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식생활과 발효의 지혜

<이국땅에서 피어난 밥상의 기억> 시리즈 3 (5)

by 이민자의 부엌
ChatGPT Image 2025년 11월 7일 오후 02_24_41.png



한 달에 한 번, 나는 서리태로 청국장을 띄운다.
안토시아닌이 풍부한 검은콩은 노란콩보다 깊고 단단한 맛을 품고 있다.
노란콩 청국장이 따뜻한 찌개로 밥상에 오른다면,
서리태 청국장은 샐러드로 변신해
이국의 식탁에서도 건강한 아침의 주인공이 된다.


사과 한 개, 당근 반 개, 적양파, 오이, 아보카도를 잘게 썰어
청국장과 함께 버무린다.
올리브 오일과 소금, 후추로 간을 맞추고,
마지막에 발사믹 식초와 꿀 한 방울을 더한다.
발효의 깊은 맛과 신선한 채소의 향이 입안에서 어우러질 때,
조용하지만 풍요로운 작은 축제가 시작된다.


우리 집에는 청국장 전용 전기장판이 있다.
이 음식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깊은지를 보여주는 작은 장치다.
기계의 도움 없이 온도를 조절하고,
보자기로 덮은 뒤 콩의 숨결이 살아나길 기다리는 시간은
마치 조상들의 지혜를 되새기는 의식처럼 경건하다.


이곳 캐나다 온타리오 미시사가,
허니크리스프 사과가 탐스럽게 익어가는 나라에서도
나는 여전히 한국의 발효 음식을 만든다.
가끔 친구들이 웃으며 말한다.
“넌 정말 연구 대상감이야.”
그 말이 이상하게 흐뭇하다.
그들이 신기하게 여기는 그 전통이
내게는 삶의 뿌리이자 일상의 평온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우리 집은 하우스라
이웃에게 냄새로 폐를 끼칠 걱정이 없다.
청국장이 익어가는 동안 퍼지는 그 향기는
우리 부부에게 고향의 냄새요, 마음의 위안이다.
하지만 낯선 이들에게는 다소 강한 자극일 수 있기에
언제나 문을 살짝 닫고 조용히 기다린다.


우리는 채식주의자는 아니지만,
고기보다 콩과 채소의 자연스러운 맛을 즐긴다.
그 변화는 서서히, 그러나 꾸준히 우리 삶을 바꾸었다.
냉장고 속 인스턴트 식품은 사라지고,
식탁에는 제철의 색과 향이 담긴 음식들이 자리한다.
그 밥상은 우리 부부의 건강을 지켜주는 든든한 버팀목이자
하루의 중심이 되어준다.


얼마 전, 영국에 사는 딸이 전화를 걸어 말했다.
“엄마, 영국 사람들은 타국에서 제일 그리워하는 게 블루치즈래요.”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우리에게는 청국장이 있지.”
블루치즈의 꼬리꼬리한 냄새처럼,
청국장의 구수한 향기에도 시간과 정성, 그리고 기억이 녹아 있다.


발효의 향은 단순한 냄새가 아니다.
그건 기다림의 시간이며, 손끝의 온기이며,
세대를 이어주는 지혜의 향기다.
서리태를 씻고, 삶고, 보자기로 덮는 단순한 일상 속에서
나는 나의 뿌리를 만난다.


허니크리스프 사과가 익어가는 나라에서,
나는 오늘도 조용히 청국장을 뒤적이며
한국의 전통과 나의 삶을 이어간다.
그 향기로운 발효의 시간 속에서
우리는 건강하고 단정한 하루를 살아간다.


그리고 그 밥상 위에서,
삶의 지혜가 천천히, 아름답게 익어간다.



이전 04화이국 땅에서 피어난 고향의 맛, 메주 빚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