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집으로 나를 찾아왔습니다. 허름한 상가 건물 2층에 세 들어 살 때였습니다. 학교가 파하고 집으로 가는데 누군가 뒤에서 내 이름을 불렀습니다. 아버지였습니다. 사과가 땅에 떨어지듯 심장이 쿵 내 마음 깊은 곳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고 오만상을 찡그렸습니다. 꽁지가 빠지라고 도망갔습니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발 구르는 소리와 함께 쿵쿵 뒤따라 왔습니다. 잡히면 때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부들부들 떨었습니다. 집으로 들어가 문을 꽁꽁 잠그고 숨어버렸습니다. 나는 배신자니까요.
쉬는 시간, 선생님께서 내게 놀이터에 나가 보라 하셨습니다. 놀이터에 나가니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숨을 수 있는 곳이 있다면 몸을 숨기고 싶었지만 그저 떨며 서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가려고 오셨다 하셨습니다. 아버지와 살아야 한다고요. 싫다고 고개를 저었습니다. 아버지는 술 많이 마시니까요. 오빠를 벌 주어 나를 울게 하던 무서운 사람이니까요. 생선 잔가시를 발라내고 먹는다고 야단치고, 어린 딸에게 “까졌다”며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사람이니까요.
바람이 많이 불던 초등학교 4학년 봄 소풍날이었습니다. 선생님이 찾는다며 아이들이 나를 불렀습니다. 아이들이 가리킨 곳으로 갔을 때 선생님과 대화하는 아버지가 보였습니다. 아버지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눈에서 눈물이 주룩 흘렀습니다. 힘없이 아버지를 따라나섰고 오빠가 다니는 중학교로 아버지를 안내했습니다. 복도를 걸어 나오는 오빠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오빠 눈에도 눈물이 맺혔습니다.
우리는 강릉역에서 기차를 탔습니다. 강원도 태백 황지. 처음 가보는 동네에 도착했습니다. 아버지를 따라 초록 대문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낯 모르는 아주머니가 우리를 맞았고 아버지는 우리를 앉혀 놓고 일장 연설을 했습니다. 그 일장 연설이라는 것이 엄마는 화냥년이니 아버지와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학교 다닐 필요도 없다고 했습니다. 주눅이 든 채 꿇어앉아 말없이 울었습니다.
저녁밥을 먹고 나자 아버지는 우리에게 옷을 다 벗으라고 했습니다. 속옷까지 다 벗어서 빨아야 한다고요. 주머니에 돈 있는 것도 다 내놓으라고 했습니다. 오빠는 순순히 옷을 벗었고 돈은 없으니 믿지 못하겠거든 뒤져보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침이 꼴딱 넘어갔습니다. 실은 청바지에 달린 보조 주머니에 꼬깃꼬깃 접어 넣은 만원이 있었거든요. 큰언니가 소풍이라고 맛난 거 사 먹으라고 엄마 몰래 준 돈이었습니다. 나는 돈이 있다는 걸 들키지 않으려고 옷을 벗지 않고 버텼습니다. 아버지 앞이라도 여자가 어떻게 속옷까지 벗냐고. 딸이라도 어떻게 아버지 팬티를 입냐고 싫다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할 말을 잃었고 아주머니가 내 역성을 들어주셨습니다.
“방문 잠그면 화장실은 어떻게 가. 방에서 똥오줌 다 싸? 돈도 없고, 여기 어딘지도 모르는데 도망을 어떻게 간다고 문을 잠가!”
일을 나가며 방문을 잠그겠다는 아버지에게 얼른 말했습니다. 내 말에 아주머니도 한마디 거들었습니다. 아버지가 아주머니와 함께 나갔고 나는 실의에 빠진 오빠 어깨를 두드렸습니다.
