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곳에서 나를 만나다> 시리즈 9 (11)
우리 가족이 처음 캐나다 땅을 밟았을 때, 세상은 모든 면에서 낯설었다. 익숙했던 언어는 더 이상 통하지 않았고, 문화는 설명 없이 스며들지 않았다. 신호등 하나, 버스 노선 하나를 이해하는 일조차 긴장과 계산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아이들의 손을 꼭 붙잡고 길을 건널 때마다, 나는 이곳에서 부모이자 이방인이라는 두 개의 역할을 동시에 떠안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이민 초기의 나는 ‘나답게 산다’는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다. 하루를 무사히 넘기는 일, 아이들이 다치지 않게 키우는 일, 가족이 이곳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버티는 일이 전부였다. 낯선 환경에서의 삶은 수많은 선택의 연속이었지만, 그 선택들은 대부분 생존을 향해 있었다. 나 자신에 대해 묻는 질문은 늘 뒤로 밀려났다.
시간이 흐르면서, 단순히 살아남는 것만으로는 나를 온전히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이 조금씩 분명해졌다. 낯선 곳에서 오래 살아가기 위해서는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만큼이나 스스로를 잃지 않는 힘이 필요했다. 이민자의 삶에서 정체성은 저절로 주어지지 않는다. 끊임없이 흔들리고, 질문받고, 때로는 스스로를 의심하면서 다시 세워 가야 하는 것이었다.
아이들 학교에서 처음으로 학부모 미팅에 참석했을 때, 나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자료를 넘기고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 내 마음은 자꾸 안쪽으로만 향했다. 이 자리에 앉아 있는 나는 어떤 사람일까. 부모라는 이름이 먼저일까, 아니면 아직 이곳에 완전히 속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감각이 먼저일까. 누군가 질문을 할 때마다, 나는 그 말에 바로 닿지 못하고 잠시 머뭇거렸다. 내가 여기에서 차지하는 자리가 분명한지, 혹은 계속 확인받아야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미팅이 끝난 뒤 교사가 건넨 짧은 말은 그날 저녁까지 마음에 남아 있었다. 그 말을 곱씹으며 생각했다. 이곳에서의 나는 늘 조심스러운 위치에 서 있지만, 동시에 아이의 하루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그 두 감각이 겹쳐진 자리에서, 나는 이제 쉽게 뒤로 물러날 수 없다는 것을 조용히 받아들였다.
아이들은 우리의 낯섦을 고스란히 겪지 않았다. 우리가 처음 마주한 언어적·문화적 장벽은 아이들에게는 오히려 가능성이 되었다. 이민 1세 부모가 흘린 수고와 불안은 아이들에게 발판이 되었고, 그 위에서 아이들은 자신들의 세계를 자연스럽게 확장해 나갔다. 지금은 영국과 뉴욕, 그리고 토론토에서 각자의 자리에서 전문가로 살아가고 있다. 우리가 겪었던 두려움이 아이들의 자유가 되었다는 사실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깊은 위로로 다가온다. 이민 1세의 고단함이 다음 세대에게는 기회가 되었다는 감각은, 나의 선택들을 다시 긍정하게 만든다.
중년의 나이에 칼리지와 대학 강의실에 다시 앉았을 때, 나는 스스로에게 여러 번 질문을 던졌다. 지금 이 선택은 내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갖게 될까. 젊은 학생들 사이에 앉아 노트를 펴던 순간, 나는 다시 한 번 이방인이 되었다. 그러나 그 낯섦은 과거와는 달랐다. 두려움보다는 결심에 가까웠고, 불안보다는 기대 쪽에 더 기울어 있었다. 아이들을 키우며 가족을 위해 헌신해 온 시간 속에서도, 나는 여전히 배우는 사람이었고, 내 삶을 다시 설계할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그때 비로소 스스로에게 허락할 수 있었다. 늦었다고 느껴지는 순간에도, 삶은 다시 시작될 수 있다는 감각은 나에게 작은 경의로 남았다.
사회복지사로 일하며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무겁고, 조심스럽다. 그들의 상실과 혼란을 이해하기 위해 나는 자주 내 안의 이야기를 돌아보게 된다. 낯선 곳에서 버텨낸 시간들, 부모로서 감당해야 했던 책임, 아이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느꼈을 불안과 기대의 무게. 그 모든 경험은 이제 타인의 삶을 이해하는 언어가 되었다. 나의 상처와 성장은 더 이상 숨겨야 할 과거가 아니라, 공감의 자산이 되었다.
이민자로 살아온 시간은 나에게 늘 하나의 이름을 요구했다. 그러나 실제의 나는 늘 그 경계 어딘가에 머물러 있었다. 익숙했던 가치와 새롭게 배워야 했던 질서 사이에서, 스스로를 어디에 두어야 할지 망설인 날도 많았다. 때로는 분명히 알고 있던 나의 모습이 흐려지고, 말과 행동 사이에 설명하기 어려운 틈이 생기기도 했다. 그 과정을 지나오며 깨닫게 된 것은, 정체성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축적의 결과라는 사실이었다. 내가 지나온 시간과 경험, 그 안에서 만들어진 나만의 판단과 태도가 결국 지금의 나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조금씩 인정하게 되었다.
아이들을 바라보며 같은 생각을 한다. 우리가 걸어온 길은 그들에게 단순한 과거가 아니다. 그것은 삶을 대하는 태도이자, 스스로를 존중하는 방식이다. 낯선 환경에서도 자신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다는 믿음, 필요하다면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감각을 전해주고 싶다. 부모로서 내가 남길 수 있는 가장 큰 유산은 성공담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자세일 것이다.
낯선 땅에 처음 발을 디뎠던 순간의 두려움, 강의실에서 다시 노트를 펼치던 결심, 사회복지사로 타인의 삶을 마주하던 책임감까지. 스무 해가 넘는 시간 동안의 낯섦은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 그리고 오늘의 나는, 여전히 완성되지 않았지만 내일을 품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낯선 곳에서 나를 찾는다는 것은, 결국 내가 누구인지 스스로에게 묻고 그 질문에 책임 있게 답하려는 선택이었다. 환경이 나를 정의하도록 내버려두지 않고, 나 스스로의 목소리로 나를 설명해 가는 일이었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낯선 환경 속에서 자신을 지켜야 한다고 느낀다면, 오늘의 작은 선택 하나가 내일의 자신을 지탱하는 힘이 될 수 있음을 전하고 싶다.
나는 오늘도 조용히 마음속으로 말한다.
“나는 여전히 두렵다. 하지만 멈추지 않는다. 오늘을 지탱해 온 선택들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그 힘으로 나는 내일을 향해 다시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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