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듦의 온도> 시리즈 10 (2)
아침 햇살이 창문을 스치며 두 개의 머그컵을 감싸는 순간, 나는 문득 멈춰 선다. 김이 잔잔히 피어오르는 찻잔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온도란 단지 숫자가 아니라 시간의 결이라는 생각이 든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오래 쥐고 있을수록 은근히 손끝을 덥혀주는 감각. 예순이라는 나이도 그와 닮아 있다.
우리 부부는 동갑내기이다. 예순이라는 숫자를 입에 올려보면, 그것은 더 이상 차갑게 와 닿지 않는다. 한때는 다소 쓸쓸하고 묵직한 무게로 다가올 것이라 여겼으나, 막상 천천히 굴려보면 의외로 부드러운 결이 느껴진다. 예순은 쇠락의 표지가 아니라, 충분히 데워진 체온과 가깝다.
그 체온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걸까. 지나온 시간에서, 오래 붙들고 버텨낸 계절에서, 그리고 무엇보다 같은 속도로 나란히 걸어온 사람에게서 스며나오는 숨결일 것이다. 빠르게 달려온 시절에는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결이, 이제는 조용히 손에 잡힌다.
세 아이는 저마다의 하늘을 향해 날아가 있다. 영국 런던과 뉴욕, 그리고 버지니아. 지도 위에서는 작은 점처럼 흩어져 있으나, 그 점들을 선으로 이어보면 결국 우리 부부가 지나온 세월의 궤적이 된다. 아이들이 처음 걸음을 떼던 날의 떨림, 교복을 입고 현관문을 나서던 아침의 설렘, 사춘기의 문턱에서 부딪히던 밤의 대화들, 그리고 대학 졸업식에서 서로의 눈빛을 마주하던 장면까지. 점과 점 사이에는 늘 우리의 시간과 숨결이 놓여 있었다.
아이들을 키워내던 시간은 어느덧 뒤로 물러났다. 지금 이 토론토의 집에는 각자의 사랑과 삶을 찾아 떠난 아이들 없이, 우리 둘만이 조용히 숨을 고르고 있다. 저녁이 되면 식탁 위에는 두 개의 접시만 놓이고, 냉장고를 열어도 예전처럼 금세 비워지지 않는다. 방문이 닫힌 채로 빈방들이 때로는 낯설 만큼 넓게 느껴진다.
아이들이 떠난 직후, 집 안에는 분명한 바람이 스며들었다. 함께 하던 식탁에는 늘 사용하는 우리 둘만의 의자만 남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은 쉽게 허전해졌고, 복도를 스치던 발소리와 방 안에서 흘러나던 웃음소리가 사라진 자리는 유난히 크게 다가왔다. 둥지가 비어간다는 감각은 생각보다 또렷했다. 그때는 그 빈자리가 오래도록 공허로 남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시간은 다른 결을 보여주었다. 빈자리는 영원히 비어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그 자리에 다른 숨결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아이를 돌보느라 늘 뒤로 미루어 두었던 부부의 시간이, 조심스럽게 다시 흐르기 시작한 것이다.
젊은 시절엔 늘 앞만 보고 달려왔다. 아이들의 일정에 맞추어 움직이고, 생계를 위해 일하며, 이민자로서 흔들리지 않으려 애썼다. 낯선 언어와 다른 문화 속에서, 설명하지 않아도 통하던 것들이 더 이상 통하지 않던 날들. 그 속에서 아이들을 키워낸다는 일은 늘 긴장의 연속이었다. 나 스스로 더 단단해지려 노력했고, 때로는 서로의 피로를 충분히 헤아리지 못한 채 지나치기도 했다. 그때는 몰랐다. 우리 둘의 시간이 그렇게 뒤로 밀려 있었음을.