“오빠 집에 가자”
“집에 어떻게 가”
“나 돈 있어”
청바지 주머니에서 만원을 꺼내자 오빠 표정이 환해졌습니다. 돌아보지 않고 뛰었습니다. 네 살이나 많은 오빠는 몸도 빠르고 걸음도 빨라 성큼성큼 앞서 갑니다. 막상 신발을 신고 나가려니 오빠에게 집에 가자고 말할 때와는 달리 대문이 코앞인데 천리길처럼 멀어 보였습니다. 긴장이 몰려왔고 오빠가 사라질까 두려웠습니다. 뛰고 싶은데 발이 땅에 붙은 듯 무거웠고 심장이 쿵쾅거렸습니다. 아버지가 대문으로 들어와 도망가는 우리를 발견할까 봐 겁났거든요.
버스 정류장에서 마침 기차역으로 가는 버스를 만났을 때야 비로소 긴장이 풀리며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버스는 아스라이 깎아지른 산을 굽이굽이 돌아 올라갔고 온몸을 휘감았던 뜨거운 열기를 싸늘하고도 검은 산바람이 식혀주었습니다.
아버지를 본 건 이때가 마지막이었습니다.
더는 나를 찾아오지 않았으니까요.
20살 가을. 하교 길에 아버지의 부고를 들었습니다. 햇살에 눈이 부셔서인지 구름이 흘러가는 하늘이 예뻐서인지 눈물이 났습니다. 마음이 울렁거렸고 버스는 만원인데 계속 눈물이 흘렀습니다. 아버지가 보고 싶어 졌습니다. 두려움이 걷히고 그리움이 마음을 가득 채웠거든요.
아버지가 위독하시단 소식을 들었던 고3 가을 무렵 문병 가지 않은 걸 후회했습니다. 영원히 볼 수 없게 되었고 용서, 화해 따윈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죽음이란 모든 것을 덮는 힘이 있는 듯합니다. 원수라도 용서할 수 있는 힘 말입니다.
아버지가 찾아오면 언제나 심장이 멎는 것 같고 무서웠습니다. 우릴 납치하다시피 데려갔던 그날에도 괴롭히려고 그런다고 생각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 귀에 들린 대로 믿을 뿐 숨겨진 진심 따위 생각할 겨를 없는 아이였으니까요. 아버지가 우리를 찾아오는 이유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꾸짖고 혼내고 무뚝뚝하고 웃지 않는 사람이었으니까요. 가슴 깊이 숨겨둔 진실을 꺼내는 방법 따윈 모르는 사람이니까요.
아버지
당신은 예쁘다 말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랑한다 말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당신은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는 사람이었고, 미운 말만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당신이 무서웠습니다.
당신에게서 되도록 멀리 도망쳐야 마음이 편했습니다.
부드럽고 따뜻하게 관심 가져 주는 사람이 당신보다 좋았습니다.
당신을 잊고 살았습니다.
상처와 결핍 속에 성장하며 오랫동안 당신을 생각했습니다.
당신에 대한 기억을 기록합니다. 그리고,
뜻하지 않은 걸 발견했습니다.
당신은 거절과 배신을 견디며 미소를 잃었습니다.
주름이 깊어지고 허리가 굽는 동안 고통에 갇혀 살았습니다.
사랑이 식었습니다.
어렴풋이 당신의 삶이 보입니다.
당신의 마음을 봅니다.
줄곧 우리를 그리워했다는 걸 깨닫습니다.
자식들을 찾아다닌 건 보고 싶어서, 함께 살고 싶어서였다는 걸.
아버지
당신을 거절했던 어린 나를 이해해 주세요.
두렵고 떨렸던 마음 한편에 구겨진 채 놓였던 아버지에 대한 사랑도 알아차려 주세요.
나는 이제야 두려움을 벗었고 아버지가 그립습니다.
아버지를 더 선명하게 봅니다.
어째서 우리는 이렇게 빗나간 걸까요.
아버지
이 편지를 본다면 따뜻한 미소와 아름다운 언어로 내게 오세요.
아버지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가만히 기대어 들을 수 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