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은 숲에서 살아남지 못했다

<우리 부부의 캐나다 일상> 시리즈 7(4)

by 이민자의 부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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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에 오래 남아 있던 작은 꿈


살아오면서 언젠가 나이가 더 들기 전에 꼭 해보고 싶다고 마음속에 품어온 일이 있다. 누군가에게는 아주 흔한 취미일지 몰라도, 내게 캠핑은 오래전부터 마음속에 조용히 자리 잡은 작은 꿈이었다.
도시의 불빛이 닿지 않는 숲속에서의 하룻밤, 바람이 나뭇잎을 스치는 소리만이 들리는 고요한 밤, 그리고 별빛 아래에서 먹는 따뜻한 저녁.


그런 장면들은 늘 내 상상 속에서 반짝였고, 언젠가 꼭 경험해보고 싶었다.
물론 그때는 몰랐다. 자연이 나를 그렇게까지 뜨겁게(?) 환영해줄 줄은.



설렘을 가득 싣고 떠난 여정


그래서 지난해 여름, 남편과 함께 캐나다 북쪽의 Restoule Provincial Park로 2박 3일 캠핑을 떠나기로 했을 때, 나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들떠 있었다.
남편은 대학 시절 친구들과 캠핑을 자주 다녔던 터라 제법 능숙해 보였다. 텐트와 장비를 챙기는 손길도 여유로웠고, 표정에는 ‘별거 아니야’라는 말이 붙어 있는 듯했다.


반면 나는 생전 처음이라 모든 것이 새로웠다.
남편이 장비를 챙기는 동안, 나는 캠핑에서 먹을 음식 준비에 온 마음을 쏟았다. 갈비, 쌀, 김치, 야채, 과일, 각종 밑반찬까지. 마치 숲속에서 잔치를 벌일 사람처럼 가방을 가득 채웠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부터 이미 ‘우리는 캠핑이 아니라 야외 한식 파티를 하러 가는 게 아닐까?’ 하는 징후가 보이고 있었다.



초록이 끝없이 이어지던 길 위에서


아침 일찍 출발한 우리는 네 시간 반의 여정을 시작했다.
차창 밖으로는 초록이 끝없이 펼쳐졌고, 도로 옆으로 드문드문 나타나는 호수들은 햇빛을 받아 은빛으로 반짝였다. 우리는 번갈아 운전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한국의 휴게소처럼 다양한 먹거리나 특산품이 있는 곳은 아니었지만, 팀홀튼과 작은 편의점이 전부인 캐나다식 휴게소에도 나름의 정취가 있었다.
물론 ‘호두과자’나 ‘어묵’ 같은 건 없었다. 그건 조금, 아니 꽤 아쉬웠다.



완벽해 보였던 시작


오후 두 시, 드디어 캠핑장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숲 냄새가 확 밀려왔다. 사람들 웃음소리, 흙냄새, 나무 냄새, 물기 머금은 바람의 냄새가 뒤섞여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공기가 폐 깊숙이 스며들었다.


남편은 능숙하게 텐트를 치기 시작했고,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아, 드디어 내가 꿈꾸던 캠핑이 시작되는구나’ 하는 실감이 밀려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모든 것이 완벽했다. 정말로.




숲속에서 먹는 따뜻한 밥 한 숟가락


텐트가 완성되자마자 우리는 이른 저녁을 준비했다.
야외에서 밥을 짓는 건 처음이라 은근히 걱정했지만, 놀랍게도 밥은 윤기 있게 잘 지어졌다.


남편이 피운 불 위에서 갈비가 지글지글 익어가고, 그 옆에서 된장찌개가 보글보글 끓었다. 김장김치와 함께 먹는 그 흰밥의 맛은 지금도 생생하다.
숲속에서 먹는 따뜻한 밥 한 숟가락은, 그 어떤 고급 레스토랑의 음식보다 깊고 진했다.


그 순간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아, 나 캠핑 체질인가 보다.’


하지만 자연은 곧바로 이렇게 대답했다.
“아니야.”



자연의 환영식


해가 기울고 어둠이 숲속으로 스며들기 시작하자, 어디선가 나타난 모기들이 우리 주변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처음엔 ‘뭐, 모기 좀 있겠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하지만 그 수는 상상을 훌쩍 뛰어넘었다.


다리, 팔, 목, 손가락 사이까지.
밥을 먹는 건지, 모기들에게 헌혈을 하는 건지 모를 지경이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아, 자연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구나.



낭만이 무너진 순간들


설거지를 위해 물을 떠오는 불편함은 그래도 감수할 수 있었다.
문제는 샤워장이었다.


두 곳 중 한 곳은 고장이었고, 남은 한 곳에는 이미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얼핏 보기에도 두 시간은 족히 기다려야 할 분위기였다.
줄에 서 있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공통된 표정이 있었다.
‘나는 이미 인간의 상태를 벗어났다’는 표정.


땀과 모기약 냄새가 뒤섞인 몸으로 그 줄에 설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 순간, 내가 마음속으로 그려왔던 ‘낭만적인 캠핑’의 풍경은 조용히 금이 가기 시작했다.



캠핑 탈출 챔피언십


밤이 깊어질수록 모기들의 공격은 더 집요해졌다.
텐트 안에서도, 밖에서도, 어디에서도 피할 수 없었다.


남편과 나는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 밤을 이곳에서 보내는 건 무리라는 것.


남편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우리… 갈까?”


나는 거의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응. 지금 당장.”


그날 우리는 ‘캠핑 탈출 챔피언십’이 있었다면 분명 입상했을 것이다.



자연의 마지막 인사


밤이 되기전에 부랴부랴 텐트를 접고, 사용하던 캠핑 도구들은 깨끗이 정리해 캠핑장 내 분리수거 공간 옆에 가지런히 두고 왔다.
이 나이에 하는 캠핑은 우리 인생에 더 이상 없을 것이라는 확신과 함께, 혹시라도 필요한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렇게 2박 3일을 예약했던 캠핑장에서 겨우 네 시간 머물고 우리는 탈출하듯 차에 올랐다.


남은 음식만 챙겨 차에 올랐다.
돌아오는 길은 더 깊은 어둠 속이었다. 가로등 하나 없는 시골길에서, 차의 헤드라이트만이 도로를 얇게 비추고 있었다.


그때였다.
아무도 없을 것 같던 길 위, 어둠 속에서 사람처럼 보이는 실루엣이 도로 한가운데 서 있었다.
멀리서 보니 엄청 키 큰 저승사자 같았다. 남편과 나, 둘 다 숨을 삼켰다.


‘설마… 귀신?’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자 그 실루엣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무스였다. 시커먼 거대한 몸집에, 멀리서 보면 저승사자의 갓처럼 보였던 커다란 뿔.


그 거대한 몸으로 도로를 유유히 산책하듯 지나가는 무스를 보며, 자연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그래도 나, 멋있지?”



내가 진짜 원했던 여행


캠핑은 내게 낭만이 아니라 작은 생존 게임이었다.
모기 떼, 불편한 시설, 준비되지 않은 샤워장.
그 모든 것이 내 첫 캠핑을 마지막 캠핑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숲속에서 먹었던 그날의 갈비와 김치, 그리고 남편과 함께했던 짧은 모험은 또 나름대로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어쩌면 캠핑이란, 낭만과 현실 사이에서 우리가 어디까지 적응할 수 있는지를 시험하는 여행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 시험에서 솔직히 말해 떨어졌지만, 그 덕분에 한 가지는 분명히 알게 되었다.


내가 진짜 원하는 건 ‘낭만적인 캠핑’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편안한 여행’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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