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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서스 Jul 08. 2024

인생 2회차 광해군

1. 서론


제목에는 광해군 얘기를 썼는데... 우선 이순신 장군님 얘기부터 하겠습니다. 대략 20여 년 전 대학 친구들과 함께 이런저런 잡소리를 하며 시간 때울 때의 이야기입니다.


고시생이었던 어느 날. 점심 먹고 (공부하기 싫어서) 노가리 까던 중에 명량해전 얘기가 나왔습니다. 당시에는 1700만 메가히트작 '명량'이 안 나온 때였지만 한국사람이면 대략적인 역사는 알죠. 대충 원균 까고 선조 까고 성웅의 충성심과 능력을 칭찬하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20여 년 후에 19금 야설작가가 되는) 제가 말했습니다.


"내가 이순신이면 선조 따위가 부른다고 그냥 가는 일 없다. 가긴 가는데 휘하 판옥선 120척에 수군들 잔뜩 태워서 바다로 갈 거야. 한강 타고 올라가서 곧바로 한양에 진격 뽷! 선조 잡아넣으면 게임 끝. 조선왕조 리셋하고 새로 시작하는 거지."


당시에도 소설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했기 때문에, 저는 곧 이 아이디어에 제목을 붙였습니다.


"이거 [이순신의 난]으로 하면 되겠다. 조선 권력 장악하고 왜군 끝장낸 다음에 만주로 진격하는 거야. 아, 아니다. 그 때 만주에는 누르하치가 후금 일으킬 때니까 차라리 누르하치랑 손 잡는 게 낫겠다. 기왕 하는 거 만주 말고 중국 본토 노려야겠네. 강력한 조선 수군으로 서해바다 건너서 북경에 뽷! 중원정벌 엔딩 좋네."


제 얘길 듣고 있던 (20여 년 후에 영감님 소리 듣게 되는) 친구가 대답하더군요.


"그런 거 쓸려면 이민 갈 준비 끝내고 해라. 한국에서 이순신은 함부로 건드리는 거 아니다."



당시에는 그랬습니다. 20여 년 전 헬조선에서는 이순신 장군께서 반란 일으킨다는 주제로 글 쓴다는 생각 자체가 금기시되는 수준이었습니다. 나름 X세대로 자유와 방종(?)을 추구한다는 20대 젊은이들도 사고의 틀이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았습니다.


(* 그 와중에 '미성년자 성행위 묘사'는 자유로웠어요.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의 작품인 '백년의 고독'에서는 9살 여자아이가 쌍둥이 임신하는 게 나왔는데 저는 이 책을 중딩 때 읽었습니다. 전 세계에 로리타 신드롬을 일으키고 동시에 혐오감정도 일으킨 '로리타'는 아예 영화까지 나왔었죠.)



그리고 시간이 흘러... 2020년대 헬조선.


[이순신의 난]은 이제 아무것도 아닙니다. 웹소설 검색해 보면 이순신 장군께서 반란 일으키는 컨셉의 작품은 이미 꽤 나왔습니다. 선조 따위 갈아엎고 성웅께서 직접 왕 해먹는 건 요즘 웹소설에서 별 감흥 없습니다.


그리하여... 제 아이디어는 살포시 묻혔습니다. 유사 컨셉 작품을 읽어본 적이 없고 제 필체와 완전히 다를 것이므로 제가 새로 쓴다고 해도 표절은 아니겠지만, 아무튼 지금 새로 쓰기에는 좀 떨떠름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임진왜란, 정유재란, 정묘호란, 병자호란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들. 그 안에서 벌어지는 조선 임금과 양반들의 병림픽. 고통받는 백성들.


이 자체는 소설가에게 무척 좋은 설정입니다. 비극적인 시대이니만큼 그걸 뒤집는 맛(?)이 있고, 임금과 양반들이 병림픽을 벌이긴 했지만 나름 권력욕구 자체에 충실해서 필사적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전쟁'이 있어서 액션씬 뽑기에도 좋습니다.



임진왜란~병자호란 사이의 이야기를 다루고 싶긴 한데 성웅 이순신을 반란의 주인공으로 내세우기에는 좀 늦었습니다. 그럼 누가 좋을까요?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광해군'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임진왜란 때에는 전쟁영웅이었으나 왕이 된 후에는 양반관료와 백성 모두에게 지탄을 받으며 거하게 말아먹고 결국 왕 자리에서 쫓겨난 인물. 그 사람의 행적이 제 관심을 끌었습니다.


늘 그렇듯이, 우선 사실관계(이 건에서는 역사)부터 정리해야겠죠. (인터넷 검색하면 다 나오는 내용이긴 합니다만) 광해군의 행적부터 정리해 보겠습니다.



2. 본론


(1) 광해군의 행적 : 왕자일 때는 전쟁영웅, 왕에서 쫓겨날 때는 돈아비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부산에 상륙한 지 20여 일 만에 한양을 빼앗겼다고 합니다. 당시 군대의 1일 행군 거리가 20~25km였던 점을 감안하면 거의 저항 없이 쭉쭉 밀린 셈이죠. 탄금대에서 막으려고 했으나 하루 만에 끝장났고, 뒤늦게 모은 3도 근왕군 5만명 또한 1600명에게 털려서 흩어져 버렸습니다.


