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국땅에서 피어난 밥상의 기억> 시리즈 3 (8)
딸아이가 어렸을 땐 김치를 유난히 싫어했다.
“엄마, 이건 너무 매워요. 냄새도 이상해요.”
그 말 한마디에 나는 김치를 조심스레 냉장고 깊숙이 넣어두곤 했다.
그럴 때마다 마음 한쪽이 조금은 서늘했다.
내겐 너무나 당연했던 음식이 아이에게는 낯선 향과 맛이었으니까.
시간은 흘러 아이가 자라 결혼하고, 이제는 영국에서 살고 있다.
어느 날 걸려온 전화에서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엄마, 그때 엄마가 담은 김치… 그 맛이 그리워요.”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그토록 냄새 난다며 코를 찡그리던 아이가, 이제는 그 냄새 속에서 고향과 엄마를 떠올리고 있다니.
큰딸이 사는 영국에도 다행히 한인 마트가 있다고 했다.
김치를 사서 먹는다지만, “엄마가 만든 맛은 안 나”라며 종종 투정을 부린다.
작년 김장 때는 정성껏 담근 김치와 몇 가지 밑반찬을 택배로 보내봤지만,
배송이 늦어 결국 김치가 다 시어버렸다고 했다.
가까이 사는 작은딸은 한때 내가 담근 김치를 한 통씩 가져가곤 했다.
하지만 요즘은 “다이어트 중이라 김치는 안 먹어요”라며 웃는다.
이상하게도 그 말이 하나도 서운하지 않았다.
세월의 냄새 속에서도 김치 냄새만큼 익숙하고 진한 것이 또 있을까.
생각해보면 나 역시 어렸을 적엔 김치가 싫었다.
매워서 투정을 부릴 때마다 할머니는 김치 한 조각을 조심스레 씻어
물김치처럼 순하게 내어주셨다.
그 손길이 지금도 눈앞에 선하다.
그땐 몰랐다. 그 한 조각 속에 얼마나 깊은 사랑과 세월이 담겨 있었는지를.
이제 나이가 들고, 이국의 부엌에 서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할머니와 어머니의 손맛이 자주 그리워진다.
청국장, 된장, 고추장…
그 냄새 속에는 내 어린 시절이, 고향의 바람이,
그리고 그분들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이 먼 캐나다 땅에서 우리의 맛을 잊지 않으려 애쓴다.
현지 재료를 써도 그 안에는 언제나 한국의 온기를 담으려 한다.
이 일은 단순한 요리가 아니다.
나의 뿌리를 지키고, 기억을 이어가는 일이다.
할머니와 어머니에게 밥상은 ‘생존’이었다.
매일의 노동이자, 가족을 지켜내는 가장 기본의 자리였다.
그들의 밥상 위엔 늘 땀과 정성이 있었고,
그 위에서 가족은 하루의 힘을 얻었다.
하지만 우리 세대, 그리고 아이들의 세대에서
밥상은 점점 ‘선택’이 되어가고 있다.
먹고 싶은 것만 골라 담고, 남은 밥은 미련 없이 버리는 시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밥상 앞에 앉는 마음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피곤한 하루 끝에 따뜻한 국 한 숟가락을 떠먹으며
서로의 안부를 묻는 짧은 순간—
그 순간만큼은 세대의 간극이 사라진다.
그 안에는 언제나 사랑의 시간이 흐른다.
이민자의 밥상은 결국 시간을 건네는 자리다.
고향의 맛으로 시작해 이국의 재료로 변해가도
그 속에는 언제나 엄마의 마음이 담겨 있다.
그 마음이 가족을 잇고,
멀리 떨어진 세대들을 다시 한 식탁으로 불러 모은다.
언젠가 딸들이 자기 아이들에게 김치를 직접 담가줄 날이 오겠지.
그때 나는 조용히 미소 지을 것이다.
그래, 밥상의 힘은 결국 시간을 건너 세대를 이어주는 사랑이구나—
그리움이 숙성되어 가족의 삶이 되는 자리,
그곳이 바로 엄마의 부엌이다.
여러분에게도 어릴 적 엄마나 가족의 손맛이 떠오르는 순간이 있나요?
그 기억이 오늘의 밥상이나 삶 속에서 어떤 온기를 남기고 있는지,
문득 떠올려 보시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