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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미 Apr 14. 2022

잘해줄게-2부

죽기 전에 더 늦기 전에

뇌. 경. 색. 응급실에서 의사와 대면했다. 혈관이 막혀서.. 눌려서 소뇌 세포가 죽었고.... 의사의 말하는 소리가 아득히 멀리서 들려오는 듯했고, 나는 차근차근 질문해가며 묻고 또 물었다. Brainstem을 건드리면 호흡곤란에 침을 흘리고... 기관 삽관을 해야 하는 경우가... 혈액을 묽게 하는 약을 사용해.... 최악의 경우 뇌 뚜껑을 열고 수술을 할 수 있으니 가족들과 미리 상의를.... 다 알아듣는 말인데, 잘 못 알아듣겠다.   


입원 수속을 했다. 응급실에 여전히 대기 중인 아주버님, 뒤늦게 도착한 형님의 힘든 상황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멀게만 느껴졌다.

          

아버님이 우리 집에 오래 계시거나 쭉 있어야 되겠구나...  아주버님이 언제 일어나 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아버님과의 동거에 대한 걱정이 더 크게 다가왔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덜컥 이렇게 된 것에 실감이 나지 않았다. 피곤했다. 힘없이 소파에 쓰러지듯 앉았다. 아버님께 이 일을 알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이고 있었다. 그럼에도 말씀은 드려야 할 것 같았다. 아버님이 앉아계신 소파 곁으로 몸을 기울였다. 그런데 아버지가 앉아계신 소파 옆자리가 이상했다. 어제까지도 멀쩡해 보였는데, 하얀 것들이 우수수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나이가 들면 사람 몸에서 비듬처럼 각질이 떨어져 나온다. 피부가 점점 건조해지니 그럴 수밖에 없다. 학습해서 알고, 나도 의료계에 종사하던 사람이라 노인들을 많이 봐서 안다. 그럼에도 순간 그 각질 부스러기들이 보기 싫었다. 아니 꼴도 보기 싫었다. 하려던 말을 멈추고, 숙였던 몸을 일으켜 고개를 돌리고 애써 외면하고는 내 눈빛과 태도가 미운 마음을 전할까 봐 얼른 휴대폰을 들여다봤다.    

            

퇴근한 남편에게 아주버님의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하니 아버님은 우리 집에 좀 오래 계셔야 할 것 같고, 당신이 최소 주 1회 아버님 목욕 꼭 씻겨드리고, 옷도 자주 갈아입도록 도와드리고 몸이 건조해 각질이 많이 일어나니 로션을 꼭 발라드리라고 했다. 남편은 대답이 없다. 나도 그 대답을 굳이 듣겠다는 마음이 없었다. 알아들었겠지.

          

나는 아주버님이 쓰러지셨는데도 담담했고, 아버님이 풀을 몸에 달고 들어와 바닥에 떨어뜨려도 감정의 큰 동요가 없었고, 이층으로 오르는 나무 계단에 하얗게 떨어진 각질 부스러기가 보이는데도 감각이 없었다. 무심하게 바라보고 그냥 말없이 삼켰다. 그러나 그렇게 삼키면 안 되는 거였다.

         

스트레스가 쌓이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나는 전혀 이런 상황을 맞을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의연히 대처하는 게 맞는 일이라고만 여겼다. 일과 학업, 자녀양육, 살림, 책 읽기, 글쓰기, 블로그 등 내 할 일에 차질이 없기만을 바랄 뿐이다. 자꾸만 멍해졌다. 머리가 아팠다.    

      


"잘해줄게"

     

아버님을 처음 뵌 곳은 애들 고모의 결혼식장이었다. 아버님은 내 손을 꼭 잡고 잘해줄게라고 한마디만 하셨다. '아버님이 나에게 뭘 해줬지?' 기억을 더듬어 봤다.


배운 것 없이 목수로 평생 막일판을 전전하며 술과 '남 탓'으로 살아온 인생. 명절이면 취한 체 이 사람 저 사람 돌려까지 않으면 다행인 인생. 가진건 목숨뿐인 인생. 내가 그분께 받은 게 있었나 생각해보니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말로 하는 약속은 덧없다.

         

지키지 못할 약속을 남발하며 사는 우리들. 나 자신도 정작 아버님이 혼자 꿋꿋이 살 때는 "아버지 언제든 저희 집으로 오세요. 같이 살아요. 외롭게 있지 말고요."라고 맘 좋은 착한 며느리 인척 코스프레하지 않았던가 말은 그렇게 했어도 아주버님이 계시고, 우리는 둘째니까 안심하고 살았던 거다.


