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집을 지키는 무료한 날. 나는 화장품이 가득 한 초록색 바구니 위 거즈 수건을 조심스럽게 걷어냈습니다. 가위 모양의 로고가 그려진 화장품이 눈에 들어오네요. 화장품 뚜껑을 열고 크림을 듬뿍 찍어내 얼굴에 바릅니다. 거울에 비친 번들거리는 얼굴을 요리조리 돌려가며 살피다 끈적거리는 손과 얼굴을 닦아냅니다. 눈썹도 그리고 섀도를 눈두덩에 칠합니다. 입술에 립스틱을 바르곤 ‘음 빠, 음 빠’, 입술끼리 비벼주면 완성. 거울에 비친 요상 망측한 얼굴을 불만족스럽게 바라보던 기억이 납니다.
일 때문에 오래 집을 비우는 아버지가 술에 취해 들어온 날은 화장품 바구니를 마당에 던져 깨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물건을 깨는 아버지를 말리던 엄마가 이성을 잃으면 언니들이 두 사람을 말렸습니다. 아버지의 주사가 심해지면 언니는 어린 나를 업고 집을 나왔습니다. 어두운 밤길 집 주변을 떠나지 못하고 방황하듯 돌며 헤매다 아버지가 잠들고 나서야 집에 들어왔습니다. 한 번은 집에 들어와 보니 안방 문 안이 들여다보였습니다. 텔레비전이 있어야 할 자리를 벗어나 방 중앙에서 위아래로 조금씩 움직이고 있더라고요. 자세히 보니 아버지가 텔레비전을 들어 던지려다 뒤로 넘어가며 그대로 잠들어 숨을 쉴 때마다 텔레비전이 위아래로 움직이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주사가 심했습니다. 술 안 마시고 멀쩡할 땐 말이 없고 얌전한 편이었는데 술만 마시면 어딘가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왔던 모양입니다. 나는 아버지가 멀쩡한 정신으론 살 수 없어서 술에 의지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예쁜 말도 할 줄 모르고 허물만 많은 자신을 탓하느라 대단한 능력도 없는데 책임만 가득한 삶을 미워하느라 술에 취한 건 아닐까 생각합니다. 수없이 엄마의 물건을 망가트리고 던지기 시작한 건 어쩌면 자식도 자신도 버리고 떠난 첫사랑 여인 얼굴이 엄마 얼굴과 겹치며 떠올라 괴로워서였는지 모르겠다고요. 어엿 한 일자리가 생긴 후 더 멋을 내는 엄마를 보며 다시 잃어버릴까 두려워서 술을 마셨는지도 모르고요. 어쩌면 술은 아버지에게 진통제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술은 근원을 알 수 없는 통제 불능의 자아를 깨웠고 자신과 가정을 지옥으로 내몰 뿐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주사로 집안이 조용할 날이 없고 힘겨운 생활이 이어지는 중에도 큰언니는 졸업 후 취업을 했고, 나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한글을 깨쳤습니다. 여름을 지나 겨울이 와도 여전히 엄마는 나를 씻길 땐 마당 곁 수돗가에서 헹굼은 머리부터 찬물을 끼얹는 것으로 마무리했고, 나는 하교 후엔 엄마 화장품으로 얼굴에 칠갑하는 대신 국어책을 읽고 쓰기 숙제를 했습니다.
“이거 오빠랑 같이 나눠 먹어.”
“……”
초등학교 2학년 여름 주말 오후 낯선 남자가 마당에 들어섰습니다. 남자의 손에는 빵이 들려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사 왔던 것과는 다른. 역 전 버스 정류장 뒤 제과점에서 보았던 빵이었습니다. 유리창 가 진열장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지만 침을 삼킬 뿐 그림의 떡이었던 갈색 둥근 빵들. 소보루, 크로켓, 맘모스 빵 같은. 잠시 앉았던 남자는 곧 돌아갔지만, 그 후로도 두어 번 더 엄마의 직장 동료라는 그 남자는 과자며 빵을 사주고 갔습니다.
나는 엄마 친구라는 아저씨가 맘에 들었습니다. 값비싼 빵과 과자를 사 오시니까요. 빵과 과자에 마음 빼앗긴 순수한 꼬맹이는 어떻게 느끼든 언니들은 남자의 출현을 언짢아하는 것 같았습니다. 내가 빵을 먹을 때 언니는 너나 많이 먹으라며 기분 나빠했거든요. 나는 언니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아저씨는 친절하기까지 하셨으니까요.
대낮에 잠깐이지만 동네 사람 중 누군가도 낯선 남자와 엄마를 의심스럽게 본 것 같았습니다. 엄마가 아무리 그럴듯하게 둘러대도 철없는 나만 생각 없이 아저씨를 호감으로 여길 뿐. 사람들은 다르게 생각할 수 있으니까요. 우리 언니들처럼요. 아버지도 객지에서 생활하는 데다 엄마는 화장품도 많고 신발장엔 삐딱 구두도 많았으니 한껏 멋을 내고 다녔을 테니까요. 어쩌다 집에 오는 아버지는 수군대는 동네 사람들 입방정과 해괴한 눈빛을 금방 알아차렸을 겁니다.
죽자고 싸워도 20여 년을 이어온 결혼 생활, 한 가정이 깨지데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는 안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