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과 기억, 사랑의 온기

<이국땅에서 피어난 밥상의 기억> 시리즈 3 (6)

by 이민자의 부엌

머나먼 이국의 땅, 낯선 언어와 문화 속에서도 우리 집 부엌은 언제나 고향의 온기를 품고 있다.
그 온기는 단지 음식의 향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기억 속에 살아 있는 사람들의 손끝, 말없이 전해지던 사랑의 방식,
그리고 밥상 위에서 피어나는 삶의 이야기가 그 온기를 만들어낸다.


요즘처럼 바람이 차가워질 때면, 나는 어린 시절의 부엌을 떠올린다.
할머니의 부엌은 언제나 따뜻했다.
아궁이 앞에 앉아 장작불을 지피던 할머니의 손은 거칠었지만,
그 손끝에서 만들어지던 음식은 늘 부드럽고 깊은 맛이 났다.
된장찌개 속에 숨어 있던 더덕 한 조각, 무심히 얹어주시던 고추장 한 숟가락,
그 모든 것이 할머니의 마음이었다.


어머니의 부엌은 늘 분주했다.
새벽이면 밥 냄새가 집 안을 깨웠고,
어머니는 조용히 도시락을 싸며 하루를 준비하셨다.
그때는 몰랐지만, 어머니의 밥상은 하루를 살아갈 힘이었고,
말 없이 전해지는 따뜻한 위로였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밥 위에 계란후라이 하나를 얹으며
“천천히 먹어”라던 그 목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맴돈다.


이국의 부엌에서 나는 그 기억들을 하나씩 꺼내 다시 삶을 짓는다.
묵은 김치를 꺼내 썰고, 애호박과 두부를 다듬으며,
손끝에 묻어나는 소리와 향 속에서 할머니의 손길이 되살아난다.
된장 냄새가 퍼지면 어머니의 부엌이 떠오르고,
밥솥을 여는 순간 피어오르는 김 속에서
그 시절의 따뜻한 아침이 다시 찾아온다.


요즘 남편은 더덕을 특히 좋아한다.
얼마 전 한인 농장에서 직접 캐온 더덕을 손질해 냉동실에 넣어두었는데,
오늘은 그것을 꺼내 양념을 발라 구워볼 생각이다.
더덕 굽는 냄새가 집 안을 채우면,
순간 나는 고향의 산자락 어딘가에 앉아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 향은 단순한 음식 냄새가 아니라,
시간과 정성, 그리고 기다림이 응축된 삶의 향기다.


남편의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면,
나는 문을 열고 들어올 그의 모습을 떠올린다.
피곤한 얼굴로 들어와 밥상 앞에 앉아
한 숟가락을 뜨며 짓는 그 미소를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입가에 따뜻한 웃음이 번진다.
그 순간, 이국의 저녁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우리 부부에게 밥상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다.
서로의 하루를 나누고, 마음을 위로하며, 사랑을 확인하는 자리다.
그 밥상 위에는 할머니의 지혜, 어머니의 정성, 그리고 나의 시간이 함께 놓여 있다.


이민자의 삶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한 가지,
그건 바로 밥상 위의 사랑이다.
그 사랑이 우리 삶을 단단히 지탱해주고,
멀리 떨어진 이곳에서도 고향의 온기를 잃지 않게 해준다.


오늘도 부엌 가득 김이 피어오른다.
그 안에 담긴 감정과 기억, 그리고 사랑의 온기
나의 하루를 포근히 감싸준다.



여러분에게 밥상 위의 따뜻한 기억은 어떤가요?
어린 시절 떠오르는 음식 냄새나, 가족과 함께했던 순간이 있다면
문득 떠오르는 장면들을 상상해 보는 것도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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