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준의 첫 번째 사회 진출
어느 날, 어머니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석준 아버지, 석준이가 또 산수 백 점 받아왔어요. 선생님 말씀이, 암산이 너무 빠르대요. 주산도 제일 먼저 놓고요.”
아버지는 신문을 접으며 웃었다.
“허허, 그래? 암산 머리는 날 닮은 모양이야. 직장에서도 부속품 이름 수백 개를 줄줄이 외우지.”
어머니는 아버지의 기분이 풀린 걸 눈치채고, 한 발 더 내디뎠다.
“요 앞에 주산 학원이 하나 생겼는데요, 선생님이 그러는데 재능이 탁월하대요. 거기 보내보면 어떨까 싶어요.”
그리하여 석준은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주산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처음 놓는 주산이 손에 익자, 그다음부터는 속도가 붙었다.
주산 단까지 땄고, 고등학교에선 부기 급수도 최고 단계까지올라갔다.
그 시절, 주산과 부기 학원은 열풍이었다.
석준은 흐름의 중심에 있었다.
석준은 둘째였다. 형은 운동을 잘해 체육 특기로 대학에 들어갔다.
그리고 석준은, 근면한 아버지와 헌신적인 어머니의 울타리 안에서 순조롭게 자라 원하는 대학에도 합격했다.
그런데 인생은, 한순간에 방향을 꺾었다.
아버지의 직장이 부도났다.
20년 넘게 성실로 지켜낸 일터가,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가계는 흔들렸고, 집 안엔 침묵이 길어졌다.
형은 졸업반이었고, 석준은 대학 2학년.
누군가는 포기해야만 했다.
석준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어머니, 걱정 마세요. 주산이랑 부기, 자신 있어요. 학원에서 선생 하면 돈 벌 수 있어요.”
어머니는 아들의 손을 잡았다.
말없이 한참을 잡고 있다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미안하구나.”
그녀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말끝이 자꾸만 갈라졌다.
하지만 석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꼭 잡아주었다.
무너진 건 집이었지만, 무너지지 않은 게 있었다.
그날 이후, 석준은 밤낮으로 일했다.
낮에는 주산 선생, 저녁에는 부기 강사, 주말엔 웅변 강습까지 뛰었다.
버는 족족 집에 들였다.
절약은 아버지를 닮았고, 끈기는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았다.
그는 그렇게, 가족을 다시 건너게 했다.
무너진 터 위에 다시 다리를 놓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