그러나 정작 이런 상황이 오니 어떻게든 아버님을 모시는 건 피하고 싶고, 피한다고 해도 아버님의 거취에 대한 대책도 없다는 사실에 짜증스러울 뿐이며, 무거운 책임감에 짓눌려 한숨만 내쉬고 있지 않은가

                    

며칠째 의무감에 식사 준비를 하고, 간단한 인사를 드릴뿐 다정하게는 고사하고 별다른 말을 걸지 않았다. 마치 로봇 같았다. 아버님도 말씀이 없으시고, 나도 내 할 일만 했다. 고민스러웠다. 내가 이 상황을 잘 감당할 수 있을까? 남편을 불편하게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런저런 염려들만 마음에 가득하다. 그래서 더 말이 없어지고 있고, 이렇다 저렇다 말을 하지 않으니 토해내지 못한 내 생각들은 염증이 되어가는 듯했다.  

        

Photo by Milad Fakurian on Unsplash

평소에는 그렇게 떠지지 않던 눈이 새벽 4시 30분이 되니 번쩍 떠졌다. 기도해야 한다. 온몸을 비틀며 끙끙거렸다. 답답한 마음을 움켜쥐고 웅크려 한참을 머물다, 한바탕 사람에게는 하지 못할 말들은 하나님 내 아버지께 털어놓았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요한일서 4장 7-8절)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아버님이 햇살 아래 나와 앉아계셨다. 아버님 옆 비어있는 한자리 거기 앉았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앉아서 앞만 바라보았지만, 볕 좋은 오후의 눈부심이 마음에 넘치게 부어지고 있었다. 의도한 것도 아닌데, 영화 같은 이 연출은 뭘까? 마음에 무언가 가득 차오르고, 뜨뜻해지는 이 느낌은 뭘까? 아버님은 지금 어떤 느낌일까? 거실에 들어와 베란다 쪽으로 향한 내 책상에 앉아 글을 쓰며, 한참을 볕에 더 앉아계신 아버지를 힐끗힐끗 훔쳐보았다. 햇볕이 좋아 무심코 한 행동은 메마르고 언 내 마음을 녹이고 있었다.

         

[삶은 힘들고 암과 함께 가는 삶은 더 힘들다. 그러나 진심에서 우러난 말 한마디, 따뜻한 스킨십이 환자의 절망감과 외로움을 달래준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외로움을 먼저 치유해야 한다. 우리가 스스로를 더 사랑할 때, 우리의 외로움과 타인의 외로움을 보듬어 안을 수 있다]  죽기 전에 더 늦기 전에 -김여환-   

       

마누라 먼저 보내고, 자식이 쓰러져 병원에 있다는 소식을 들으며 무감각하게 그저 고개만 끄덕이는 마르고 야윈 아버지의 마음에는 어떤 모양의 절망이 자리 잡고 있을까? 삶은 그렇게 힘들고, 준비되지 않은 체 안 좋은 소식, 감당하기 힘든 상황을 끌어안아야만 한다. 그러나, 진심에서 우러난 말 한마디. 따뜻한 곁 지킴이 우리의 절망감과 외로움을 달래주리라 믿는다.  

        

어쩌면 스스로의 외로움을 먼저 치유해야 한다는 것은, 나보다 약하고 부족한 사람 아니 강하고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죽음을 향해 가고 있는 모든 안쓰러운 사람들의 곁에 말없이 앉아주는 행동이 아닐까? 나도 아프고 힘겹지만 내 아픔을 먼저 달래기보다 더 아픈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주고, 따뜻하게 손 한번 잡아주고, 웃어주며, 다독여주는 게 아닐까. 그런 모습이 사랑이지 싶다.

       


어버님과 둘이 하는 아침식사. 아버님께 질문을 했다. "아버님! 아버님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언제가 제일 좋았어요?" 한참 뜸을 들이시더니 무덤덤한 표정으로 말씀하신다 “좋았던 날이 없었던 것 같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숙이고 먹던 밥만 우걱우걱 씹는다.

         

죽기 전에 더 늦기 전에 후회할 일 만들지 말고, 아버님이 우리 집에 계신 동안 좋았던 기억으로 남을 수 있는 추억을 만들어 드릴 수 있다면 좋겠다. 내일은 더 많은 말을 하고, 더 오래 함께 앉아 있어야겠다.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좀 더 적극적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라는 걸, 아버님이 우리 집에 오시고 나서야 더 깨닫게 되는 것 같다.    

      

어쩌면 함께 지내며 내 자식 입에 들어가는 음식은 안 아까워도 시아버지 입에 들어가는 음식은 아깝고, 내 자식 안 씻는 건 안 더러워도 시아버지의 각질 부스러기는 더럽고 싫을 거다. 때때로 짜증이 나고, 아무도 안 볼 때 몰래 갖다 버리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어딘가에서 올라오겠지.


그런 마음이 쌓이는 날들엔 새벽이면 눈물, 콧물 한 바구니 쏟아내고 와야 하겠지만, 더 늦기 전에 조금만 더 사랑하려고 노력해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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