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면체 사랑 - 2부

어머니의 괄낭(묶어둔 주머니)

by 일도

어머니의 봉투


주역 곤위지(坤爲地) 효사에 *괄낭(括囊)*이 나온다.

주머니를 묶어둔 것이다.


늦은 봄 저녁, 창틀이 바람에 가볍게 떨렸다.

주방에는 된장국 냄새가 은근히 퍼지고, 벽시계는 밤 아홉 시를 지나고 있었다.


석준은 낡은 식탁에 앉아 수첩을 펴놓고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몇 평짜리 건물이 적당할지, 학원 운영은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수입과 지출은 어떻게 맞출지.

입가엔 미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때, 부엌 쪽에서 어머니의 조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석준아…”


석준이 고개를 들었다.

어머니는 앞치마를 벗으며 천천히 다가왔다.


“너 학원 차릴 건물 알아보는 중이라며?”


석준은 멋쩍게 웃으며 뒷머리를 긁었다.


“네… 그냥 좀 보는 중이에요. 아직 정한 건 없고요.”


어머니는 말없이 식탁 옆 의자에 앉았다.

치맛자락 안에서 두툼한 봉투 하나를 꺼냈다.

그 손길엔 약간의 망설임이 있었지만, 곧 단호해졌다.

그녀는 봉투를 아들 앞에 조용히 밀었다.


“이거… 얼마 안 되지만, 보태 써라.”


석준의 눈이 봉투로 옮겨졌다.

묵직한 종이의 감촉이, 그 안에 담긴 시간의 무게를 전했다.


“이게 뭐예요, 어머니…”


“네가 준 돈… 그거 조금씩 모아둔 거야.

티 안 나게 모았어. 아무도 몰라.

그러니까 걱정 말고, 그냥 써.”


어머니의 눈빛엔 초롱한 빛이 어렸고, 입가엔 잔잔한 미소가 스며 있었다.

그녀는 아들의 손 위에 봉투를 올리고, 자신의 손까지 포개어 덮었다.


“학원 차리면 이것저것 준비할 게 많을 텐데…

책상도 사고, 칠판도 마련해야 하고… 애들 책도 사야지. 보태 써라.”


그녀는 묶어둔 수뢰준의 괄낭(括囊)을 푼 것이다.


말끝을 흐리며 조용히 아들의 손을 감쌌다.

석준은 고개를 숙인 채, 어머니 손에 잡힌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잠시, 긴 시간이 그 자리를 머물렀다.


밖에서는 봄바람이 창문을 스쳐 지나갔다.

전등 아래, 어머니의 손등엔 세월이 새긴 주름이 격자처럼 얽혀 있었고,

그 사이로 땀방울 하나가 맺히듯 빛났다.


그 순간, 석준은 알았다.

자신이 지금껏 모은 것보다 훨씬 깊은 무언가가

그 봉투 안에 담겨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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