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저는 평소에 유튜브 같은 걸 잘 안 보는 편인데, 우연히 주말에 '과학드림'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봤습니다. 우선 그 채널 운영하시는 분께 감사드립니다. 하꼬 SF 작가에게 좋은 소재를 주셨네요.
해당 채널 중 황충(蝗蟲)에 대해 설명하는 챕터가 있었습니다. 삼국지 오호대장군 황충은 아니고, 특정 조건에서 폭발적으로 번식한 메뚜기들이 다른 종(種)처럼 변신하여 온 사방 농작물을 초토화시키는 게 황충입니다. '비황'이라고도 하죠.
나무위키 등에서 검색해 보면 바로 나오는데, 기존의 창작물이나 게임에서 황충(비황메뚜기 떼)을 다룬 작품이 많습니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펄 벅의 '대지'에서도 황충이 하늘을 까맣게 메우며 날아오는 게 나오고, (제가 좋아하는) 코X이 삼국지 시리즈나 수호전 시리즈에서도 메뚜기 떼는 빠지지 않고 등장합니다. 어지간하면 세이브로드 신공으로 피해 가야죠;;
과학드림 채널에서 황충의 특징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 주는데요. 우선 제가 기억하기 위한 용도로 해당 채널의 설명을 간단히 요약하고, 그 후에 제 나름대로 SF 설정을 덧붙이도록 하겠습니다.
2. 본론
(1) 황충의 특징
평소의 메뚜기도 해충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아주 궤멸적인 피해를 주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메뚜기 개체 수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황충(蝗蟲)으로 변하기 시작하면 이때부터는 얘기가 다르죠.
메뚜기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는데, 대충 온도 등이 안 맞을 때 부화하지 않았던 개체들이 상황 좋을 때 일시에 부화하는 게 가장 큰 것 같습니다. 이렇게 개체 수가 늘어나면 자연히 메뚜기 간 거리가 가까워지고, 그게 메뚜기의 호르몬 분비에 영향을 주면서 황충으로 변신(!)한다고 합니다.
1) 황충(비황메뚜기)의 일반적 특징
황충은 일반 메뚜기에 비해 날개가 훨씬 길고 다리가 작다고 합니다. 체격도 조금 작아지는 편입니다. 일반 메뚜기가 점프력으로 승부하는 데 반해, 황충은 처음부터 멀리 날아갈 수 있도록 신체구조가 튜닝되는 거죠.
그리고 색깔이 연노랑~연갈색으로 변합니다. 평소에는 풀숲에 잘 위장해 있으려고 녹색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있는데, 황충이 되었을 때에는 오히려 눈에 잘 띄는 색깔이 됩니다. 이는 독 있는 식물을 먹었다는 경고이기도 하고, 집단 자체의 힘을 과시하는 효과가 있기도 합니다.
(힘의 차이가 느껴지십니까? 같은 느낌...)
메뚜기가 황충으로 변하면 거대한 군집을 이룹니다. 어느 생물이든 그러하듯 숫자가 깡패죠. 몇억 단위는 기본이고 심하면 조 단위를 넘어가는 수준이라고 합니다;;
이 압도적인 숫자에 더해, 황충은 평범한 메뚜기보다 2배 이상 많은 먹이를 매일 먹어치운다고 합니다. 생체구조가 변하니 에너지를 써야 할 것이고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하니 그것 때문에도 에너지가 많이 필요합니다. 당연히 엄청나게 많이 먹겠죠.
숫자도 많은데 먹는 것도 많으면... 주위 농작물과 식물은 초토화됩니다. 한 지역을 초토화시킨 황충들은 그 떼거리 그대로 다른 지역을 향해 날아가게 되고, 황충이 내려앉는 지역에는 녹색이 사라져 버립니다. 무시무시한 대재앙이 시작되는 겁니다.
이렇게 각 지역을 초토화시키는 것도 한계가 있고 결국 황충 떼거리는 먹을 것이 없는 곳까지 내몰립니다. 여기서 최악의 상황이 발생하는데요. 바로 '동족포식'입니다.
평상시 메뚜기는 풀을 먹고 사는 초식곤충인데, 황충이 되면 먹성이 좋아져서 먹을 수 있는 건 다 먹어치우며 이게 결국 육식(肉食)까지 갑니다. 먹을 게 전혀 없는 지역에서 육식이라면... 바로 옆에 있는 동료(?) 밖에 없죠.
