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과 바람 사이, 나의 계절> 시리즈 2 (9)
첫눈이 내리기 전의 풍경은 유난히 고요하다.
미시사가의 백야드는 텃밭을 정리한 뒤부터 한결 넓어 보인다.
텅 빈 흙 위로 햇살이 부드럽게 내려앉고,
그 위에 남겨진 몇 줄기 깻잎과 고추의 흔적이
지난 계절의 숨결처럼 조용히 남아 있다.
바람은 잦아들고, 나뭇잎은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다.
마치 자연이 숨을 고르며 다음 장면을 준비하는 듯한 고요함.
아침 공기는 제법 차가워졌다.
창문을 열면 코끝을 스치는 냉기가
겨울이 문 앞에 와 있음을 알린다.
하지만 그 차가움 속에서도 햇살은 여전히 따뜻하다.
겨울의 문턱에서 마주하는 이 고요함은
삶의 속도를 잠시 늦추게 하는 조용한 마법 같다.
텃밭을 바라보며 커피 한 잔을 들고 서 있으면,
흙냄새와 햇살이 뒤섞인 공기가 마음 깊숙이 스며든다.
그 순간, 계절은 단순한 시간의 흐름이 아니라
감정의 결이 되어 나를 감싼다.
캐나다의 겨울은 유난히 춥다.
살을 에이는 바람, 끝없이 이어지는 눈길,
그리고 하늘에서 쉼 없이 내려오는 하얀 솜 같은 눈.
늘 맞이하는 계절이지만, 첫눈이 내리는 날이면 마음은 여전히 설렌다.
창가에 부딪히는 눈송이 소리,
그 아래에서 고요히 잠든 텃밭,
그리고 그 위로 펼쳐지는 은빛의 풍경.
매번 새롭고 낯설다.
봄과 가을에는 마음이 넉넉하지만
유독 겨울이 되면 조금은 불안해진다.
그건 나이의 탓일까,
아니면 이민자로서의 삶이 겨울을 더 낯설게 만드는 걸까.
혹독한 캐나다의 겨울이 성큼 다가오며
몸과 마음은 분주해진다.
장갑과 목도리를 꺼내고,
창가의 화분을 햇살이 잘 드는 자리로 옮긴다.
따뜻한 담요, 생강차 한 잔, 도라지차와 대추차,
그리고 한 권의 노트.
이것들이 나만의 겨울 맞이 의식이 된다.
실내에서도 계절은 천천히 스며든다.
햇살을 따라 고개를 돌리는 화분,
창문 너머 얼어붙은 잔디,
그 위에 내려앉은 서리의 무늬.
그 모든 풍경이 겨울의 시작을 조용히 알린다.
나는 그 속에서 다음 봄을 상상한다.
씨앗을 고르고, 흙을 만지고,
다시 생명을 심을 그날을 기다리며
지금은 잠시, 숨을 고른다.
겨울은 멈춤이 아니다.
그것은 깊은 숨, 그리고 삶의 결을 되새기는 시간이다.
고요함 속에서 우리는 자신을 다시 바라보고,
잊고 있던 감정들을 천천히 꺼내어 본다.
겨울의 문턱에서,
나는 고요함을 맞이한다.
그 고요함은 나를 멈추게 하지 않고,
오히려 더 깊은 곳으로 이끌어준다.
“겨울의 문턱에서 멈춘 듯한 시간 속에, 나는 비로소 나의 계절을 마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