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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미 Jun 14. 2022

지치는 날을 위한 위로

괜찮아 충분히 잘해왔고, 잘하고 있어

배우고 때때로 그것을 익히면
이 또한 기쁘지 않은가?
 벗이 있어 먼 곳에서 찾아오면
이 또한 즐겁지 않은가?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원망하지
않으면 또한 군자답지 않은가?

논어 1장 1절  
  

 지난해부터 원해서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있다. 인터넷으로 강의를 듣고, 과제를 제출한다. 대학에 다닐 때는 복습도 없고, 과제엔 서론, 본론, 결론에 대한 개념도 없는 글쓰기로 대충 무언가를 적어냈다. 점수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교수의 말을 귀담아듣지도 않았었다. 공부 따위 무시하고 살았다.

    

 자원해서 공부하기 시작하자 대충 해도 될 것들이 대충 해 지지가 않는다. 학점이나 점수가 욕심나서가 아니다. 모르는데 해야 하는 상황에서 대충 하기가 부끄러웠다. 서론 본론 결론에 맞춰 글을 써서 제출하라는데 어찌 이 좋은 시대에 검색이라도 안 할 수 있으랴.

 

 물론 과제 제출 방법까지 상세하게 안내해주는 동영상을 재생하면 되지만, 혼자 하는 공부가 녹록지가 않다. 여기저기 비교해보고 더 읽어보고, 찾아보고 과제 하나 쓰는 방법을 찾는데도 여러 글을 참고하고 있으니 과제를 작성하기도 전에, 지칠 것만 같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지금 진짜 공부라는 것을 하고 있다고. 그런데도 소파에 벌렁 드러눕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휴대폰을 들여다본다. 겨우 몸을 일으켜 책상 앞에 앉아도 인상을 찡그리며 몸을 비비 꼬고, 생전 처음 써본 안경이 무거워 연신 코 주변을 매만지며 자꾸만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는 연약한 나와 마주하기도 한다.     



 한때 열렬하게 좋아했던 일이 있었다. 그때 열렬히 좋아하는 그 일을 이렇게 열심히 했더라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그 일을 조금이라도 잘하게  되었을 텐데. 그때는 잘 몰랐다. 잘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도 몰랐고, 내가 못한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으며, 보이지 않으니 그럴듯한 고민을 한 적도 없었다.  

    

 돌아보니 좋아했던  일이 나의 적성에 꼭 맞는 일은 아니었다. 적성이 아니다 보니 힘들게만 느껴졌고, 노력해봐도 신통치 않았던 거다. 맥이 탁 잡히지 않고, 익혀지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럼에도 더 열심히 찾아보고 노력을 더 했었더라면 조금이나마 달라졌을 터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땐 왜 그렇게 집착하고, 발을 구르고, 곤조를 부리며 고집스러웠는지. 배우려 하기보다 내가 옳다고만 생각했는지 아찔하기만 하다. 나보다 잘하는 사람을 따르지 못하고, 그저 시기하고 질투했는지 부끄럽다.

  Photo by Tetiana Shadrina on Unsplash


 어려서 과정이 아닌 드러난 결과에 칭찬받았다. 그래서일까 눈만 높고, 허영심만 가득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어른이 되어 ‘잘한다’, ‘최고다’ 칭찬받는 일에 실패해 본 후 이상하다 생각했다. 사람들이 칭찬하지 않는 게 나를 향한 질투 같았다.


 한참이 지나고 많이 탐색하면서 노력이 아닌 결과에 칭찬받는 것은 좋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말해주는 사람이 없으니 그때 그 성적과 앎과 느낌이 전부인 줄 알았던 거다. 속에 채워져야 할, 보이지 않는 수고와 구체적 적용을 놓치고 살았다.

    

 겉만 번지르르 한 속 빈 강정으로 살면서도 부끄러운 줄도 몰랐다. 꿈과 이상은 높고 원대한데 ‘왜 난 안 되지?’ 방황했던 건 자신에 대한 자각이 없고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메우지 못해서였다.


  꿈과 이상이 높을수록 피와 땀, 눈물로 채워야 할 것들이 많다. 뿌리 깊은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샘 깊은 물이 마르지 않는다. 기초를 단단히 다지며 배우고 익혀 이상을 향해 나가야 한다. 부실함을 메워야 한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 근심하지 말고, 차근차근 실력을 쌓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기꺼이 초보자가 되어 배워야 한다.


 갈 길은 먼데, 전력투구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고, 좋은 멘토를 딱히 만난 것도 아니며, 더 많은 투자를 하기도 버거울 뿐 아니라 느리고 더딜 뿐이다.


  그럼에도 바른 출발점에 와 있는 느낌이 든다. 메타인지가 탁월하다고 하긴 뭣해도 자신을 제대로 알고 성장하려고, 겸손해졌다 표현해도 오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니까. 많은 것을 기억하지 못해도 지식을 어딘가에서 꺼내올 수 있는 능력이 확보되었다고 말할 수 있으니까. 그것을 충분히 내 것으로 만들어 타인에게 전달할 수 있고, 지식을 삶으로 실천하는 진정한 앎을 향해 나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여전히 배우고 익힐 테니 그런 나에게 격려와 갈채를 보내고 싶다.   


  “괜찮아. 충분히 잘해왔고, 잘하고 있어.”   

  


지위가 없는 것을 근심하지 말고,
그 자리에 설 수 있는 능력을 근심하라,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음을
근심하지 말고, 다른 사람이
알아줄 만하도록 되는 것을 추구하라

논어 4장 1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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