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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글리 우먼 9장

낯선 얼굴, 익숙한 사람

by 하늘사람

“누구...세요?”

효주의 목소리는 낯설고 조심스러웠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마주한 여인은 어딘지 모르게 익숙하면서도, 전혀 본 적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헝클어진 머리에 수건을 대충 두른 채, 헐렁한 티셔츠에 슬리퍼 차림. 그 어떤 장식도, 화장도 없이 맨 얼굴 그대로였다.

“효주야. 나야~ 수현!”

여인의 목소리는 환하게 울려 퍼졌지만, 효주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거실 가운데 선 여인의 얼굴은 낯설었다. 그러나 목소리, 말투, 그리고 눈빛은 너무도 익숙했다. 동시에 이질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야, 나라니까!”

여인은 두 손을 흔들며 환하게 웃어 보였지만, 효주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떨렸다. 눈앞의 사람은 분명 이수현의 목소리를 내고 있었고, 말투도, 눈동자의 떨림도 수현 같았다. 하지만 얼굴은…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수현이야?”

효주는 불안한 눈으로 다가섰다.

여인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나. 이수현. 영화나 드라마 같지?”

효주는 머릿속이 복잡하게 뒤엉켰다.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아도, 저 얼굴은 결코 이수현이 아니었다. 하지만... 뭔가 있었다. 알 수 없는, 말로 설명되지 않는 확신이 마음 한구석에서 꿈틀거렸다.

효주는 여인의 어깨를 붙잡았다.

“아… 수현이 친척이구나? 닮은 사람? 진짜 그만 장난쳐요. 빨리 말해요. 어디 있어, 수현이.”

그 말에 여인은 잠시 고개를 숙였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효주야. 네 생일 3년 전, 전 남친한테 차인 날... 너 미역국 안 먹는 거 알면서도 일부러 끓여놨었잖아. 내가 맘 아파서. 또... 너 오른쪽 귀 뒤에 작은 점 때문에 중학교 때 별명이 ‘귀콩’이었잖아.”

효주는 숨이 멎은 듯, 입을 틀어막았다. 그건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기억이었다. 정말, 정말로… 수현이 아니면 알 수 없는 이야기였다.

“진짜... 진짜 수현이야?”

수현은 울먹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효주는 그녀를 조심스레 안았다. 낯선 피부의 감촉, 낯선 향기. 그러나 그 속에는 여전히 수현의 체온이 있었다.

수현은 효주에게 어제와 오늘 있었던 모든 일을 조용히 털어놓았다.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노파와의 만남, 아침에 깨달은 변해버린 얼굴, 그리고... 아무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했다는 공포까지.

효주는 아무 말 없이 이야기를 들었다. 감정이 목까지 차올랐지만 꾹 눌렀다. 그녀는 천천히 소파에 앉은 수현 곁으로 다가갔다. 비록 얼굴은 낯설었지만, 앉는 자세며 손끝의 습관, 말끝을 흐리는 버릇까지 모두 수현이었다.

“내가 없어졌다고... 사라졌다고 신고해줘.”

수현은 말하며 눈을 피했다.

“이제 이 얼굴로는… 돌아갈 수 없어.”

효주는 수현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마치 그 눈동자 안에 ‘진짜’ 친구가 있는지를 확인하듯.

“방법이 있을 거야. 노파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렇게 해야지.”

“이 얼굴로? 기적은 안 일어나. 난 틀렸어.”

수현의 목소리는 낮고 떨렸다. 두려움과 절망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

효주는 깊은 숨을 내쉬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 얼굴이 뭐 어때서? 너는 그대로야. 나한테는.”

그리고, 조용히 수현의 손을 잡았다.

수현은 마침내 흐느낌을 터뜨렸다.

그 순간, 익숙한 사람의 낯선 얼굴은 조금 덜 낯설게 느껴졌다.

수현은 손끝을 꼼지락거리며 중얼거렸다.

“내가 지금... 세상에서 사라진 거야, 그치?”

효주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소파에 깊게 몸을 묻으며 생각에 잠겼다.

그 침묵은 묘하게 무거웠다. 잠시 뒤, 효주가 눈빛을 바꾸며 말했다.

“아니. 넌 사라진 게 아니라, 새로 태어날거야.”

수현은 고개를 돌렸다.

“웃기지 마. 새로 태어나다니 이건... 그냥 저주야.”

“이 얼굴은 낯설겠지. 근데 너라는 사람은 여전히 똑같아. 너만 포기하지 않으면 돼.”

“그걸 누가 증명해줄 수 있는데?”

효주는 입술을 깨물었다가, 문득 무언가 떠오른 듯 눈을 반짝였다.

“…회사로 들어와.”

“뭐?”

“니 자리로 돌아오라고. 신입사원 특채, 인턴, 계약직... 어떤 방식으로든 널 다시 데려올 방법을 찾아볼게.”

수현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효주야, 난 지금 얼굴도, 주민등록도, 경력도 없어. 무슨 수로…”

“그래서 새 인물로 시작해보자는거지. 유학파? 해외 거주하다가 돌아온 케이스? 아니면 창작자 인턴 프로그램처럼 아예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만들 수도 있어.”

수현은 아무 말도 못한 채 효주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단단하고 망설임이 없었다. 효주는 본래 기획부 출신답게 빠르게 시나리오를 그려가고 있었다.

“그리고 현우 대표말이야. 솔직히 나, 눈치챘거든. 그 사람, 널 마음에 두고 있었던 거.”

수현의 눈썹이 불쑥 올라갔다.

“말도 안 돼.”

“아냐. 그리고 중요한 건, 그가 너와 다시 마주치게 만드는거야. 낯선 얼굴로. 그게 너한테는 기회야.”

“효주야… 나 진짜 무서워. 만약 날 못 알아보면?”

“그러면 그에게 네가 누구인지 다시 알려주는 거야. 성과로, 태도로, 사람으로. 수현, 넌 원래 그런 애야. 얼굴로 승부 볼 생각 하지마.”

수현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눈꺼풀 뒤로 지난 시간들이 스쳤다. 열정, 긴장, 환희, 좌절, 그리고… 남현우의 모습.

효주의 말이 마음 한 구석을 건드렸다. 아니, 두드렸다.

“…특채는 말도 안 되게 어려워.”

“그래서 우리가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만들면 되는 거지.”

효주는 입꼬리를 올렸다. 그건 오랜만에 보는, ‘기획자 효주’의 얼굴이었다.

수현은 그 미소를 바라보다가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해보자. 단, 조건이 있어.”

“뭔데?”

“이건 효주 네가 기획한 프로젝트라는 걸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 내가 뭘 할 수 있는지 보여주고 싶어.”

효주는 잠시 수현을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해보는거다. 시간이 없어.”

그렇게 해서 수현은, 더 이상 예전의 얼굴이 아닌 채로, 다시 한 번 세상을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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