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지에서 배운 용기, 잃어버린 용기

<낯선 곳에서 나를 만나다> 시리즈 9 (12)

by 이민자의 부엌


난생 처음 캐나다 땅을 밟았을 때, 내 입술은 굳어 있었고 목소리는 사라진 듯했다. 한국에서는 크게 용감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발휘되던 자신감이 있었다. 회의 자리에서 의견이 다르면 정중하게 설명하고 설득할 수 있었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거나 처음 보는 사람에게 말을 거는 일도 어렵지 않았다. 익숙한 언어와 환경 속에서 나는 ‘나’라는 존재의 경계가 분명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낯선 땅에 도착한 순간, 그나마 있던 용기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듯 보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내 깊은 곳으로 숨어버린 느낌이었다. 말하려는 순간 머릿속에서는 문장이 맴돌았지만 입술은 떨렸고, 상대의 표정을 읽지 못하면 마음까지 얼어붙었다. 낯선 환경은 내 존재의 중심을 흔들어 놓았다.


이민은 나에게 ‘잃어버린 용기’를 보여주었다. 익숙함 속에서 자연스럽게 발휘되던 용기는 낯선 환경 앞에서 너무 쉽게 무너졌다. 영어는 늘 내 발음 기관을 거쳐 나오지만, 이민 1.5세대의 유창함도, 2세대의 자연스러움도 없었다. 언어가 막히면 마음도 막히고, 마음이 막히면 존재가 작아지는 느낌이었다.


한국에서 대학 때까지 배웠던 영어는 내 기분과 상관없이 늘 “I’m fine”으로 끝났고, “And you?”를 굳이 하지 않아도 불손하지 않다는 사실은 몇 주가 지나서야 알았다. 누군가 고속도로에서 사고가 났는데 경찰의 “How are you?”에 반사적으로 “I’m fine, thank you, and you?”라고 답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웃지 못했다. 그 이야기는 곧 내 이야기였고, 중년에 이민 온 많은 이들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말 한마디 하지 않았을 뿐인데, 세상에서 한 발짝 밀려난 기분. 그 감정은 이민자의 정체성을 흔드는 가장 깊은 균열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늦은 나이에 다시 시작한 칼리지와 대학교 생활에서 나는 조용하지만 새로운 용기를 배워가기 시작했다. 수업에 들어서면 낯선 공간과 사람들 속에서 마음을 가다듬고, 완벽하지 않은 문장으로 발표를 준비하며, 질문 하나를 하기 위해 손을 드는 작은 도전을 매일 반복했다. 모든 순간이 내게는 작은 산처럼 느껴졌다. 손을 들기 전 심장이 뛰고, 목소리가 떨릴 때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속삭였다. “괜찮아, 그냥 한 걸음 내딛자.”


그곳에서 배운 용기는 한국에서의 용기와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크게 말하는 용기가 아니라, 조용히 버티는 용기였다. 한 번 더 시도해보는 용기, 실수해도 다시 일어나는 용기, 아무도 모르게 눈물을 닦고 다음 날 다시 길을 나서는 용기. 지금은 추억이 되었지만, 아들·딸뻘 되는 학생들 사이에서 경쟁하며 자리매김하기까지 수많은 실수를 견디고, 하루가 일 년 같았던 그 시간을 버텨낸 것은 내게 큰 용기였고, 그만큼의 성취감이었다. 더구나 “뭐하러 고생을 사서 하느냐”며 만류하던 아이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선택한 길이었기에, 졸업식장에 당당히 설 수 있었던 순간은 내 삶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이민자의 삶은 단순히 국적이 바뀌는 일이 아니다. 언어가 흔들리면 생각이 흔들리고, 생각이 흔들리면 정체성의 경계가 흐려진다. 나는 어느 순간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말이 막히는 순간, 나라는 존재도 함께 작아지는 걸까?”


이 질문들은 나를 괴롭히기도 했지만, 동시에 나를 다시 세우는 힘이 되었다. 정체성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경험과 시간 속에서 계속 다시 쓰이는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의 나는 ‘능숙한 나’였다면, 캐나다에서의 나는 ‘다시 배우는 나’였다. 그리고 그 둘은 서로 다른 존재가 아니라, 하나의 사람 안에 공존하는 두 얼굴이었다.


타지에서의 용기는 소리 없이 자라는 풀잎 같았다. 눈에 띄지 않아도,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매일 조금씩—아주 조금씩 자라나는 힘. 그리고 어느 날 돌아보면 분명히 자라 있었지만, 그 순간은 늘 조용했다.


대학 시절, 나는 Anti-Asian Racism Symposium에서 온라인 스피치를 할 기회를 얻었다. 처음에는 카메라 앞에서 목소리를 전하는 일이 막막했다. 수십 번 연습했지만 실제로는 심장이 뛰고 손이 떨렸다. 하지만 화면 너머 청중이 내 이야기에 집중하는 모습을 느끼며, 그동안 쌓아온 경험과 생각이 하나씩 이어졌다. 그 순간 문득 깨달았다. “아, 나는 지금 용기를 내고 있구나.”


그 작은 순간이 나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하루를 무사히 마치는 힘, 스스로 삶을 살아가는 힘, 눈에 띄는 성취가 아니라 나 자신으로 존재하는 힘이 생겼다.


이민 과정에서 잃어버린 것처럼 느꼈던 용기는 사실, 익숙함 속에서 누리던 용기였다. 빠르고, 크고, 눈에 띄던 용기. 반면 타지에서 배운 용기는 느리고, 작고, 조용했다. 하지만 바로 그 조용한 용기가 지금의 내 삶을 지탱하는 가장 깊은 힘이 되었다.


나는 여전히 두렵다. 낯선 상황에서 말이 막히고 마음이 흔들릴 때도 있다. 준비되지 않은 질문에 머리가 하얘지는 순간도 여러 번 있었다. 하지만 이제 안다. 두려움이 있다는 것은 용기가 자랄 자리가 남아 있다는 뜻임을.


타지에서 배운 용기는 내가 잃어버린 용기를 대신한 것이 아니다. 그 위에 새롭게 쌓인 또 하나의 힘이다. 서로 다른 얼굴을 하고 있지만, 두 용기는 모두 나를 살아 있게 만든다. 하나는 나를 드러내는 용기, 다른 하나는 나를 지키는 용기다.


오늘도 나는 작은 용기를 품고 하루를 시작한다. 누군가에게는 사소해 보일지 몰라도, 나에게는 세상을 향해 내딛는 소중한 한 걸음이다. 어쩌면 이 글을 읽는 누군가도 자신이 용기를 잃었다고 느낄지 모른다. 하지만 그 용기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조용히 자라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


나는 조용히 속삭인다. “나는 여전히 두렵지만, 그 두려움 속에서도 계속 나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 작은 용기 하나하나가 오늘의 나를 지탱하고, 내일의 나를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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