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듦의 온도> 시리즈 10 (13)
어느 날 나는 거울 앞에 서서 한동안 내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빛의 방향에 따라 더 또렷하게 드러나는 주름과, 웃지 않아도 남아 있는 눈가의 선들, 그리고 예전과는 분명히 달라진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분명 나였지만 어딘가 낯설었다. 익숙해야 할 얼굴이,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다른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날 나는 문득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 늙어가고 있었던 걸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주름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살아온 시간들이 조용히 쌓이며 만들어낸 흔적이었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나는 그동안 그것을 제대로 마주하지 않았던 것 같다. 어쩌면 나는 늙어간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보다 조용히 밀어내며 살아오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젊은 시절의 나는 늙는다는 말을 두려워했다. 그것은 무언가를 잃어가는 과정처럼 느껴졌고, 점점 가능성이 줄어드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선택지가 줄어드는 것이며, 어느 순간부터는 되돌릴 수 없는 길 위에 서게 되는 일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나는 종종 서두르며 살았다. 지금 하지 않으면 늦을 것 같았고, 지금 붙잡지 않으면 사라질 것 같았다. 그 마음은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했지만, 동시에 나를 지치게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나 자신을 바라보게 되었다. 늙어간다는 것은 단순히 무언가가 사라지는 과정이 아니라, 내가 나 자신을 덜 밀어내게 되는 과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끊임없이 나를 평가하고 비교하며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 애썼다면, 지금의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조금 더 오래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 변화는 아주 작고 미세했지만, 분명히 나의 삶의 결을 바꾸고 있었다.
어느 날 머리를 말리다가 손등에 자리 잡은 작은 주름을 발견했을 때, 나는 그 변화를 더욱 또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예전 같으면 그 주름을 숨기려 했겠지만, 그날은 이상하게도 그 주름이 눈에 오래 머물렀다. 나는 그 위에 손끝을 가만히 얹어 보았다. 그 주름 안에는 내가 살아온 시간이 담겨 있었다. 아이들을 키우며 보낸 시간, 낯선 땅에서 버텨낸 시간, 늦은 나이에 다시 공부를 시작하며 흘렸던 눈물과 노력, 그리고 누군가의 손을 잡아주며 건넸던 위로의 순간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 모든 시간이, 말없이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알게 되었다. 주름은 나이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견뎌온 시간을 기록하는 방식이라는 것을.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그 주름은 더 이상 숨기고 싶은 대상이 아니라 내가 살아온 시간을 보여주는 조용한 증거처럼 느껴졌다.
이민자로 살아온 시간 또한 나의 나이듦을 다르게 만들어 주었다. 나는 때때로 한 번의 삶을 두 번 살아온 것처럼 느낀다. 한국에서의 시간과 캐나다에서의 시간이 서로 이어져 있으면서도 다른 결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종종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어느 시간 속에서 늙어가고 있는 것일까. 그 질문에 명확한 답을 내릴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있다. 그 두 시간이 만나 지금의 나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나의 나이듦은 단순한 나이의 증가가 아니라, 두 개의 시간을 통과해온 깊이처럼 느껴진다.
나이듦은 내게 여백을 남겨주었다. 그 여백 덕분에 나는 조금 더 천천히 생각할 수 있게 되었고, 누군가의 말을 들을 때도 그 말 뒤에 담긴 마음을 먼저 헤아리게 되었다. 예전에는 쉽게 상처받던 말들도 이제는 다르게 들린다. 그 말이 나오기까지의 시간을 이해하려 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 과정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 부드러움은 약해진 결과가 아니라, 오랜 시간을 지나며 만들어진 단단함이라는 것을.
물론 여전히 낯선 순간들도 있다. 어떤 날은 거울 속의 내가 어색하게 느껴지고, 어떤 날은 지나간 시간이 아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나는 아직도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 하지만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제는 그런 감정을 억지로 밀어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저 그 마음을 바라보고, 그 안에서 나를 이해하려 한다. 그것이 지금의 내가 선택한 가장 솔직한 방식이다.
늙어간다는 말은 예전에는 서글프게 느껴졌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그 말 속에는 단순한 시간의 흐름이 아니라, 내가 지나온 날들의 온기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주름 하나, 눈빛 하나, 손끝 하나에도 내가 살아온 이야기가 조용히 스며 있다.
그래서 이제 나는 안다. 늙어간다는 것은 무언가를 잃어가는 일이 아니라, 내가 살아온 시간을 내 몸으로 받아들이는 일이라는 것을. 나는 더 이상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그 시절이 그립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지금의 나를 포기하면서까지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지금의 나는 그 모든 시간을 지나온 끝에 만들어진 나이기 때문이다.
나이듦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방식으로 나 자신을 만나가는 시간이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나는 오늘도 나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된다. 늙어간다는 말이 더 이상 낯설지 않고 어느 순간 따뜻하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아마 내가 나 자신과 조금 더 가까워졌다는 의미일 것이다.
나는 그 순간을 안다. 그리고 그 따뜻함 속에서, 오늘의 나를 조용히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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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리즈를 쓰는 동안, 나는 내 삶을 천천히 돌아보게 되었다.
젊은 날의 불안, 이민자의 시간, 아이들과 함께한 날들, 그리고 익숙한 것들과의 조용한 이별까지. 그 모든 시간을 지나 지금의 나에 닿아 있었다.
돌아보니 나이듦은 단순히 나이를 먹는 일이 아니었다. 시간은 마음에 스며들었고, 삶은 그만큼 깊어지고 있었다.
이제는 안다. 느림이 주는 평화와 고요 속에 머무는 울림을. 그리고 관계가 천천히 익어가며 만들어내는 온도를.
이 시리즈를 통해 나는 내 속도를 받아들이게 되었고, 머무는 자리의 의미를 알게 되었으며, 서두르지 않고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무엇보다 나이듦이 내게 남긴 변화는,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더 따뜻해졌다는 점이다.
이제 나는 조급해하지 않으려 한다. 흔들리더라도 다시 나의 자리로 돌아오고, 그저 나의 속도로 살아가려 한다.
나이듦은 온도가 된다.
그 온도는, 내가 살아온 시간의 온기이기 때문이다.
다음 시리즈에서는 남편의 출장길에 함께하며 머물렀던 고국의 시간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특히 이번 한국 방문에서는, 브런치를 통해 이어진 소중한 인연들을 조용히 꺼내어 풀어보려 한다.
그동안 함께 걸어주셔서 감사하다.
이 글이 당신의 시간 속에도 조용한 온기로 남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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