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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미 Aug 26. 2024

혼자는 병문안을 가지 않았습니다

“ㅂ역에서 11시에 만나자”

“알았어. 그런데 난 빈손이야.”

“괜찮아 언니가 가져왔어.”


세평 남짓한 면회실. 말이 느려지고 총기가 떨어진 엄마와 둘째 언니, 내가 마주 앉았습니다. 언니가 가방에서 보온병을 꺼냈습니다. 이어 떡과 과자. 두유와 봉지 커피를 내놓았습니다. 손바닥 길이의 앙증맞은 나무 숟가락과 유명 커피 전문점 이름이 새겨진 냅킨, 빨대와 일회용 설탕, 물티슈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챙겨 온 것들을 꺼내며 연신 엄마에게 말을 겁니다. 보온병 뚜껑을 열자 따끈한 팥죽이 나왔습니다. 나는 언니를 그저 감탄하며 바라보았습니다.     


“엄마. 이거 내가 만들었어. 한번 먹어봐. 설탕 필요하면 더 넣고. 은미야 너도 먹어봐.”     




간호사인 둘째 언니는 교대 근무를 합니다. 아들만 하나 뒀고 20대 초반에 취업해 30년 넘게 간호사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사회생활도 잘하고 자기 직무에서도 능력을 인정받는 뛰어난 사람입니다. 살림도 잘합니다. 잡지에서나 볼 법한 옷 정리. 장롱을 열면 향이 납니다. 냉장고 속은 어떻고요. 일을 하니 각종 간식과 음식을 가지런히 정리해 빼곡히 채웠고 아들이 혼자서도 꺼내 먹을 수 있게 메모도 잊지 않습니다. 딱 한 가지 요리만 빼고요. 

 

언니는 요리를 못합니다. 아니 자신 없어하죠. 음식을 할 땐 언제나 긴장합니다. 간을 안 보고요. 언니가 해주는 음식을 그래서 좀 뭐랄까, 빈듯한 느낌입니다. 요리는 내가 잘합니다. 찌개도, 김치도, 밑반찬도 내가 잘 만듭니다. 언니는 그런 거 할 시간도 없는 편이고요. 그런데 팥죽을 만들어 왔습니다. 알뜰하게 버리지 않고 챙겨둔 냅킨. 일회용품을 챙겨 소풍 오듯 도시락을 싸왔습니다. 역시 형만 한 아우가 없습니다. 언니가 존경스럽습니다.  

   

팥죽을 받아 든 손에만 시선을 고정하고 얼굴을 그릇에 묻고 말없이 꾸역꾸역 먹었습니다. 걱정하고 애쓰며 대단한 일을 할 것처럼 몸집을 키우고 한몫해보려 했는데 부끄웠습니다. 나 외에 모두 직장에 다녀서 정신없고 바쁜데, 꼭꼭 숨어 얼굴만 겨우 내비쳤고 누구보다 힘들어했거든요. 


정성을 다하는 언니 모습을 보면서 애써 본 적도 있긴 했습니다. 두 번에 한 번쯤 나도 간식을 준비했거든요. 김밥과 과일을 싸서 갔지요. 무엇인가를 사가기도 했고요. 그런데 자꾸 손에 힘이 풀렸습니다. 흉내만 내서 그런 걸까요. 애써 봐도 제자리로 돌아왔고 변화가 없었습니다.  

   



내 별명은 ‘빼꼼이’입니다. 낯선 사람이 집에 방문하면 방문을 빼꼼히 열고 쳐다보다 다시 들어가는 어린 동생에게 형제들이 붙여준 별명입니다. 마당에서 놀다가도 손님이 오면 일단 엄마 치마폭에 얼굴을 묻고 숨었습니다. 빼꼼이 반쯤 얼굴을 내밀고 쳐다보다가 치마폭으로 얼굴을 가리곤 했지요. 병원에 갈 때마다 엄마 치마를 붙잡고 늘어졌던 어린아이로 돌아간 것 같습니다. 언니가 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졸졸 따라다니는 사람이 된 나를 보면요.     

나는 준비되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누군가를 돌보기에 적합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엄마와 같은 사람을 돌볼 수 있도록 훈련을 받거나 필요한 지식을 가진 사람은 이니었으니까요. 반드시 준비되어야 하고 섬김에 탁월하도록 태어난 사람이 따로 있는 건 아니지만요. 지금 와 돌아보면 나는 책임감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오빠도 언니도 직장에 다니니까 당연히 내가 해야 하는데 못했다는 부담감을 안고 잘하려고 어떻게든 해보려고 했으니까요. 그런데 그때 나는 나를 몰랐습니다. 죄책감에 시달렸죠. 바쁜 형제들을 대신하지 못하는 내가 한심스러웠고 잘하지 못하는 내가 싫었습니다. 엄마가 그렇게 된 게 내 잘못도 아닌데 말입니다. 함께 조금씩 해내면 되는 것이었는데 말입니다.    

  

“엄마 보고 왔다. 너는 언제 갈 거니?” 

“응 다음 주에 가려고”    

 

함께 다니던 병문안은 각자 다니게 되었습니다. 서로 일정을 맞추는 것이 쉽지 않았거든요. 말은 안 했지만 언니도 지치는 것 갔습니다. 그리고 나는 혼자는 병문안을 잘 가지 않았습니다. 엄마 병문안 언제 갈 거냐고 묻는 언니 말에 거짓말을 했습니다. 혼자 병문안 갈 용기가 없었거든요. 적당히 둘러댄 말에 묶여 병문안을 갈 때도 있긴 했습니다. 그러나 대체로 말한 대로 행동하지 못해 죄책감을 느꼈고 괜히 남편에게 화를 냈습니다. 감정을 더디게 만들고 내 생활에 집중해도 엄마 생각에 우울해지는 날들이 점점 많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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