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준의 가정이야기
-2부 위험한 여섯 개의 강
제3면체 수뢰준水雷屯 - 처음 건너는 위험한 강
“준屯” 위쪽은 싹이 뾰족하게 올라오는 모습이며, 아래쪽은 뿌리가 땅속에서 구부러져 힘겹게 자라는 형상이다. 이는 새로운 시작의 어려움을 상징한다.
봄이 오면
봄이 오면, 땅속 깊은 곳에서 서서히 기운이 돈다. 아직 차가운 대지를 뚫고 고개를 내미는 새싹—작고 여리지만, 실은 가장 단단한 힘이다. 처음 땅을 뚫고 올라오는 그 순간이 가장 위태롭고도 위대한 법이다.
석준의 아버지는 이북에서 홀몸으로 피난 내려왔다. 고향엔 노모와 형제가 있었지만, 누구도 데려올 수 없었다. 한 손엔 보자기 하나, 다른 손엔 두려움뿐이었다. 전쟁이 끝나고도 그는 돌아가지 못했다. 남한 땅 어딘가에 뿌리를 내려야 했다.
사람들은 그를 ‘실향민’이라 불렀다. 가진 게 없었기에, 근면과 절약은 선택이 아닌 생존의 조건이었다. 작은 철물업체에들어간 그는 20년을 하루도 빠짐없이 일했고, 저녁마다 조용히 아내가 차려준 밥상을 받아 들었다. 한 번도, 빠짐없이.
그는 절약이 몸에 밴 사람이었다. 빈방 전등을 보면 곧장 끄러 달려갔고, 물을 쓰고 있으면 “물은 한 번 쓰고 버리는 게 아니다.” 라며 다그쳤다. 그 거친 말투 안에는 삶이 배어 있었다. 아무도 지켜주지 않는 것을 스스로 지켜야 했던 시간들.
정부는 실향민을 위해 서울 변두리에 집단 거주지를 마련했다. 모래 섞인 브로크 벽돌로 지은 바둑판같은 집들. 석준의 가족이 배정받은 집도 그중 하나였다. 문을 열면 곧장 좁고 추운 부엌이 나왔고, 방마다 불편과 추위가 배어 있었다.
집안에 화장실이 없는 게 제일 큰 문제였다.
공동 화장실, 공동 수도. 골목을 건너는 밤마다, 석준은 괜히 울컥했다. 하지만 누구 하나 불평하지 않았다. 그건 그냥 ‘사는 일’이었다.
그 시절, 석준은 몰랐다. 아버지의 조용한 검소함이 얼마나 깊은 생존의 기술이었는지. 봄의 새싹처럼, 그는 낯선 땅을 향해 몸을 밀어 올리고 있었다. 그는 이미, 위험한 강을 건넌 사람이었다.
흔들리는 집
석준은 눈빛이 또렷한 아이였다. 숫자에 강했고, 선생님들은 “말귀를 잘 알아듣는다”라고 말했다. 주산 놓는 속도도 반에서 손꼽혔다.
어머니는 경상도 출신이었다. 젊은 시절, 마을에 퍼진 전염병으로 가족을 모두 잃고 서울로 올라왔다. 그리고 말수 적고 책임감 깊은 사내, 석준의 아버지를 만났다.
어머니는 늘 부엌에 있었고, 미소를 잃는 법이 없었다. 집안일 하나하나에 정성을 쏟았고, 일하지 않았지만 늘 바빴다. 아버지는 말없이 돈을 벌었고, 어머니는 말없이 삶을 받쳐주었다. 그 조용한 균형 속에서, 석준은 자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