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국땅에서 피어난 밥상의 기억> 시리즈 3 (9)
이국의 하늘 아래서도 나는 여전히 한국의 어머니였다.
낯선 나라의 부엌에서도 손끝은 여전히 고향의 냄새를 기억했다.
냄비 속에서 끓는 된장국의 구수한 향은
멀리 떠나온 고향의 언덕과 할머니의 부엌을 떠올리게 했다.
청국장 한 숟갈에 눈시울이 붉어지는 이유는,
그 속에 세월과 그리움이 녹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민자의 부엌에서 밥을 짓는다는 건
단순히 가족의 허기를 채우는 일이 아니었다.
그건 나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었고,
이름을 지키는 가장 인간적인 방식이었다.
누군가의 하루를 따뜻하게 만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밥을 짓는 일’이라는 걸 나는 이민 생활을 통해 배웠다.
이민의 세월은 언제나 바람 같았다.
불어오는 계절마다 낯설었고,
가끔은 외로움이 밥 냄새보다 더 짙게 스며들었다.
하지만 가족이 함께 식탁에 둘러앉는 순간,
그 낯선 세상도 조금은 덜 외롭고 덜 차가워졌다.
작은 식탁 위에서 우리는 하루의 무게를 나눴다.
그 밥상은 말보다 깊은 위로를 건넸고,
그 위에 놓인 음식은 마음을 이어주는 따뜻한 다리가 되었다.
소박한 국 한 그릇, 따뜻한 밥 한 공기 속에는
사랑과 인내, 그리고 감사가 담겨 있었다.
그 밥상이야말로 우리 가족의 건강을 지켜준
가장 든든한 약이었다.
부엌의 불빛 아래에서
나는 수없이 쌀을 씻고, 물을 맞추며,
솥뚜껑이 덜컥거릴 때마다 세월의 소리를 들었다.
밥 짓는 일은 결국, 사람을 짓는 일이었다.
쌀알 하나하나에 내 인생이,
그리고 기도 같은 마음이 스며 있었다.
돌이켜보면, 밥상은 단순한 식탁이 아니었다.
그건 나의 시간, 나의 감정,
그리고 인생의 결이 고스란히 배어든 자리였다.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와 젓가락을 들던 그 순간,
남편이 피곤한 얼굴로 “오늘 반찬이 참 맛있다” 하며
미소를 짓던 장면들.
그 모든 사소한 순간들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든 조각들이었다.
이국의 겨울밤에도
나는 여전히 한국의 부엌에서처럼 쌀을 불리고, 된장을 풀었다.
그건 단지 요리가 아니라,
내 마음의 고향을 다시 짓는 일이었다.
김이 피어오를 때마다 나는
잃어버린 시간의 조각을 한줌씩 되찾았다.
냄비 속에서 피어오르는 김은
마치 고향의 숨결처럼 따뜻했다.
이제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밥상 위에서 이민의 길을 걸어왔다.”
수많은 식탁 위에서 흘린 눈물과 웃음이
결국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
밥상은 내 인생의 기록이자,
내가 세상에 남긴 가장 따뜻한 흔적이다.
오늘도 나는 밥을 짓는다.
손끝에 남은 쌀알 하나에도 감사하며,
솥 속의 물이 끓어오를 때마다
누군가의 하루가 조금 더 따뜻해지길 바란다.
그게 내가 이국땅에서 피워낸,
작은 밥상의 기적이다.
여러분에게도 밥상이나 음식 속에서 떠오르는 소중한 기억이 있나요?
그 순간이 오늘의 하루나 마음속 어떤 온기를 남겼는지, 살짝 떠올려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질 때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