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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미 Apr 14. 2022

잘해줄게-1부

아버님이 우리 집에 오셨다.

“다녀오겠습니다” 도망치듯 집을 나와버렸다.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혼자 지내시던 아버님은 올초 아주버님과 살림을 합쳤다. 말이 살림이지 아버지의 짐은 옷가지가 든 가방 하나뿐이었다.


아주버님께 전화가 왔다. 코로나 확진이 됐다는 것이었다. 아버님은 음성이 나왔으니 좀 모시고 가라고 하신다. 아버지는 집에서 입던 실내복을 입은 채로 갈아입을 옷 달랑 한 벌, 그리고 인스턴트 죽을 손에 들고 우리 집에 오셨다.     

 

아버님이 오시고 다음날 분주한 아침을 한바탕 후다닥 치르고 나니. 아버님과 덜렁 둘이 남았다. 왜 그렇게 불편하고 어색하던지 오전엔 일이 없었지만, 서둘러 집을 나와버린 것이다.  

   

해가 기울고,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니 종일 혼자 계셨을 아버님 생각이 났다. 급하고 잰걸음으로 집에 돌아왔을 때 아버님은 어두운 거실에 홀로 우두커니 앉아 계셨다. 순간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TV라도 보시면 좋을 텐데 우리 집은 TV도 안 나온다.  

         

약정기간이 최소 3년이라는 티브이 채널을 설치했다. 전복을 사다 죽을 끓이고, 과일 주스를 만들고 부드러운 빵과 함께 드렸다.

"아버님 맛있죠?"

아버님께 웃으며 말을 걸고, 계시는 동안만이라도 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주버님이 다 나으셔도 더 계시도록 하고 싶었다.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아버님은 말수가 부쩍 줄어드셨고, 꼬장도 안 부리셨다. 눈치 보듯 조용조용 성격을 죽이셨다. 자식들을 힘들게 하지 않으려 애쓰시는 게 보였다. 순한 양이 되셨다.


때때로 술에 취해 전화해 "어멈이냐?" 하시곤 알아듣지 못하는 말로 웅얼거리시다 원망 섞인 말로 연락 자주 안 한다고 역정을 내는 게 다였다


 "아버님이 이렇게 전화해서 통화하잖아요~저는 아버님이 전화해 주시니 좋은데요. 그래도 아버님 혼자 외로우신데 자주 찾아뵙지도 못하고 연락도 안 하고 죄송해요"라고 편을 들어 드리면 엉엉 소리 내어 우는 것 밖에는 안 하셨다.


그럴 때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버지의 눈물이 우는 소리를 그저 들어 드리는 것뿐이었다.   


어머님여의고 내가 가장 후회한 일은, 할 말을 다했다는 거다. 할 말을 다해서 어머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요양원에 계실 때 자주 찾아가 뵙지도 못했고, 죽음이 임박했다는 것을 알았지만 임종을 지키지도 못했다. 그렇게 어머니의 죽음을 정면으로 마주하지 못했다. 건강하실 땐 잘해드려 보겠노라 노력은 했지만, 이별을 맞이하는 내 모습은 서투름 그 자체였다.


그런 못난 모습이 죄책감처럼 내 안에 남아 있어 아버님께 만이라도 잘해야지 싶었다. 그러나 그건 그저 마음뿐이었다.

  

아주버님이 아픈 동안 잠깐이니 계시는 동안 잘하자 마음먹었다. 먼저 웃어드려 보니 아버님이 예뼈 보이는 순간도 있었지만, 차마 우리 집에 계속 계시라는 말은 안 나왔다. 목구멍 가까이 차올랐다 삼켜지고 말뿐이다.


왠지 이번엔 우리 집에 오래 계실 것 같은 생각이 스치듯 들었다.  

Photo by Mehmet Turgut Kirkgoz on Unsplash


늦잠을 잤다.  아버님은 잔디밭에서 풀을 뽑고 계셨다. 비몽사몽간에 눈을 찡그리며 한참을 쳐다보니 잠옷 차림 그대로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계신 것이 아닌가?


이제는 연로하셔서 쪼그리고 앉지 못하시는구나! 예전엔 체구는 작아도 근육질에 탄탄하셨는데, 저러고 털썩 앉아 계신 건 다리에 힘이 없나 싶었다.


마음이 짠했지만 그보다 먼저 드는 생각이 있다. '들어오시면 옷은 갈아입으시겠지?'

서둘러 외출 준비를 했다.

"아버님 저 나가요 식탁에 죽 있는 거 드세요"

"응"

   

장을 봐서 집으로 가는 길, 오후의 햇살도 따사롭고 잔디밭에 풀이 뽑혀 있을걸 생각하니 아버님이 계셔서 좋았다. 입가에 미소가 번지고 콧노래가 나왔다.

 

Photo by Jandira Sonnendeck on Unsplash


여느 때처럼 아버님은 거실 소파에 앉아계셨다. 잔디밭에서 풀을 뽑을 때 입고 있던 그 차림 그대로다. 옷에 잔디 검불을 몇 개 붙인 채로. 당황스럽다.


"아버님 옷 갈아입으셔야 죠?"

"풀 마저 뽑고 갈아입으려고"

"아~ 네"


기분이 별로다. 머쓱하게 대답하곤 그대로 화장실로 향했다. 세면대에 흙물이 뛴걸 보니 풀을 뽑은 후 손을 닦으셨는데, 비누를 쓰신 흔적은 없다.

'후~'

한숨이 새어 나왔다. 잔소리를 하고 싶진 않다. 곧 가실 거니까 거실과 소파 주변은 청소하면 된다.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어도 참아드리는 게 맞다. 그렇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저녁 내내 아버님의 옷차림이 눈에 거슬려 힘이 드는데, 꾹 참고 있다.  

   

아침에 출근한 남편이 전화를 했다. 아주버님이 쓰러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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