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과 바람 사이, 나의 계절> 시리즈 2 (10)
남편을 출근시키고, 창가로 스며드는 이른 햇살을 마주하며 옷장을 정리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반복되는 일이지만, 오늘은 유독 마음이 오래 머물렀다.
봄, 여름, 가을의 옷들은 조심스레 안쪽으로 밀어 넣고
겨울 옷들은 손이 닿기 좋은 자리에 꺼내 두었다.
두툼한 니트, 털 달린 외투, 그리고 손끝에 닿는 차가운 옷감 사이로
오래전의 기억이 조용히 깃들었다.
그건 이민 첫해, 캐나다에서 처음 맞이했던 겨울이었다.
눈이 많았고, 추위는 살을 에는 듯 매서웠다.
낯선 땅에서의 첫 혹한은 몸뿐 아니라 마음까지 얼어붙게 했다.
창밖으로 쏟아지던 눈발은
마치 내 안의 그리움과 불안함을 그대로 흩날리는 듯했다.
‘여기서 어떻게 살아가지?’
그 막막함이 매일같이 나를 따라다녔다.
익숙한 언어도, 따뜻한 온기도 없는 곳에서
나는 자주 울었다.
눈물은 이불 속에서, 그리고 지하철 안에서 조용히 흘렀다.
그 시절의 나는, 겨울을 견디는 법을 몰랐다.
어느 날, 머리가 쪼개질 듯한 두통을 참고
지하철역까지 걸어가던 길이었다.
불과 5분 거리였지만, 그날은 참 멀게 느껴졌다.
지하로 내려가 큰아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털모자 좀 가져다줄래?”
그날 이후, 그 털모자는 내 겨울의 필수품이 되었다.
단순한 방한용품이 아니라
이곳의 겨울을 견디게 해준 작은 방패이자 마음의 위로였다.
그 안에는 눈물도, 그리움도,
그리고 조금씩 단단해진 나의 시간이 담겨 있었다.
오늘 옷장을 정리하며
고이 간직해 두었던 그 털모자들을 다시 꺼내 손 닿는 곳에 놓았다.
그 순간, 마음속에 조용히 스며드는 생각.
또 하나의 겨울이 다가오고 있구나.
늘 만나던 겨울 같지만,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는 겨울.
계절은 반복되지만, 그 속의 나는 조금씩 달라져 있었다.
예전엔 두려움으로 맞이했던 겨울이
이제는 준비와 여유로 다가온다.
겨울을 맞이하는 마음이, 조금은 단단해졌다.
창밖의 햇살은 부드럽고,
라디오에서는 잔잔한 음악이 흐른다.
실내는 따뜻하고, 옷장 속의 옷들은 제자리를 찾아가며
조용히 계절을 바꾼다.
옷장 속의 옷들처럼,
내 마음도 계절에 맞춰 조금씩 자리를 바꿔간다.
털모자를 꺼내며, 나는 그 시절의 나를 조용히 안아준다.
그때의 눈물과 막막함,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난 작은 용기를 떠올리며.
이제는 겨울이 두렵지 않다.
그저 준비하고, 맞이하고,
그 안에서 나를 다시 바라볼 뿐이다.
햇살이 닿는 창가에서, 따뜻한 차 한 잔과 함께,
다가올 겨울을 향해
조금 더 단단해진 마음으로 문을 연다.
햇살과 바람 사이, 나의 계절』을 마무리하며
계절은 늘 같은 길을 도는 듯하지만, 그 안에서 피어나는 마음의 결은 언제나 새롭습니다. 이번 이야기를 함께 걸어준 당신의 하루에도, 조용히 스며든 따뜻한 흔적이 남았기를 바랍니다.
다음 편에서는 '이국땅에서 피어난 밥상'의 기억을 따라가 보려 합니다. 고향의 맛과 이국의 향기가 어우러진 식탁 위에서, 또 다른 계절의 이야기를 천천히 풀어낼게요.
다음 계절도, 우리 함께 걸어요. 조금 더 따뜻하게, 조금 더 깊이.
이민자의 부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