
내 존재마저 흩어질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리움을 쥐고 있었고,
그 안에서 나를 증명하려 애썼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흘러간다는 것은 잃어버림이 아니라, 나를 만들어가는 길이라는 것을.
호수 위로 구름이 흘러간다.
그리움도 저 구름처럼 흘러야만 맑아진다.
머무르려는 그리움은 슬픔이 되고,
흘러가는 그리움은 삶을 단단하게 한다.
이민 20년의 세월은 그렇게 나를 다듬었다.
처음엔 모든 것이 낯설었고,
가끔은 세상 속에 홀로 남겨진 듯 외로웠다.
그러나 그 외로움 속에서 나는
진짜 ‘나’ 를 만났다.
사람은 시간이 흐른 뒤에야
무엇이 소중했는지를 깨닫는다.
돌아가신 부모님,
멀리 있는 친구들,
함께 웃던 사람들.
그들은 모두 내 삶의 강물 속에서
여전히 조용히 흐르고 있다.
이제 나는 그리움을 붙잡지 않는다.
그리움은 나를 만들어온 시간의 또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이국의 하늘 아래에서
나는 시간의 편에 서서,
조용히 나를 다듬는다.
손끝에 닿는 바람 속에서
다시 한 번 내 안의 ‘그리움과 성찰’ 을 느낀다.
그리움이 흘러가고 남은 자리에
이제는 평온한 미소가 피어난다.
그리고 그 미소 속에서
나는 오늘도 살아 있음을,
여전히 사랑하고 있음을,
조용히 느낀다.
“흘러간 시간 속에도, 그리움은 늘 내 마음에 머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