아이들이 각자의 도시로 떠난 뒤, 우리는 다시 마주 앉게 되었다. 마치 오래 덮어두었던 책을 다시 펼쳐, 남은 장을 함께 읽어 내려가는 기분과도 같았다. 그동안 미처 읽지 못했던 문장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서로의 표정 또한 이전보다 또렷해졌다. 말이 많지 않아도 괜찮은 저녁,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걷는 산책길, 아무 말 없이 건네는 찻잔 하나가 충분한 대화가 된다. 부부의 시간은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한때 나이 듦을 잃어가는 과정이라 여긴 적도 있었다. 젊음이 멀어지고, 아이들이 곁을 떠나고, 역할이 줄어드는 것처럼 느껴질 때면, 그러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게 바라본다. 나이 듦은 비워진 자리에서 새로운 기척을 발견하는 과정에 가깝다.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머무는 시간이다.
예전에는 스쳐 지나가던 장면들이 이제 하루를 데워준다. 아침 햇살이 부엌 창문에 스며드는 순간, 남편이 말없이 찻잔에 물을 채워주는 작은 손길, 저녁 산책길에 나란히 걷다가 동시에 같은 나무를 바라보는 장면. 이런 사소한 장면들이 하루의 중심을 이룬다. 조용함 속에는 이미 충분한 충만이 들어 있다.
아이들이 각자의 길을 찾아 나아갔듯, 나 또한 나의 다음 길을 찾고 있었다. 둥지가 비어갈수록 스스로를 다시 세워야 했다. ‘엄마’라는 이름 뒤에 가려져 있던 ‘나’라는 사람을 조용히 불러내어야 했다. 두려움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한 걸음씩 내디딜수록 비워진 자리에는 반드시 또 다른 시작이 놓여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지금도 나는 여전히 배우는 사람이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자리에서, 나는 정답을 제시하기보다 함께 머무르는 법을 배운다. 오랜 세월을 건너온 나의 결이 누군가에게 작은 기댈 곳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 또한 둥지에 남은 체온이 흘러가는 또 하나의 방향일 것이다.
아이들은 멀리 있으나, 결코 멀어진 것은 아니다. 영상 통화 너머로 웃는 얼굴을 보고, 각자의 도시 이야기를 들으며 안도한다. 함께 보낸 시간이 그들 안에서 여전히 숨 쉬고 있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로 다른 하늘 아래에 있지만, 같은 기억을 품고 있다.
이제는 분명히 알게 되었다. 둥지는 단지 비어 있는 공간이 아니다. 한때 따뜻함이 머물렀던 자리, 그리고 여전히 여운이 남아 있는 자리이다. 그 여운은 쉽게 식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고 계절이 바뀌어도, 마음속 어딘가에서 은은히 숨을 쉰다.
예순의 온도는 생각보다 따뜻하다. 그 따뜻함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함께 늙어가는 사람이 있고, 멀리서도 서로를 응원하는 아이들이 있으며, 여전히 배우고 일할 수 있는 자신이 존재한다. 속도는 느려졌을지라도, 이해의 폭은 넓어졌다. 침묵은 길어졌을지라도, 마음은 더 깊어졌다.
오늘도 토론토의 집에서 조용히 하루를 시작한다. 두 개의 찻잔을 나란히 놓고 창밖을 바라보며, 지나온 시간과 앞으로 다가올 시간을 함께 헤아린다. 바람이 스치듯 하루가 지나가고, 저녁이 내려앉으면 또 하나의 하루가 우리 곁에 포개어진다. 둥지에 남은 온기는 여전히 따뜻하다. 그 온기를 품은 채 또 하나의 계절을 천천히 걸어간다.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다. 이미 충분히 걸어왔고, 여전히 함께 걷고 있기 때문이다.
예순이라는 숫자는 이제 더 이상 차갑지 않다. 오히려 오래도록 쥐고 있을수록 더욱 깊은 체온을 전해주는 온도에 가깝다. 그리고 그 온도 속에서 나는 비로소 나이 듦의 의미를 배워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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