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멈춰 돌아본 곳, 아버지의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우리 부부의 캐나다 일상> 시리즈 7(5)

by 이민자의 부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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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의 어느 날이 문득 떠오른다. 캐나다에서의 일상을 잠시 멈추고, 남편과 함께 한국 시댁에서 3주를 보냈던 시간이다. 한국행을 결정하고 항공권을 예매하던 순간부터 마음은 이미 반쯤 한국으로 가 있었다. 몇 주 동안 가져갈 선물 목록을 적어 내려가며 하나씩 준비하던 시간마저 괜히 설레고, 오래전으로 돌아간 듯 행복했다.


출발하는 날, 우리는 대한항공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긴 비행이었지만 마음은 이상하리만큼 가벼웠다. 익숙한 한식의 맛과 편안한 서비스가 주는 안도감 때문이었을까. 비행기 창밖으로 구름이 흐르는 동안, 머릿속에서는 이미 시댁의 집과 아버지의 얼굴이 오갔다.


14시간 30분의 비행 끝에 도착한 인천공항. 시동생과 친구들이 픽업을 제안했지만, 우리는 미리 예약해 둔 렌터카를 타고 시댁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1년 만에 뵙는 시아버지와 시어머니의 얼굴이 한눈에 들어왔다. 반가움과 함께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동시에 밀려왔다. 장남 부부가 이렇게 멀리 살고 있다는 사실은 늘 마음 한쪽을 무겁게 짓눌렀다. 큰절을 올리는 순간, 참아왔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미안함과 고마움, 그리고 안쓰러움이 한꺼번에 밀려온 눈물이었다.


이번 한국행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아버지께 치매 증세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가족들이 아무리 병원에 가자고 해도 좀처럼 움직이시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장남 부부인 우리가 가면 혹시 마음을 여시지 않을까, 작은 기대를 안고 한국으로 향했다. 캐나다에 있으면서도 일주일에 한 번씩 통화를 했는데, 그때마다 아버지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변화가 마음을 놓지 못하게 했다.


첫날은 웃으며 가족들과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다음 날부터는 본격적인 일정이 시작되었다. 3주라는 시간은 생각보다 훨씬 짧았다. 캐나다에서 적어 온 메모지를 꺼내 하나씩 체크해 나갔다. 시차 적응이 되지 않아 새벽 2시면 어김없이 눈이 떠졌다. 두 분이 주무시는 사이, 나는 조용히 집안 대청소를 시작했다. 거실과 화장실, 방과 부엌, 발코니 구석구석까지. 나의 한국 여행은 그렇게, 청소로 시작되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에 가는 일이었다. 아버지는 “아픈 데도 없는데 왜 병원에 가냐”며 완강하게 거부하셨다. 결국 나는 한쪽 팔을, 남편은 다른 쪽 팔을 잡고 아버지를 모셨다. 가까운 병원에서 1차 검사를 받은 뒤, 다시 종합병원으로 이동해 정밀 검사를 받았다.


진단 결과는 이미 치매 중기 단계였다. 의사 선생님의 설명이 이어졌지만, 말들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머릿속에는 오직 하나의 문장만 맴돌았다. ‘아버지의 시간이 우리와는 다른 속도로 흘러가고 있구나.’ 그 깨달음 앞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슬픔이나 충격보다 먼저 찾아온 것은, 설명할 수 없는 공허함이었다.


아버지는 평생 본인을 위해 돈을 써본 적이 거의 없는 분이었다. 시골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9급 공무원으로 시작해, 가족을 위해 아끼고 절약하며 살아오셨다. 그래서 옷을 사드리면 늘 “돈 쓰지 마라”고 하시면서도, 막상 새 옷을 입으시면 아이처럼 환하게 웃으셨다. 그 웃음은 오래도록 내 마음에 남았다. 그 웃음 속에는 평생을 견디며 살아온 한 사람의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요양원도 알아보았지만, 아직은 집에서 지내셔도 괜찮겠다는 판단이 섰다. 경찰서에 가서 지문 사전등록을 하고, 혹시 길을 잃으실까 봐 연락처가 담긴 목걸이도 만들어 드렸다. 아버지는 “나는 멀쩡한데 왜 이러냐”며 서운해하셨다. 그 말이 오히려 더 마음을 아프게 했다.


한국에 머무는 동안 우리는 아버지와 최대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려 애썼다. 팔짱을 끼고 횟집에도 가고, 산에도 오르고, 바닷가를 함께 걸었다. 남편은 아버지를 모시고 이발소와 사우나에도 다녀왔다. 그 시간들은 짧았지만,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시간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었다.


아버지는 종종 가래침을 뱉으셨고, 남편이 조심스럽게 말씀드리자 “너도 늙어봐라” 하고 웃으며 말씀하셨다. 그날 밤,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지금 아버지 모습이, 30년 뒤 우리 모습일 거야.” 남편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의 건강하던 아버지 모습만 기억하고 있던 남편에게, 지금의 아버지를 받아들이는 데는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할아버지·할머니 산소를 찾았을 때, 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신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셨다. 산소 앞에서 “저건 누구냐”고 물으셨다. 그 순간, 마음 한쪽이 조용히 내려앉았다. 예전 같지 않은 모습들이 하나둘 쌓여 갔지만, 그 또한 아버지의 시간이 흘러가는 방식이었다.


3주는 너무도 빠르게 지나갔다. 새벽에 조용히 떠나려 했지만, 아버지는 이미 깨어 계셨다. 아버지의 기억 속에서 우리는 아직 한국에 살고 있었다. 춥다고 말렸지만, 두 분은 끝내 주차장까지 내려오셨다. 나는 아버지를 꼭 안아드렸다. 눈가에 맺힌 눈물을 보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캐나다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 3주는 지금도 이 먼 곳에서 살아가는 우리 마음속에 깊이 남아 있다. 아버지의 손을 잡고 걸었던 시간, 함께 웃고 걱정했던 순간들, 그리고 헤어지던 새벽의 차가운 공기까지. 그 모든 기억은 우리 부부의 삶을 잠시 멈춰 세우고, 다시 돌아보게 만들었다.


멀리서 살아가는 삶은 늘 선택의 연속이다. 그 선택들 사이에는 늘 남겨진 마음의 조각들이 있다. 그리고 그 조각들은 이렇게 오래도록, 조용히 우리를 붙잡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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