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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미 Jul 22. 2024

나는 아버지가 무서웠습니다

어떤 이유로 아버지가 오빠를 학대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분명한 건 단순한 체벌이나 야단 수준을 넘은 학대였다는 사실입니다. 술을 마시고 들어온 날 아버지는 오빠를 때리다가 옷을 벗겨 논바닥에 벌을 세웠습니다. 팬티만 입고 논바닥에 벌을 서면 여름엔 거머리가 달려들었습니다. 오빠는 울면서 다리를 동동거렸고 두 손엔 커다란 밀대를 높이 든 채로 괴로워했습니다. 당하는 오빠야 오죽했겠습니까마는 나도 논배미 아래 주저앉아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너무 아팠거든요. 오빠가 벌을 서는데 내가 견디지 못했습니다. “오빠 나와.” 목이 쉬도록 불렀습니다. 오빠가 멀리 도망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진: Unsplash의 Jordan Whitt

나는 오랫동안 이 일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딸들은 다 놔두고 아들만 유독 벌 준 이유가 뭘까 하고요. 엄마는 이 일에 대해 후에 오빠 손을 꼭 잡고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내가 아버지 자식 안 키우고 미워해서 아버지가 널 학대했다. 다 엄마 잘못이다. 미안하다.” 


맞는 말일 겁니다. 그러나 단지 그래서만은 아닐 겁니다. 다 설명하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복잡한 이유와 동기가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아버지를 용서하지 못하는 오빠에게는 말하기 민망하지만 어쩌면 아버지 안에는 자신에 대한 미움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되었습니다. 자기 자신을 너무 증오해서 자신을 닮은 아들을 미워했던 것은 아닐까 하고요. 덕분에 자식들도 당신을 미워하게 만들고요.      




나도 딱 한 번 아버지에게 맞은 적이 있습니다. 

비가 내리는 날이었습니다. 툇마루에 혼자 앉았던 나는 문득 비를 만지고 싶었습니다. 손바닥으로 빗방울을 받아내어 쏟아 내고 또 받았다가 쏟아냈습니다. 처마에서 떨어진 빗물이 흙마당에 작은 물웅덩이를 만들었습니다. 낙수가 만든 둥근 물웅덩이를 보니 놀고 싶어 졌습니다. 신발을 신으려고 마루 아래로 고개를 숙이자 댓돌 옆에 가지런히 놓인 갈색 부츠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작은 물웅덩이를 밟으며 기둥을 붙잡고 빙글빙글 돌았습니다. 차가운 빗물이 정수리에 떨어지고 옷도 살짝 젖었습니다. 그래도 물웅덩이를 밟으며 흙을 짓이기는 느낌이 재미있었습니다. 부츠는 흙투성이가 되었습니다. 부츠가 흙으로 더러워진 걸 느꼈을 때 곧 나에게 핑크색 부츠가 하나 더 있다는 것을 생각해 냈습니다. 설레는 맘으로 신발장을 열고 분홍색 부츠를 꺼내 신었습니다. 예쁜 부츠를 신으니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이번엔 물웅덩이를 첨벙거릴 때 조심했습니다. 또 더러워지면 안 되니까요.   

  

사진: Unsplash의 Rupert Britton

한참을 그렇게 노는 데 마당 저편에서 고개를 푹 숙인 채 침울한 표정을 지은 아버지가 집으로 오는 게 보였습니다. 비에 젖은 아버지가 자전거를 끌고 성큼성큼 마당 가까이 오는데 덜컥 겁이 났습니다. 신발을 두 개나 흙으로 버렸으니 야단을 맞을 것 같았거든요. 바닥에 아무렇게나 벗어던져둔 흙투성이 갈색 부츠를 얼른 주워 들었습니다. 비가 계속 오니 수돗가로 갈 수는 없고 떨어지는 빗물에 부츠를 갖다 댑니다. 오줌이 마려운 것도 아닌데 움찔움찔 몸을 비틀었고 한 손엔 부츠를 들고 흙을 닦습니다.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습니다. 흙은 너무 질고 많이 묻었는 데다 빗물 줄기는 가늘고 겁을 먹고 움츠린 내 손은 서툴고 느렸거든요.    

  

마당을 들어선 아버지가 자전거를 처마 안쪽으로 바짝 세웠고 나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날카롭고도 야멸찬 눈빛과 동시에 거친 손이 뺨에 날아왔습니다. “까져갖고” 손바닥이 빰을 쓸고 지날 때 까졌다는 말이 후비듯 마음에 날아와 꽂혔습니다. 태어나서 처음 아버지에게 맞았지만, 노동으로 단련된 거친 손바닥이 빰에 닿아 느끼는 얼얼함보다 뜻 모를 아버지의 말이 더 아팠습니다. 까졌다는 말을 이해할 나이도 아니었으니까요. 다만 나를 나쁘게 평가하는 말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주르륵 눈물을 흘렸고 훌쩍 거리며 울었습니다.  

    



나는 아버지가 무서웠습니다. 그 두려움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동네 친구들과 멀리 떨어진 바닷가에 가서 놀다가 밤이 깊어서야 들어온 날 밥을 주지 말라고 호통치던 보통의 날부터였는지, 아버지가 엄마와 마당 이 끝에서 저 끝으로 돌며 싸우면 언니등에 업혀 동네 어귀를 맴돌며 아버지가 잠들기를 기다리며 졸던 때부터였는지. 아버지가 오빠를 발가벗겨 논바닥에 벌을 세울 때부터였는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나는 아버지가 무섭고 어려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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