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면체 사랑 -2부

일도와 명희의 시골교회

by 일도

제8면체 水地比(수지비)


“사자와 어린양이 함께 뛰논다.”


‘수지비’는 땅 위에 물이 있는 형상이다. 본래는 ‘친하다’, ‘친밀하다’는 뜻의 글자다. 서로 스며들 듯 가까운 상태. 평화롭고 따뜻한 관계. 사자와 어린양이 함께 뛰노는 풍경처럼.


일도의 가족은 무사히 남쪽 지방의 한 시골 마을, 풍산리에 안착했다. 서울에서 차로 약 네 시간 거리. 일도는 작은 교회의 전도사로, 명희는 인근 소도시의 우체국에 전근을 받았다.


첫 출근 날, 명희가 우체국 문을 열고 들어서자, 직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쏠렸다.


“야야, 오늘 서울서 전근 온다더니 바로 저 사람 아이가.”

“게다가 시골교회 사모라던데, 어째 생겼을꼬.”


작고 아담한 체구, 푸른빛 원피스에 짧은 재킷을 입고 조심스레 걸어 들어오는 명희는 마치 인형 같았다.


“안녕하세요, 서울에서 전근 온 김명희입니다.”


직원 중 누군가가 감탄하듯 말했다.

“오메, 저 살살 녹을 듯한 서울 말씨 보소…”


명희는 처음부터 스스로의 인격으로 자리매김해야 했다. 서울 말씨, 낯선 억양, 거칠지만 정 많은 경상도 사투리 사이에서. 그녀는 홀로 낯섦을 감당해야 했다.



명희가 출근하고 나면, 교회에 남은 건 일도와 어머니, 그리고 어린 두 딸. 어느 날, 아버지는 큰딸 지영에게 막걸리를 사 오라 심부름시켰다.

작은 사거리에서 동네 아이들이 길을 막았다.


“사탕 하나 주면 보내줄게.”

“저리 비켜!”

지영이 소리를 지르면 아이들은 금세 물러났다.



시골 교회의 하루는 예배로 시작해 예배로 끝났다. 수요예배, 어린이예배, 중고등부예배, 주일 오전과 오후예배까지. 설교는 대부분 일도의 몫이었다. 어린이예배 외엔 모든 말을 일도가 책임졌다.


하지만 교회 성도 대부분은 어린이와 청소년. 50대 이상 부인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농번기가 시작되면 교인은 더욱 바빠졌다. 이곳은 전국적으로 이름난 포도 산지.

포도 수확은 껍질을 벗기고 벌레를 털어내는 작업에서 시작된다. 수십 번의 손을 거쳐야 비로소 한 송이가 완성된다.


1년쯤 지나자, 여기저기서 소문이 들려왔다.

“전도사님은 인사를 안 한다더라.”

“전에는 농번기면 트랙터도 몰고 사모는 밥도 해줬는데, 이젠 영 없다.”


비교는 피할 수 없었다. 이전 전도사는 동네 청년 출신으로, 신학교를 다녀 돌아와 사역에 임했다. 동네 사정을 훤히 아는 그였기에, 교인들과는 이미 정이 깊었다.



어머니는 속상해했다.

“서울에선 우리 일도가 칭찬받던 아인데… 왜 여긴 이리 말이 많노.”


어머니는 며느리에게 투정 섞인 말을 흘렸다.

일도는 알면서도 모른 척했다. 동네 어른들에게는 인사를 하되, 지나치게 굽실대지는 않았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지나친 예의를 요구하는 문화는 현대 사회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발이 없는 자’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주역』의 ‘천택리(天澤履)’에서 ‘리(履)’는 밟는다는 뜻, 즉 ‘행위’와 관련이 있다.

발이 없다는 것은 곧, 실천이 없다는 뜻이다.


일도는 예배를 집행하고 말씀을 준비해 설교하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 믿었다. 심방은 선택 사항이었고, 교인들의 실생활은 교인의 몫이라 여겼다. 농번기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날에도, 그는 그저 자신의 사역만을 생각했다.



교인들도 알고 있었다. 서울에서 온 여린 전도사, 가냘픈 사모에게 많은 것을 바라긴 어려웠다.

공무원이니 생계 걱정은 없겠지만, 어딘가 옛 사모가 그리웠다.


전임 전도사는 보일러, 전기, 지붕 등 못 고치는 게 없었다. 농사일도 척척 거들었고, 교인들은 그에 대한 대가도 기꺼이 지불했다. 사모는 손이 빠르고 목소리도 낭랑해, 동네 어르신들과 서슴없이 어울렸다. 바쁠 땐 밥을 지어놓고 빨래까지 도와주곤 했다.


명희는 그런 이야기를 듣고, 주말에 교회 반주자 집에 가지 반찬을 만들어 주려다 그만 냄비를 태웠다.


“모매님, 어쩌죠? 이걸 태워버렸어요…”


명희는 조심스럽게 냄비를 내밀었다.

“아이고 매, 안됩니다. 버리이소. 양념해 봐야 못 먹어요. 버리이소, 버리이소.”



일도와 명희는 ‘시골’의 진짜 정서를 몰랐다.

이웃집 수저가 몇 개인지, 아들딸이 어디서 뭘 하는지까지 속속들이 알고 지내는 삶.

농번기엔 푸마시로 일손을 보태고, 모든 사건과 사고를 함께 나누는 공동체.

그들은 교회와 우체국이라는 제한된 반경을 벗어나지 못했다.

아니, 애초에 벗어나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전도사 부부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자의식은 있었지만,

그들은 아직 ‘함께 사는 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시간은 흘러가는 것인가!”


일도와 명희의 시가은 시골교회와 소도시 우체국에서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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