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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미 Apr 19. 2022

마침내 뜨거움이 될 것이다.

덕질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기재가 부족하다거나 운이 없어 매번 반집 차 패배를 기록했다는 의견은 사양이다.
바둑과 알바를 겸한 때문도 아니다.
용돈을 못 주는 부모라서가 아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자리에 누우 셔서가 아니다.
그럼 너무.
아프니까.

미생 -윤태호-


열심히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난 그냥 열심히 하지 않은 편이어야 한다. 편모슬하에서 가난하게 살아서가 아니다. 엄마의 감정의 하수구 노릇을 해서가 아니다. 충분한 대화가 없어서가 아니다.

그럼 너무. 아프니까


열심히 하지 않아도 뭐든 그냥 처한 상황에 충실했을 뿐인데 잘한다고 칭찬을 받았다. 인생의 주요한 순간마다 내게 그럴듯한 격려를 진하게 해주는 사람들을 만났다.


적은 노력에도 받은 칭찬은 완전한 게으름을 낳았고, 자신을 향한 착각과 언제든 할 수 있다는 오만 속에 열심히 하지 않고 사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더하여 타고난 완벽주의 성향 덕에 나 자신을 과소평가하는 걸 수도 있다


뭘 해도 못하진 않는다. 주변 사람들과 같이 시작해도 눈에 띄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내 주변에 대단한 사람이 그동안 없어서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고, 주변에 잘난 사람이 많을 만큼 나란 사람이 훌륭하지 않다는 이야기 일 수도 있다. 기대되는 사람이었으나, 딱 거기까지였다.


그런 사실을 인정하기가 어려워 과거가 없는 사람, 잘 될 때 잘 나갈 때 그 순간만 있는 사람처럼 살고 싶기도 했다. 나 자신을 드러내기 힘들어하기도 했다. 더 나아가지 못했던 건 보고 싶지 않은 나를 발견할까 봐 숨이 차오르면, 빨리 포기했기 때문이다.


치열하게 한판 떠야 할 때 경쟁을 피한 것도 패배했을 때의 고통을 맛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미 패배가 확실한데 인정하지 못한 것이거나. 덕분에 그 자리엔 시기와 질투라는 더 큰 고통이 자리 잡아버렸다. 주변에 있는 좋은 것은 보지 않는 습관이 생겼다. 적당한 선에서 다른 길로 돌아가는 방법을 선택하며 독특함, 다름이라는 가치를 추구했다. 마음의 평정을 잃지 않으려 애쓰면서. 스스로도 잘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그리되어버렸다. 그렇게 특별하지도 다르지도 않은 평범하다 못해 평범 이하가 되어 버렸다.

덕질
[덕찔]
명사
어떤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하여 그와 관련된 것들을 모으거나 파고드는 일.


덕질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왕지사 글쓰기를 열성적으로 좋아해 보기로 했다. 나쁘지 않은 것 같다. 그저 마음이 끌리고 좋아 보였던 것들과는 다르게 약간의 자신 없음과 우러름이 오히려 약이 되었다. 글을 쓰면서 지루하지 않았다. 묵직한 부담이 있으면 있었지 엄청난 희열을 느끼지도 않았지만 한 편의 글이 완성될 때의 편안함이란 입꼬리가 씰룩 올라가게 했다.


덕질을 해보지 않아서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좋을지 감이 잡히지 않지만, 처음 글을 쓸 때  무턱대고 써보자는 생각이 틀리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 글쓰기 관련 책에도 일단 써보라고 한다. 모두가 그렇게 시작하나 보다. 단순히 책을 읽는 수준을 넘어서서 다양한 글과 작품을 더 깊이 들여다보라고 한다.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어떻게 쓰고 있는지, 무엇을 쓰고 있는지, 왜 쓰고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헤집어 파봐야 한다. 따라 해 봐야 한다.


글쓰기에 진심이 될 때쯤, 닮고 싶은 문체, 써보고 싶은 문장들,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더 확고해지리라.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말라고,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냐고 묻던 안도현 시인의 말처럼 한 번은 뜨겁게 불타올라보고 싶다. 더 활활


그렇게 하지 않으면 또 혼자 끙끙대다가 포기하거나 ‘이건 아닌가?’ '아니야 나도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안되지?' 스트레스받고, 열심히 안 사는 사람으로 전락할 거다. 과거에 숨고, 기질에 숨고, 엄마라는 책임을 안은 현재에 숨어버릴지도 모른다. 결과는 우울해지거나 분노로 잠 못 들겠지. '왜 나는 꿈이 없지? 더 나아지지 않지?' 자책하며 덜그럭 거리며 그릇이 깨지도록 설거지를 하고, 버럭 소리를 지를지도 모른다.

......


한 번에 한 걸음이지만 크게, 느리지만 나아가는 모양으로 고요히 흐르는 듯 잰걸음으로 걸어가야 한다.

멋모르고 높다란 파도에 올라탔다가 낮게 깔리는 조류에 하염없이 휩쓸려갈지라도 어깨를 쭉 펴고 숨을 고르리라. 두려움이 넘실거려도 용기를 내야 한다. 두려움에 압도되지 않는다면 그건 꿈이 크지 않기 때문이니까 결코 지루하지 않을 인생을 향해 높은 꿈을 품어야 한다.


실망이 엄마 얼굴을 까맣게 물들일 걸 알면서도, 따뜻하고 안온했던 고향 같은 엄마 뱃속을 떠나 좁은 산도를 지날 때 부어졌던 힘으로 용기를 내야 한다. 아들이길 간절히 바라는 기대가 멀리서 아득히 소음처럼 들려오고, 곧 첫 숨이 터지고 목젖이 떨려올 때의 평화를 기억하며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내게는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니 작은 노력도 반짝일 테고, 스스로를 괴롭힌 시간만큼 더 잔인하게 달래줄 수 있으리라. 충분히 여유로운 마음과 낭만이 있고, 눈이 침침해지지만 여전히 배울 수 있으니 차곡차곡 쌓이면 녹아 흘러들어 마침내 뜨거움이 될 것이다. 뜨거움으로 채운 삶의 온기로 내게 온 마음들을 가만히 덥혀줄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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