황충은 자기 동료를 뜯어먹으면서 마지막까지 아귀처럼 날뛰지만 결국은 전멸하게 됩니다. 그러고 나면 원래 있던 지역에서는 정상 메뚜기가 정상적인 분포로 살게 된다고 하네요.
기존에 알려져 있던 황충의 특징은 이 정도입니다. 여기에 더해, 과학드림 채널에서 소개해 준 설명을 추가하도록 하겠습니다.
2) 황충으로 변하는 기제 : 세로토닌 작용
지구상의 메뚜기 종(種)은 대략 1만 가지 정도 되는데, 그 중 황충으로 변하는 종류는 20종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황충으로 변할 때에는 '세로토닌'이라는 호르몬이 중요한 작용을 한다고 하네요.
세로토닌에 대해 검색해 보면 인간 내부에서도 분비되는 걸로 나옵니다. 소위 '행복 호르몬'이라고 하네요. 황충에게 적용되면 그리 행복한 것 같지 않습니다만;;
호르몬은 그 작동 부위에 따라 효과가 다르고, 과다/과소 각각의 경우에 모두 부작용이 생깁니다. 인간에게 작용하는 세로토닌은 신경계에 분비될 경우 행복감과 안정감을 주고 / 내장기관에 분비되면 소화를 촉진한다고 합니다. 물론 과다하면 부작용이 따르죠. 내장기관에 분비되는 세로토닌이 과다하면 과민성대장증후군으로 폭풍설사...를 유도한다고 합니다.
황충에게 작용하는 세로토닌은 인간의 세로토닌과 전혀 다른 효과를 보입니다. 날개가 길어지고 다리가 짧아지며 식욕이 평소 2배로 증가하고 마지막에 먹을 게 없으면 동족포식...을 할 정도의 효과입니다.
소화를 촉진한다는 효과만큼은 인간-메뚜기 공통이네요. 행복해지는지 여부는 알 수 없습니다만 막판에 굶어 죽으면서 서로 뜯어먹을 정도면 그리 행복하지는 않겠죠.
이 효과 외에 또 하나 중요한 게 있습니다. 과학드림 채널이 하꼬SF작가에게 준 강렬한 아이디어. 이건 항을 바꾸어 설명하겠습니다.
3) 머리가 좋아진다고?
이번에 과학드림 채널을 보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요. 황충(비황메뚜기)는 일반 메뚜기에 비해 뇌(腦)가 더 발달했다고 합니다. 특히 인간의 대뇌피질에 해당하는 부위가 커져 있다고 하네요.
이건 좀 의외였습니다. 넘치는 식욕 때문에 결국 동족을 잡아먹을 정도로 흉폭해지는데 그 와중에 머리가 좋아진다니. 좀비가 인간보다 똑똑하다는 얘기를 들은 것과 비슷한 느낌인데요.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럴 만 합니다. 황충은 1) 무리를 이루어 조직적으로 움직여야 하고 2) 먹이가 있을 만한 지역을 계속 찾아내야 하기 때문에, 평상시에 혼자 살면서 붙박이 생활을 하는 일반메뚜기에 비해 더 똑똑해야 합니다. 환경의 영향인지 세로토닌의 작용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머리가 더 좋아지긴 해야 할 겁니다.
(똑똑해진 상태에서도 결국은 동족을 잡아먹는 지경에 내몰린다는 게 좀 그렇긴 합니다만...)
물론 메뚜기 수준에서는 머리가 좀 좋아진다 해도 큰 문제는 없습니다. 메뚜기들이 갑자기 과학기술을 발전시켜서 생화학무기를 만들거나 핵폭탄을 쏘진 않겠죠. 워낙 숫자가 많고 농작물을 초토화시키는 게 무섭긴 합니다만 적어도 인간 전체를 위협하지는 않습니다.
으음, 그런데 말입니다.
[머리가 좋아진다]는 것. 이걸 엄청 매우 어마무시하게 킹왕짱으로 중시하는 나라가 있지 않나요? 아이들 조기교육에 목숨 걸고 인성 파탄나는 것 정도는 그냥 감수하겠다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나라가 있지 않나요?
그렇습니다. 우리 대한민국 - 멸칭(蔑稱)으로는 '헬조선' - 에는 머리 좋아지는 것에 목숨 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의외로 꽤 많습니다.
진짜 본론으로 넘어가겠습니다. 디스토피아 SF 설정으로 갑니다.
(2) SF 설정 : 머리가 좋아지는 약
[이 약만 먹으면 무조건 의대 간다.]
무시무시한 약이 나왔다. IQ 100 평균인을 순식간에 IQ 170 암기천재로 만들어 버리는 기적의 신약이 출시되었다.
