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곳에서 나를 만나다> 시리즈 9 (8)
이민을 온 뒤, 나는 자주 스스로에게 묻는다. 언제부터 이렇게 조심스러워졌을까. 사람들과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은 여전한데, 어느 순간부터 나는 늘 한 발짝 물러서 있는 나를 발견한다. 다가가고 싶다가도 멈추고, 말을 꺼내려다 삼키는 일이 잦아졌다. 처음에는 그 거리감이 낯설고 답답했다. 언어의 벽 때문일까, 문화의 차이 때문일까, 아니면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일까. 이유를 하나로 단정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사실은 내가 의도적으로 거리를 선택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거리는 생각보다 많은 역할을 한다. 낯선 땅에서 완벽히 이해받지 못하더라도, 그만큼 덜 흔들리고 덜 다치게 해준다. 말이 조금 서툴러도, 감정이 온전히 전달되지 않아도, 마음 깊은 곳까지 상처가 스며들지 않도록 막아주는 얇은 보호막 같은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 거리는 나를 고립시키기도 한다. 관계의 따뜻한 온기 대신, 조용한 냉기가 내 주변을 감싸는 순간도 분명히 존재한다. 지켜주는 거리와 외롭게 만드는 거리 사이에서, 나는 자주 갈피를 잃곤 했다.
한국에서 살던 시절의 나는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 세 딸 중 막내라 부모님과 언니, 형부들의 사랑을 한껏 받았고, 친구들과 자주 만나 웃고 떠들었고, 누군가에게 마음을 여는 일도 그리 어렵지 않았다. 말은 빠르고 감정 표현은 솔직했다. 기쁨도, 서운함도 숨기지 않는 편이었다. 그러나 이곳에서의 나는 다르다. 마음의 문을 여는 데 훨씬 더 많은 용기가 필요해졌다. 말을 하기 전 한 번 더 생각하고, 표정을 읽고, 미묘한 뉘앙스를 헤아린다. 작은 오해 하나가 관계 전체를 어색하게 만들 수 있다는 걸 알기에, 조심성은 자연스레 몸에 밴 습관이 되었다.
어느 순간 깨달았다. 이 거리감은 단순한 외로움이 아니라, 이민 초기의 나를 지켜주던 최소한의 울타리였다는 것을. 서툰 언어와 익숙하지 않은 문화 속에서, 나는 나를 보호할 방법이 필요했다. 쉽게 다가가지 않고, 쉽게 기대하지 않는 태도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다. 그리고 그 거리 속에서 나는 내 안의 중심을 세우는 법을 배웠다.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는 힘, 스스로를 다독이는 방법, 외로움과 조용히 마주 앉는 연습을 그때 처음 배웠다.
하지만 거리감이 늘 안전한 선택인 것은 아니었다. 지나치게 멀어지면 관계의 따뜻함을 느끼지 못한 채 고립 속에 머물게 된다. 반대로 너무 가까워지면, 작은 말실수나 오해에도 마음이 쉽게 흔들린다. 그 사이의 미묘한 균형을 찾는 일, 그것이 이민자의 삶에서는 늘 숙제처럼 따라다녔다. 나는 수없이 가까워졌다가 멀어지기를 반복하며, 나에게 맞는 간격을 더듬어 찾아야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조금씩 그 균형을 이해하게 되었다. 상대를 서둘러 판단하지 않고, 그의 리듬을 천천히 관찰하며 맞춰간다. 필요할 때는 조용히 물러서고, 마음이 허락하는 순간에는 한 걸음 다가간다. 완전히 닫힌 문이 아니라, 언제든 열고 닫을 수 있는 살짝 열린 문처럼 거리를 둔다. 그 문 사이로 스며드는 숨결이 부담스럽지 않을 때, 나는 비로소 관계의 온도를 느낀다.
말이 많지 않아도 괜찮고, 자주 만나지 않아도 괜찮다. 함께 있는 시간이 짧더라도,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마음 하나면 충분하다는 것을 이곳에서 배웠다. 관계는 양으로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존중의 밀도로 유지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민자의 삶은 늘 선택의 연속이다. 어떤 말은 삼키고, 어떤 감정은 조용히 내려놓고, 어떤 관계는 천천히 열어둔다. 그 선택들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든다. 예전에는 그런 선택들이 나를 소심하게 만드는 것 같아 스스로를 자주 탓했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그것은 나를 지키기 위한 지혜였다는 것을.
때로는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비교하며 스스로에게 묻는다. 한국에서는 자유롭게 웃고 떠들며 감정을 표현하던 내가, 왜 여기서는 이렇게 조심스럽게 살아가고 있을까. 하지만 그 비교는 더 이상 나를 압박하지 않는다. 한국에서의 나와 캐나다에서의 나는, 서로 다른 환경 속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낸 두 개의 나일 뿐이다. 어느 하나가 더 낫거나 부족한 것이 아니라, 그저 다른 삶의 얼굴일 뿐이다.
나는 이제 거리감을 선택한다. 무심해서가 아니라, 무책임해서가 아니라, 나와 타인을 동시에 존중하기 위해. 누군가 내게 묻는다. “왜 이렇게 거리를 두는 것 같아요?” 예전 같았으면 설명하거나 변명했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담담하게 웃으며 대답할 수 있다.
“그게 제가 이곳에서 살아가는 방식이에요.”
그 한 문장 안에는 수많은 밤의 고요함과, 스스로를 다독이던 시간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거리감을 둔다는 것은 외면이 아니라, 관계를 오래 지켜내기 위한 선택이라는 것을 나는 이제 안다.
이 거리 속에서 나는 성장했다. 처음에는 외로움과 낯섦 속에서 움츠러들었지만, 이제는 관계의 온도를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 마음이 무거워질 땐 한 발 물러서고, 대화가 자연스러울 땐 조심스럽게 다가간다. 이 단순한 리듬 속에서 나는 나 자신과 타인을 동시에 이해하게 된다.
오늘도 나는 사람들 속에서 내가 선택한 거리감을 느낀다.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은 그 사이에서 조용히 숨을 고른다. 그리고 속삭이듯 말한다.
“이 거리가 나를 지키고, 나를 살아 있게 한다.”
이민자의 삶에서 내가 배운 가장 큰 지혜는, 결국 자신의 마음과 타인의 마음을 존중하며 적절한 거리를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그 지혜를 잃지 않기 위해, 소란스럽지 않게 그러나 분명한 나만의 리듬으로 이곳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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