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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미 Aug 16. 2022

뜨거운 안녕

 

 차가 달리는 내내 차창밖 풍경들을 바라보았지만, 풍경에 관심 따위는 없었다.  소소한 생각들만 어지럽게 떠올랐다.


 '올가을엔 고구마 수확을 도와주지 않아도 되겠구나!'

형부 표 고춧가루, 진한 참기름을 이제 더는 맛보지 못하겠다. 왠지 잘해주게 되더니 이러려고 그랬나 싶었다.   

    

 둘째 언니의 부재중 전화에 응답을 안 한 체 점심 먹을 준비를 하던 일요일. 전화를 받는 남편의 표정과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예상치 못한  부고를 들었다.




 “내가 너 맨날 엎어줬는데 큰 언니는 너 한 번도 안 엎어줬어. 내가 맨날 너 엎어줬지. 네가 잠이 들어 내려놓으면 아앙 울면서 깨고, 안아서 어르면 안 울고 잠들고 그랬어.”

언니는 마치 엄마가 아이에게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해주듯 울 때마다 엎어준 얘길 했다. 예전에도 몇 번쯤 언니가 이 이야기를 했지만, 관심 없었고, 모든 말을 흘려들었었다.


        

  그렇게 식상한,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이야기에 반응하게 되고 한마디 한마디가 마음에 꼭 꼭 새겨진 건, 오늘 같은 날이기 때문일까?  자식이 부모의 고마움을 뒤늦게 깨닫듯 ‘아 그때 나를 반쯤 엎어 키운 사람, 어린 나를 달래고 살펴주던 사람이 우리 둘째 언니였구나!’ 느끼는 순간, 아릿한 마음은 깊이 무언가를 회상하기라도 하듯 시선을 멀고도 아득히 두게 되었다.    

    



 찬바람이 온몸을 파고들어 부르르 떨며 눈을 떴을 때 멀리서 희미하나마 떠드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사방이 다 어둠뿐인데 우리 집 마당에 전깃불은 밝게 빛났다. 마당에서 엄마와 아빠가 서로 막말을 하며 싸우는게 보였다.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술에 취한 아버지는 엄마를 때리다가 물건들을 마당으로 내어 던지고 있었다. 다시 눈을 감았다.  

      


 까무룩 잠이 들었다가 깨어났다를 반복했었다. 새벽녘 추위에 움찔거리는 내 엉덩이를 토닥여주는 손길이 느껴졌다. 내가 업혀있는 등이 누구의 등인지 모르겠다. 다시 설픈 잠에 빠져들 뿐이다.  


    



 언니는 눈가를 붉힌 체, 얼굴이 빨갛게 상기되고 얼룩져있다. 어디 기대지도 못하고 쓰러질 듯 서서 갈대처럼 흔들리며 연신 눈물을 훔치고 있다. 서로 얼굴만 바라볼 뿐 차마 이름을 부를 수 없어 말없이 국화를 올렸고, 눈물이 마중을 나왔다. 형부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시간에 떠났고, 언니는 준비되지 못한 채 혼자가 되었다.      


 어색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낯익은 사진 속 남자가 엊그제까지 내가 퉁명스럽게 말을 던지던 그 사람이 확실한 걸까?! 한없이 작아진 언니를 한참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서른이 다 되어도 여전히 내게는 아이 같은 조카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상주복을 입고 다소곳이 손을 앞으로 모은 체 침울한 표정으로 슬픔을 견디고 있지만, 여전히 동안이며 순진한 조카의 얼굴에 마음이 아프다.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조문하기 싫었다. 할 수만 있으면 도망치고 싶었다. 싫었다 이런 상황이.    




  “은미야! ” 

 금방이라도 형부가 나의 이름을 부르며 들어올 것만 같았다.  


 매실장아찌가 먹고 싶대서 유난히 딱딱한 매실 열매를 쪼개느라 칼을 쥔 오른손 검지 마디가 벌겋게 부어오르고 얼얼해도 즐거운 마음으로 담아두고 한 달쯤 시간이 흐르기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잘 있으라는 인사도 없이 흐리지만, 여전히 뜨겁던 날에 형부는 무심히 그렇게 떠나버렸다.


Photo by Rohit Sharm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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