기존에 나온 카페인 성분의 각성효과 같은 게 아니었다. 잠을 충분히 자고 놀 거 다 놀아도 학교내신시험이나 수학능력시험에서 거의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딸 수 있게 해 주는 약이었다. 책을 한 번 보면 거의 복사하는 수준으로 암기할 수 있게 해 줬고, 처음 보는 수학 문제도 아예 즉석에서 공식을 만들어서 풀 수 있을 정도였다.
게다가 이 약을 먹으면 운동능력도 향상되었다. 몇 년 동안 갇혀서 공부만 해야 하는 헬조선 중~고딩들이 펄펄 날았다. 몇몇 뛰어난 학생들은 마이클 조던 급으로 하늘을 잠시 날아 덩크슛을 꽂을 정도였다.
처음에는 강남 지역의 몇몇 학부모들 사이에서 알음알음으로 퍼지던 약이었으나, 어느 순간부터는 이 약을 안 먹는 게 멍청한 짓이 되어버렸다. 이 약을 먹는 학생은 거의 80~90% 확률로 내신1등급을 받고 거의 대부분 의대를 가게 되는데 안 먹을 수가 없겠지.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바로 헬조선 입시는 '상대평가'라는 것이었다.
SKY의 정원은 정해져 있고 의대 정원도 정해져 있다. 헬조선의 모든 학생들이 고득점을 받으면 결국 대학 커트라인만 올라가고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 누군가는 대학시험에 떨어지게 되고 또 누군가는 공무원 임용고시에 탈락하게 된다. 상대평가라는 건 그런 것이다.
수능 만점자가 스멀스멀 증가하다가 어느 날 폭증했다. 전국 의대 정원이 4000명인가 되는데 수능 만점자가 10000명을 넘어버렸다.
똑같은 만점인데 누군가는 탈락당해야 한다. 나이순으로 자르든 / 아주 사소한 역사 연도 문제로 탈락시키든 / 기타등등 입시비리 급 만행을 저지르든 간에, 누군가는 반드시 떨어뜨려야 한다.
탈락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거대한 군집을 이루기 시작했다.
그리고... 폭동이 일어났다.
그제서야 정부 차원의 조사가 이루어진다. 머리 좋아지는 약의 주성분이 황충메뚜기 유전자 변형 식품이고 세로토닌 호르몬제를 통해 활성화된다는 걸 알아냈고, 세로토닌을 진정시키는 약물로 이 약의 효과를 확 떨어뜨릴 수 있다는 걸 밝혀낸다.
그러나 너무 늦었다. 이미 걷잡을 수 없이 커진 폭동을 막을 수 없었다.
'동족포식'도 막을 수 없었다.
인간보다 몇 배 더 똑똑하고 운동능력도 좋은데 식욕 또한 몇 배로 좋고 그 식욕을 동족포식으로 해결하는 신종 생명체. 대한민국 외의 나라에서는 이들을 '로커좀비(Locu-Zombie)'이라고 불렀다.
세계가 로커좀비에 대항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식량 수출을 끊어버리는 것. 황충메뚜기를 제압하는 것과 똑같은 방법이었다.
그러나 로커좀비들은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 그들은 탁월한 운동능력과 놀라운 지능을 갖고 있었고, 서해바다와 대한해협은 그리 넓지 않았다.
로커좀비들이 중국과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제 곧 전 세계로 퍼질 것이다.
인류 멸망은 '내 자식은 무조건 의대 보내야 돼!'라고 생각하는 나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들이 인류를 끝장냈다.
* 스토리는 방대한데 막상 내용을 채우기는 어려운 설정이네요. 막상 쓰게 되면 주인공 / 빌런 등을 잘 설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하나 더 추가하면, 제목은 생각이 안 나는데 예전 어떤 SF소설에도 유전자를 조작하여 천재를 만들어 내는 설정이 있었습니다. 거기서는 황충메뚜기 유전자가 아니라 해면동물의 뇌세포 성장 유전자를 가져오는 방식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소설에서는 IQ 250짜리 천재가 자기 동생들을 죽이는 선에서 끝났고 지구를 멸망시키는 단계까지 가진 않았습니다만, 황충메뚜기 유전자를 가져오는 설정으로 간다면 '모든 인간을 초토화시킨다!'는 극단적인 결말까지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물론 상업적으로는 말아먹겠지만... 전 그런 거 별로 생각 안하고 쓰고 싶은 대로 쓰는 스타일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