임금이었던 선조는 한양을 버리고 의주까지 도망갑니다. 중국으로 빤쓰런 하기 직전이었죠. 신하들이 막아서 끝내 압록강을 넘지는 않았지만 왜군이 올라오면 언제든 빤쓰런 할 각오(!)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첫째아들 임해군은... 이 와중에 백성들을 죽이고 아녀자를 강간했었다고 합니다. 백성들을 위로하고 병사들을 격려해도 부족할 판에 이 짓거리를 한 거죠. 결국 참다 못한 백성들이 임해군을 붙잡아 왜군에게 넘겨 버렸다고 합니다.

(이후 왜군과 협상을 벌여서 다시 데려오긴 했지만... 이 정도 막장이면 안 데려오는 게 나을 뻔 했습니다.)


임금은 빤쓰런. 첫째아들은 캐막장. 이게 임진왜란 초반부 상황이었습니다.



이 암울한 상황에서 둘째아들 광해군만 맹활약합니다. 왜군에게 점령당한 지역을 돌며 백성들과 병사들을 격려했고, 의병이 일어나면 의병장들과 함께 했습니다. 심지어 일부 전투에서는 의병장들의 추대를 받아 총지휘를 한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물론 광해군이 직접 선봉에 서서 군공(軍功)을 세운 건 아니었습니다. 무슨 판타지 소설 주인공처럼 '둘째 왕자가 오크 500마리를 해치우셨다!' 같은 활약은 없었고, 그냥 전쟁터를 다니며 백성과 병사를 격려한 게 대부분이긴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진짜 '맹활약했다'고 평가받을 수 있고, 또 그렇게 평가해 줘야 합니다. 2차대전의 처칠, 그리고 최근 러-우 전쟁의 젤렌스키가 그러했던 것처럼 '최고 지도자가 적들에게 굴복하지 않고 버티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사기진작 효과가 있습니다. 하물며 전제왕조 시절에 왕자가 직접 전쟁터를 돌아다니면 그 효과는 몇 배 더 크겠죠.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났고, 용인전투에서 패배해 흩어졌던 근왕군들도 다시 수습됩니다. 구심점이 없었다면 그대로 흩어졌을 백성과 병사들이 광해군을 보고 감동받아 다시 싸우겠다고 결심합니다.


임진왜란 초기의 광해군은 '빛이고 희망'이었습니다. 적에게 점령당한 땅의 구심점으로서 큰 역할을 했습니다. 18살의 나이에 이미 왕보다 더 존경받고 있었습니다.


이 대단한 전쟁영웅이 임금으로 등극하면 더 잘 할 것 같았죠. 다들 그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저도 그 시대에 살았다면 그렇게 생각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광해군이 임금에 오르면서 무능한 폭군으로 변한 걸 PTSD, 즉전쟁 후유증 때문인 걸로 보기도 합니다. 선조의 과도한 견제 때문에 노이로제에 시달렸고 그게 PTSD를 가속화시켰다고 보기도 하죠.


정확한 원인은 후세 사람들이 알 수 없습니다. 이건 각자의 소설적 상상력에 맡기기로 하고. 결론만 봅시다.


결론은 [돈아비]입니다.


왕이 된 광해군은 내정 면에서 최악이었습니다. 왜란 이후 피폐해진 백성의 삶을 더욱 더 피폐하게 만들면서 대규모 궁궐 공사를 했고, 궁궐에 청기와 덮으려고 화약 재료를 낭비했으며, 궁궐 건설 자금을 마련하려고 매관매직(買官買職)을 자행했습니다.


거기에 '천륜을 어기는 크리티컬'까지. 형을 죽이고 배다른 막내동생을 죽여버렸습니다. 유교논리를 떠나서 그냥 인간이면 다들 경멸할 만한 일들을 저질러 버렸습니다.


그러면서 신하들을 의심하고 숙청하는 건 보너스. 한참 붕당정치로 정신없던 조선 관료들은 본인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세력화하고... 결국 왕을 갈아치워 버립니다.



인조반정으로 쫓겨난 광해군은 백성들에게 욕을 처먹습니다. 쫓겨나는 광해군을 동정하거나 지지하는 백성은 거의 없고 '돈아비야 돈아비야 그 많은 돈을 두고 어디로 쫓겨가느냐' 식의 비난만 난무합니다.


임진왜란 때 온 백성의 지지와 존경을 받던 전쟁영웅 왕자가 왕이 된 후 쫓겨날 때에는 조롱과 멸시와 비난만 받습니다. 백성들의 손가락질을 받습니다.


전쟁으로 피폐해진 조선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궁궐 짓는 데에 국력을 쏟아부으면서 백성들을 더욱 더 쥐어짰던 게 고스란히 돌아옵니다. 일반 백성들의 지지와 존경은 간데없고 오로지 '돈아비'만 남습니다.



