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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서스 Aug 13. 2024

갑자기 생각난 군 검찰행정의 흠결

대략 20년 전에 겪은 일이 갑자기 생각나서 짧게 글 써 봅니다.


저는 2002년~2004년 간 강원도 북동쪽 끝자락에서 근무했었는데요. 훈련병 때에는 논산훈련소에 있다가 강원도로 차출되어 갔죠. 그 때는 얼마나 서럽던지... ㅠ.ㅠ. (물론 전역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당시 저는 매우 독특한 보직을 받았었는데요. 특기번호 4211. '법무행정병'이었습니다.


부관부 등에 근무하신 분들은 저 특기번호가 매우 희귀하다는 걸 잘 아실 겁니다. 행정병 보직을 받는 병사들은 대부분 3111 일반행정병 특기를 받고, 의무병은 4111을 받으며, 군종병은 4311을 받습니다. 논산훈련소 조교와 간부들은 4211 특기 자체를 처음 본 것 같았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제가 간 사단사령부에서 행정병 보직변경 신고를 늦게 해서 '법무행정병이 없는 상황'으로 잘못 처리되는 바람에 저에게 4211 특기를 부여해 강원도로 보낸 것이었습니다. 뭐 결과적으로는 잘 됐지만 당시에는 은근 마음 상하긴 했었죠.


아무튼 저는 사단사령부 본부대 소속 행정병이 되었습니다. 그것도 본부대 내에서 가장 널럴하고 편하다는 '법무행정병'. 편하게 잘 지내긴 했습니다.



그렇게 편한 군생활을 하던 어느 날.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군대 외부 전화였는데, 어딘가에 있는 민간 검찰 소속 수사관이었습니다.


"통신보안. ㅇㅇ사단 법무부 상병 ㅇㅇㅇ입니다."


"군 검찰 왜 이래? 왜 이따구로 사건 이송하는 거야!"


"무슨 일이십니까?"


"아니 벌금형 선고했으면 군대 있는 동안에 다 집행했어야 할 거 아냐! 돈 못내면 노역장 유치하고! 그걸 못 해서 민간검찰에 떠넘겨? 뭐 하는 짓이야?"


"..."



나름 대학 때 법 공부 하긴 했지만 어디서나 그렇듯이 학부 지식은 실무 절차에 별 도움이 안 됩니다. 이 때 당시 민간검찰 수사관이 한 주장을 종합하면,


- 군사법원에서 병사에게 벌금형 내리는 건 좋다.

- 해당 병사가 소득이 없으니 벌금 못 내는 것도 인정하겠다.

- 그런데 벌금을 못 내면 노역장에 유치해야 하지 않냐? 왜 노역장 유치를 안 하고 2년 동안 멍때리다가 민간에 그냥 던지냐?

- 민간검찰 바쁘다. 이딴 식으로 일하지 마라.


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이 얘기를 왜 상병 나부랭이한테 떠드는 거야? 떠들고 싶으면 중위 검찰관이나 대위 법무참모에게 떠들어야 되는 거 아냐? 군대 상병이 법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왜 나한테 ㅈㄹ이세요 아저씨? 확 그냥 받아 버리고 싶지 말입니다... 라는 얘기를 못 했습니다. 20대 후반 나이에 외부 검찰수사관이 전화해서 ㅈㄹ하니까 대응을 못 하겠더군요 ㅠ.ㅠ.)



아무튼, 이 때에 [군사법원과 군 검찰 행정절차에는 '환형처분으로서의 노역장 유치'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알아 봐야 인생에 아무 도움이 안 되는 잡지식이었지만 일단은 (강제로) 알게 됐죠.


원래 벌금을 안 내면 국가에서 노역장 유치 처분을 합니다. 최대 3년 범위 내에서 징역에 준하여 강제노역을 해야 하는데요. 3년이 한계이기 때문에 벌금 미납액이 몇백~몇천억 단위로 높아지면 하루 일당이 수천만원을 넘어가는 '황제노역'이 되기도 합니다.


군사법원에서 벌금 받은 것도 마찬가지죠. 입대 직전에 음주운전을 하거나 / 돈 빌렸다 안 갚아서 사기죄로 고소당하거거나 / 리니지 게임아이템 사기를 쳐서 사기죄로 고소당하거나 / 결혼할 것처럼 속여서 여자한테 얹혀 살다가 갑자기 군대 가면서 혼인빙자간음죄로 고소당하거나 등등 다양한 사유로 군사법원 재판을 받는데, 여기서 벌금 받은 것도 일반 법원의 벌금과 동일합니다.


다만, 군대 일반병사들이 벌금 받는 건 '현실적인 문제'가 있는데요. 바로 일반병사들이 돈이 없다는 문제입니다.


요즘은 좀 다르지만 제가 군대 있을 때에는 병사 월급이 2만원 전후였습니다. 병장 때 왕창 올라서 24000원인가 됐죠;; (다시 강조하지만 '왕창 오른' 금액입니다.) 당연히 2년치 월급 다 모아도 벌금 못 냅니다.


이렇게 벌금을 못 내면 환형처분으로 노역장에 가둬야 하는데... 잘 아시겠지만 징집된 병사들은 이미 노역장에 갇힌 거나 다름없는 신세죠. 군 복무 대신 노역장 가면 오히려 더 좋아할 수도 있습니다;;


결국 대한민국 군사법원은 노역장 유치 제도를 도입하지 않았습니다. 실효성이 없으니까요.


그렇다고 벌금을 징수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을 할 수도 없습니다. 월 2만원 받는 병사들에게 무슨 벌금 징수를 하겠습니까. 요즘은 월 100만원 넘어간다니 징수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예전에는 아예 생각할 수도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군대 2년 동안 아무것도 안 하다가 벌금 낼 당사자가 전역하면 민간 검찰로 이송하는 건데... 제가 상병 때 민간 검찰수사관 하나가 ㅈㄹ을 한 거죠. 돌이켜 생각해 봐도 어이없긴 합니다.


오늘 갑자기 이 일이 생각났습니다. 군대 전역하고 20년 정도 됐는데, 최근에 회사 일로 형사고소한 사건이 경찰서 간에 이송되면서 이 일을 떠올리게 되었네요.


나이드니까 이런 것도 추억(?) 비슷하게 되네요. 물론 다시 당하게 되면 이번에는 저도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그 때 저한테 ㅈㄹ했던 검찰수사관 아저씨. 만나본 적은 없지만 전화해서 기분 더러웠고 두 번 다시 통화하지 맙시다. 혹시 마주치게 되면 평화롭게 헤어지진 않을 거예요. 뭐 지금은 은퇴하셨을 테니 조용히 잘 사십시오.


이만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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