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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미 Jun 28. 2022

위로가 되는 아주 짧은 순간

듣기의 기술



조급한 마음의 문제


 어떤 문제가 되었든지 주변 사람을 보지 말고, 나 자신에게 초점을 맞추면 좋겠다고 했다. 감사할 부분은 감사하고, 상처로 인해 함께 할 수 없다면 상대에게 미안해하지 말라고 했다.



 다음에 이런 일이 없도록 하면 되지 않겠냐고 말이다. 이런 일이 일어나기 전 본인은 해야 할 책임을 다했는지 다만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앞으로는 그 부분을 고쳐나간다면 좋겠다고 말이다.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아니 그녀는 좀 씩씩하게 나는 좀 어설프게 적절히 이야기를 마무리했지만, 한참을 그날의 일이 생각났다. “고마워요. 괜찮아요”라며 웃던 그녀의 얼굴이 자꾸만 떠올랐고, 마음에 남아 욱신거렸다.     



 그녀를 생각하는 조급한 마음은 그녀의 마음에 위로가 되어 닿지는 못했다. 그저 말하는 힘만 센 사람이 되어 해결사 역할을 하느라 그녀의 마음과 함께 머물러주지 못했고, 나 스스로가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어 버렸다.    

  



HER


 그녀는 관계에 서툴다고 했다. 자신의 모습을 사람 앞에 드러내는 걸 두려워하고, 불안해 하지만 용기를 내어 나와 만나고 있다고 했다. 그런 그녀가 안부를 물어주는 내게 마음을 열고 이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도 장족의 발전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녀의 마음을 들어주지 못했다.   

   


 감정은 거대한 소용돌이처럼
휘몰아치다가도
누군가가 그 이름을 불러 주면
     재빨리 짐을 정리하고 떠난다.     
-말 그릇-


 감정은 제대로 이름을 불러주면 더 이상 마음을 휘젓지 않고 사라진다고 한다. 그러나 존재가 확인되지 못한 감정은 출구를 찾을 때까지 마음 어딘가를 떠돌면서 계속 생채기를 낸다고 한다. 그래서 슬픈 건지 아픈 건지 부끄러운 건지 모른 체 살아가면서 점점 더 감정에 무디어진다는 것이다.   

    


 괜찮다고만 말하며 자신의 감정에 무뎌진 그녀는 두려웠을까?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이야기하기가 두려워 최대한 전략적 객관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 술 취한 사람처럼 횡설수설할 뿐 담담히 이야기할 수 없었던 건, 나 또한 자신을 판단할 만한 사람이라 느껴서였을까.   

  


 그녀의 감정은 뒤엉켜 있었고 정리가 되지 않아 힘들어했다. 극심한 시간 압박, 집중을 방해하는 주변의 여러 환경 속에 있었고, 감정이 출렁이고 있는 상태로 참고, 버티고, 숨기고 있었다. 긍정의 감정만을 과도하게 사용하면서 감정을 방전시키고 있었다. 자신의 핵심 감정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어쩌면 자신의 진짜 감정을 직면하는걸 두려워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대인관계가 서툰 사람이니 자신의 이야기를 편하게 하는 것도 서툴렀을 것이다. 또한, 나와의 관계에서 안정감을 느끼지 못했고, 노력했지만 편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딱히 위로받을 마음은 아니었을 거고, 또 어쩌면 위로받고 싶었으나 위로받고 싶은 대상이 내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미쳤다.




우리가 위로받지 못하는 이유  


 우리는 아무에게나 위로받기를 원하지 않는다. 직면한 문제에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 경력도 없으며 경험도 부족하고 나이도 어린 사람이라면 더욱 그럴 수 있다. 특별히 위치가 다른 사람에게 위로받는 것은 더 어렵다.



 적어도 위로를 받을 때는 그 일과 직접적으로 관계있는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문제의 실마리가 풀렸거나 사회적 위치가 비슷한 사람의 말에 더 위로가 된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 말은 심히 주관적이지만.

     


 때로 우리는 전혀 위로를 받아들일 만한 상황이 아닌 경우도 있는 것 같다. 여전히 감정이 격앙되어 치우쳐 있기 때문에 누가 무슨 말을 해도 위로가 안되고, 감정에 날이 선체로 흥분되어 널뛰는 상태라고 해야 할까?



 눈에 뵈는 것도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는 상태가 되었을 때는 꾹 참고는 있지만 위로를 바라면서도 바라지 않는 모순 속에 갇혀있다. 그런 상황에서는 아무것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 흥분하고 분노하여 절망과 무기력을 넘어 포기의 단계가 와야 적어도 위로를 받을 준비가 된다고나 하겠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누군가를 섣불리 위로하려 하기보다는 그저 들어주어야 한다. “그랬군요”,“힘들었겠어요”라고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주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는 너무 자주 성급해진다. 기막힌 말을 하고 싶어 한다. 사랑하고, 도와주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다. 무엇도 희거나 검게 할 수 없다. 그저 탄식하고, 겸허히 받아들이는 것 외에 그저 존재할 뿐이다.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 사람에게는 쉽게 위로받지 못한다는 것을.





위로가 찾아올 때


 위로는 뜻밖의 장소, 뜻밖의 사람, 뜻밖의 순간에 찾아온다. 한없이 마음이 낮아진 어느 날, 정말 허름하고 초라한 장소에서 예상하지 않은 시간에 내어 주는 따뜻한 한마디, 차 한잔, 묵직이 등을 토닥이는 손길, 문간에 놓인 죽 한 그릇, 작은 손수건, 사랑한다는 메모에 우리는 위로받는다.    

  


 그때 나를 위로하는 대상은 친밀해서 자주 밥 먹고 영화 보는 사이도 아니고, 힘들 때 찾아가 마음 터놓는 사람이 아니며, 어려울 때 사정을 봐주고 돈을 빌려주는 든든한 지원군도 아니다. 잘 모르고, 그리 친밀하지 않은 어떤 사람인 경우가 많다. 성격이 까칠한 사람, 내 험담을 했던 사람, 무심한 사람인 경우도 있다.

    


 그리고 대부분 이런 작지만 큰 위로는 내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모든 것을 포기했으며 마음이 하염없이 낮아진 순간찾아온다. 그때가 바로 위로받기에 충분하고도 남을 만큼 준비된 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 힘으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순간에는 시리도록 찡하고 절절한 눈물이 터지는 아름다운 위로는 경험할 수 없다. 하늘은 오직 낮아진 자에게 선물과 같이 빛나는 위로를 주신다.



 그녀에게 하늘의 위로가 있기를....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누가복음 18:13)

Photo by Clay Banks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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