광해군은 내치(內治)에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전쟁 직후 백성들에게 가장 중요한 '먹고 사는 문제'에서 완전히 헛다리 짚고 그걸 10년 넘게 이어갔습니다. 백성들은 죽겠다고 난리치는데 궁궐에 청기와 입히고 벼슬자리를 팔아치웠으며 궁궐 지을 자재와 인력을 조달하기 위해 계속 백성들을 쥐어짰습니다.


안타깝죠. 위대한 전쟁영웅이 전쟁 이후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고 무너져 내리는 모습은 많이 안타깝습니다.


다른 나라의 역사에도 전쟁'만' 잘하고 내정에는 영 꽝이었던 군주들이 꽤 많지만... 광해군의 경우에는 조금 더 안타깝습니다. 당시 후금-명나라 사이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었는데 이 상황에서 최소한 광해군은 '전쟁 방지와 유사시 대응 준비'에 대해서만큼은 감각이 살아 있는 임금이었기에 더 안타깝습니다.


(* 반정 이후 임금이 된 인조가 정묘호란 병자호란 크리를 연달아 맞은 거에 비하면 더더욱 안타깝죠.)


역사 행적을 따라가면 할 얘기가 많습니다만, 적당히 이 정도에서 끊고 소설 설정으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2) 광해군을 회귀시킨다면 : (프롤로그) 광해군과의 인터뷰 (Interview with Gwang-hae)


때는 인조 시절. 장소는 제주도.


왕 자리에서 쫓겨나고 정묘호란-병자호란을 다 겪으며 계속 '죄인'으로 살아온 남자가 있다. 한 때 전쟁영웅이었으나 이제는 찬 밥을 먹어야 하는 60대 늙은이가 있다.


광해군의 눈에는 별다른 미련이 보이지 않는다. 귀양 보내면 보내는 대로 가고, 찬 밥 주면 주는 대로 먹고, 밥 안 주면 굶는다. 한때 임금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크고 웅장한 궁궐을 지어대던 시절의 자부심과 광기 같은 건 오래 전에 사라지고 없다.


그렇게 달관한 듯 포기한 듯 죽을 날만 기다리던 광해군. 어느 날 그에게 한 젊은 남자가 찾아온다. 17세기 조선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재질의 옷을 입은 남자다.


"전하. 후회하십니까?"


"후회. 후회라... 이제 와서 그런 게 무슨 소용이겠느냐."


"다 내려놓으셨군요."


"내려놓는 게 어떤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난 그저 죽을 날만 기다릴 뿐이다. 새삼 무엇을 도모하겠느냐."


"도모할 방법이 있다면 어찌하시겠습니까?"


"뭐?"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 했던 광해의 눈이 잠시 번득인다. 위대한 전쟁영웅이었고 왕이 된 후에는 수천의 관료들을 반역도로 몰아 처단했으며 자신의 이복동생과 친형을 죽여버린 폭군의 눈이 살벌하게 빛난다.


그 형형한 안광(眼光)은 총기일까 광기일까. 10대 후반 왕자의 열정일까, 40대 중년 왕의 전쟁 후유증일까.


이상한 옷을 입은 젊은이가 다시 말한다.


"과거에 잘못하신 것들을 후회하신다면. 이번에는 실수하지 않고 제대로 백성을 위해 올바른 정치를 펴실 수 있다면.

제가 도와 드리겠습니다. 전하의 못 다 이룬 꿈, 제가 이뤄 드리겠습니다!"


광해군이 젊은이의 손을 잡는다. 그리고... '회귀(回歸)'한다. 임진왜란 시절, 광해 본인이 백성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던 시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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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하는 시점은 임진왜란 중반부 정도로 할까 합니다. 그렇게 해야 위대한 민족의 성웅 이순신 장군님을 살릴 수 있거든요. 선조에게 고문당하고 건강을 해치는 일도 삭제해 버려야죠. 성웅께서 80살까지는 사셔야 큰 일을 도모할 수 있을 테니까요.


청 태조 누르하치, 태종 홍타이지 쪽과는 '전략적 동맹 관계'로 설정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후금-청나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계속 조선을 넘볼 테니 한 번은 밟아 줘야겠죠. 밟은 다음에는 명나라를 공격하는 전략적 동맹이 될 겁니다.


명나라에 대해 재조지은을 외치는 양반들과의 대립도 다뤄야 합니다. 실제 역사에서는 재조지은 외치는 친명파가 광해군의 측근이었지만, 이 가상현실에서는 실리(實利)를 중시하는 관료가 전면에 나서야겠죠.


광해군 때 영국 사략해적이 우리나라에 출몰했었다는 얘기도 있는데, 이것도 적절히 활용해야 합니다. 이순신 장군님을 살렸으면 수군의 활약도 다뤄야죠.



실제로 쓰게 된다면 우선 저 자신이 공부를 많이 해야 합니다. 역사물은 어렵죠. 역사 전공자가 아닌 일반인이 도전한다면 그만큼 치열하게 자료를 보고 연구해야 합니다.


쉽지 않은 도전이지만... 언젠가는 하겠죠? 언젠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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